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종병기 활’은 올해 국내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블록버스터다. 좌절을 딛고 원수를 갚는, 만화나 무협지에서 늘 보아왔던, 맥락에서 보자면 별다를 게 없는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텍스트의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극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본성이 선해서인지 선한 것이 이긴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영화 같은 허구의 세상일지언정, 악한 존재가 선한 존재로부터 응징당하고 마침내 선한 존재가 승리하는 걸 보면, 선한 것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마음 한 구석에 선한 싹이 트는 것이다.

‘최종병기 활’에서 악한 존재는 분명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군대다. 주인공의 여동생이 혼인을 하는, 눈물겹도록 평화로운 날 청나라 군대가 들이닥치고 무고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간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활 쏘는 재주 하나로 청나라에 끌려간 여동생을 구해내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지는데, 주인공의 화살이 시위를 벗어날 때마다 험악한 청나라 군사들이 쓰러지는 장면이 연출되고 그때마다 관객들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악한 존재에 대한 당연한 응징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또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 과연 국가라는 것은 선한 존재인가. 제 나라 백성들이 오랑캐의 말발굽에 짓밟히도록 한 국가를 선하다고는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호쾌한 르누아르 이상의 여운을 남기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사실 국가라는 게, 특히 예전의 왕조 시절에는 요즘으로 치면 조폭 비슷한 것이었다. 백성들이 한데 모여, 우리 이런 나라 한 번 만들어 보자, 해서 누구를 지도자로 뽑을 것이며 수도는 어디로 할 것이며 따위를 의논한 적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상황도 못 되었다. 누군가 나서 내가 왕이 되겠다 해서 군사를 모으고, 땅에 금을 긋고 여기가 내 나라 내 땅이라 선언하고 대신 그 안에 속한 백성들에게는 세금을 내도록 했다. 세금이라는 게,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구실로 거둬들이는 것인데, 그걸로 왕과 그 아래 떨거지들이 먹고사는 것이다. 그게 따지고 보면, 다른 놈들이 행패부리지 못하도록 우리가 잘 살펴줄 테니 얼마씩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조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리로 따지자면 그게 그거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국가가 나 몰라라 하거나 나서서 백성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계약을 어기는 것이고, 국가라는 게 조폭만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종병기 활’에서처럼 실제 병자호란 때 왕이라는 자는 저 살겠다고 피난을 갔고 힘없는 백성들은 오랑캐에게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때뿐 아니라 그 전에 임진왜란 때도 백성들이야 죽든 말든 저 혼자 살겠다며 임금이 피난을 갔고 백성들은 분통이 터져 오물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조선 왕조 통틀어 왕이 외적의 침입에 맞서 당당하게 군대를 지휘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고 그게 무슨 훌륭한 전통이라도 되는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6.25 때 한강 이남으로 먼저 줄행랑을 치고 한강 다리를 끊어버려 죄 없는 백성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믿을 거라곤 낡은 활밖에 없었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중 누군가는 활 아닌 그 무엇인가를 붙잡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들 누구나 저마다의 최종병기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국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가을 그런 깊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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