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국민 코미디언이라 할 만한 심형래 씨가 이끌던 영화 제작사 영구아트가 사실상 문을 닫았고, 거기서 일하던 직원들이 밀린 임금을 받게 해 달라며 진정서를 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에서 한국형 SF 영화의 선구자로 변신, 이름을 드날리던 심 씨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골목길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염치가 없다느니 뻔뻔스럽다니 비난과 조롱이 퍼부어진 적이 있는데, 영구아트 전 직원들은 공터에서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했다. 전직 대통령의 골목길 기자회견이 ‘코미디’였다면, 영구아트 직원들의 공터 기자회견은 피눈물 나는 ‘비극’이다.

역사의 비극적 인물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했다면, 한때 국민들의 배꼽을 빠지게 만들었던 코미디의 대부는 씁쓸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그는 그가 제작, 주연한 영화 ‘라스트 갓 파더’의 제목처럼, ‘마지막 (코미디) 대부’가 되고 말 것인가.

심형래 씨가 누군가. 제가 휘두른 방망이에 제 뒤통수를 맞아 쓰러지고, 빠진 이를 드러내며 “영구 없다”를 외치면 안방극장의 관객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친근하고 정감 있는 코미디언이었다.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스캔들이 터져 여러 사람들이 자진 고백하거나 사과하는 일이 있었고 연예인들도 상당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심 씨 역시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다져 놓은 친근한 이미지와 신뢰 때문인지 별 탈 없이 넘어 갔던 것도 사실이다.

한데 영구아트 직원들의 주장대로, 그가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회삿돈을 흥청망청 썼다거나 영화 제작비를 부풀리고 불법 개조한 총을 쏘아댔다면,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으로, 신지식인으로 또 성공한 SF 영화의 선구자로 그를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을 완전 배신한 것이다.

“영구 없다”에 열광했던 수많은 팬들이 진짜 “영구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것인데, 한때 그와 콤비를 이뤘던 ‘땡칠이’에 빗대 욕을 쏟아내도 그는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건 뒤에는 늘 감춰진 진실이 따로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이번 영구아트 사태에서도 우리가 덮어놓고 비난하고 조롱해서는 안 될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두 가지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그를 믿고 죽을힘을 다해 일했던 영구아트 직원들에게 사과하고 밀린 임금을 주어야 한다. 직원들의 월급이 밀린 상황에서 회삿돈으로 도박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피를 뽑아서라도 직원들 월급을 주어야 한다. 두 번째, 그에게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보냈던 팬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숱한 난관을 헤치고 자신의 꿈을 이뤄낸 그래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본을 삼을 만한 훌륭한 인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영구아트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들려온 소식들이, 사실 우리들을 근사하게 한 번 속여 넘겨 큰 웃음 한 번 주려고 부러 해본 짓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이번 일로 상처 받았을 선량한 이들이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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