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197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아주 별난 실험을 했다. 멀쩡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한 쪽은 간수로, 또 다른 그룹은 죄수로 생활하게 하고 이들을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그것이 실제 상황이 아닌 실험이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고 평소 심신이 건강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실험은 2주간 실시키로 예정돼 있었지만 6일 만에 그만 두고 말았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TV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각본, 제작자 폴 쉐어링은 이 실험을 토대로 영화 <엑스페리멘트>를 감독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트래비스’와 ‘배리스’는 실험에 참가한 ‘절친’이었다. ‘소심남’ 배리스는 간수, 성격 좋은 트래비스는 죄수 역할을 맡게 됐다.

배리스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간수로서의 역할에 익숙해지자 점점 더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내면에 숨어있던 사디스트적인 기질이 거침없이 표출되면서 ‘절친’이었던 트래비스를 궁지로 몰아간다.

영화는 실제 실험에서보다 훨씬 더 드라마적인 상황으로 전개돼,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잔인한 폭력성과 권력에 대한 탐욕, 사디스트적인 성향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짐바르도 교수는 감옥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기록한 책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를 펴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스스로 악마의 길을 택한 천사로, 인간 내면에 함께 존재하는 선성과 악마성을 상징한다.

책에서 짐바르도 교수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건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이라고 결론짓는다. 누군가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타고난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이 내면에 숨겨진 악마성을 불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군대에서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병사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들이 최근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평소 늘 그러하였으나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언론의 관심이 군에 쏠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더 문제다. 상시적으로 문제가 있는 조직이라면 단단히 손을 보아야 한다. 나라를 지키겠다며 제 발로 군대에 들어간 훌륭한 청년들의 생명과 인권이 함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문제 사병’ 운운하지만 대개는 착하고 귀한 아들들이다. 원래 ‘문제’가 있어 그렇다기보다는, 군대라는 환경과 문화, 시스템이 선량하고 건강한 청년들을 ‘문제 사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스탠포드 대학의 감옥 실험실이 아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