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필자는 사극 드라마를 즐겨본다. 대개가 아시아N이나 중화TV 등에서 방영하는 중국의 역사드라마다. 중국드라마를 선호하는 것은 나라가 많았고 특히 청나라 때 가장 번성기였던 강희, 옹정, 건륭황제로 이어지는 시기에 얽혀진 이야기들이 많고 다양한 스토리로 인해서다. 물론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하였겠지만 비사나 야사(野史)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다. 분위기 축축한 여름 장마기에 궁중에서 일어나는 사극은 의외로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지난번 시청한 중화TV의 54부작 ‘랑야방(권력의 기록)’이 재방되고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해마다 우리는 6월이 오면 처절한 6.25 한국전쟁을 상기하며 당시 통일의 위업을 이루지 못한 한을 달래곤 한다. 바로 중공군 때문이었다. 만약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 국군과 미군 및 연합군은 남침의 도발자 김일성을 북한 땅에서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했을 것이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이 추켜든 구호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항거하고 북한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오늘날 이 구호가 ‘항한원조’로 바뀐 것은 아닌지, 최근 북한이 서해 NNL부근 어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바다는 옛날부터 고기잡이가 잘 됐다. 조선시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명태 조기 청어 대구 갈치 고등어 멸치 새우 등이 특히 많이 잡혔다. 옛 문헌에도 갈치를 도어(刀魚), 고등어는 고도어(古刀魚), 오징어는 오적어(烏賊魚), 김은 해의(海衣)라 하여 우리 바다에서 많이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아득한 시절부터 함부로 우리 바다에 들어와 고기잡이를 했던 중국 일본은 구한말 개항을 하면서부터는 대놓고 노략질을 했다. 1882년 청나라에게 황해도와 평안도를, 다음해에는 일본에게 경상
이재준 역사연구가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안에는 전사들의 피 튀기는 전쟁의 참상도 서술되고 있다. 칼과 창, 방패만을 가지고 싸워야 했던 고대 전사들의 백병전은 호메로스에게도 처연한 비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인가. 목이 찢기고 살점이 튀며 선혈이 강을 이루었다는 기술이 섬뜩하다.전쟁이 끝난 후 또 하나의 비극은 아름다웠던 도시 트로이의 파괴와 시민들의 수난이었다. 최대 피해자는 전사들 보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었다. 점령군은 어린 왕자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는가 하면 공주나 며느리들을 전리품으로 삼
유월이 왔다. 다가온 유월은 반갑다기보다 오히려 버거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니 이유는 뭘까. 아마 우리에게 있어 유월은 너무나 아픈 상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고 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유월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달이면서도 어쩌면 꼭 기억해야만 하는 달인지도 모른다. 동족상잔(同族相殘), 동족을 향한 총부리는 400만(당시 삼천만 동포)의 희생자를 냈으며 강산은 잿더미로 변했으니, 인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비극의 역사다. 그리고 그 비극은 오늘날까지 ‘정전’과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한국 유학사에서 성인 공자·맹자·주자와 더불어 송자(宋子)로 지칭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숙종 때 거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이다. 왜 우암은 조선 학자로서 성인(聖人)의 ‘子’ 반열로 호칭되는 것일까. 기록을 보면 우암이 송자로 지칭된 것은 정조(正祖)시기 왕명으로 그의 문집을 규장각에서 발간할 당시부터이다. 조선 왕 가운데 가장 혁신적이며 학구적이었던 정조임금은 우암의 학문과 사상을 성인의 반열에까지 높였다. 우암의 심오한 성리학의 세계와 국가관 인품 문학 등 모든 것이 망라된 송자대전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진순신(陳舜臣)의 아편전쟁은 서구의 충격을 받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나라 말기의 중국의 상황과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식인들의 몸부림을 생생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아편전쟁이 벌어지기 1년 전인 1839년 4월, 몰래 북경을 떠나는 공자진(龔自珍)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자진의 부친 공려정(龔麗正)은 국어보주(國語補注)를 남긴 학자였으며, 모친 단순(段馴)은 여류시인으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주를 단 유명한 문자학자 단옥재(段玉裁)의 딸이다. 대단한 혜택을 받고 태어난 셈이다. 진
최상현 주필 전투마다 동학농민군에 관군이 격파되고 쫓기면서 전주가 함락되자 초조해진 고종과 민 왕후는 청군을 불러들였다. 이에 응해 청군이 들어오자 일본 역시 1884년에 맺은 톈진(天津)조약을 내세워 군대를 이 땅에 보냈다. 톈진조약에는 두 나라가 조선에 파병하거나 조선에서 철수할 때 피차에 통보하고 두 나라가 동시에 파병 또는 철수키로 한 조항이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두 나라의 군대가 들어오자 동학농민혁명군은 그들에게 개입 명분을 주지 않으려 관군과 ‘전주화약’을 맺고 싸움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승냥이 본성이 그것으로 거
박상병 정치평론가 19세기 후반, 조선 조정은 국제사회의 변화에 무지한 채 왕권을 지키는 데 급급해 했다. 외교적 무지와 파벌 다툼에 매몰돼 결국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을 자초했을뿐더러 그마저도 주권국가의 권위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굴욕적이었다. 조선을 멸망케 하고 이후 일제 식민지로 편입되는 이 ‘망국의 길’은 결국 ‘천추의 한’으로 지금까지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국내외 주요 갈등의 뿌리도 거기서부터 유래할 것이다. 이미 100년의 역사 동안 켜켜이 쌓인 모순과 갈등, 그 적대의 칼끝은 여전히 우리 스스로
최덕곤 전 하남부시장 현재 우리가 대가 없이 누리고 있는 자유, 민주, 평화는 선조의 피땀으로 점철된 과거에 기인하고 있다.그러나 역사에 대한 방관과 무관심 그리고 배우기를 꺼려하는 탓에 과거의 시간과 현재가 자꾸만 단절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도 점차 퇴화되는 모습이다. 젊은이들이 픽션을 자꾸만 논픽션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역사 단절’이 낳은 병폐현상 중 하나다.더욱 심각한 것은 진정한 반성도 책임규명도 하지 못하는 그런 과오 메카니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체질은
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박 선생! 지난 목요일에 다렌을 거쳐 선양(沈阳)에 왔습니다. 그동안 중국여행은 몇 차례 다녀보았지만 동북지방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중국을 여행할 때마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여행 다니는 곳이 공항이 있거나 고도시 또는 볼거리가 풍성한 이름난 관광지 등 중국정부가 중점적으로 발전을 시도하고 있는 지역이라서 그런가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땅이 넓고 인구 또한 많다보니 현지에서 부딪혀가며 체감되는 것은 대국으로서 중국의 면모이니 돌아다녀 볼수록 새삼
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중국 역사 드라마가 재미있어 필자가 즐겨 TV를 보는데 대개는 청나라 때 이야기다. 건륭제 시대의 내용이 대부분인 바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는 재위기간이 60년이고, 태상황제로 실권을 장악했던 4년까지 합치면 역대 황제 가운데 최장 기간 재위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청나라 영토가 460만㎢였으니 중국 역사상 원나라 이후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제국이었다. 그러하니 건륭제와 관련해 가장 많은 전설과 야사가 전해지고 있어 드라마가 많을 수밖에 없다.최근 국내 케이블TV에서 방영된 건륭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최상현 주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최근 일본을 방문해 일본 수상 아베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아베는 더 말할 것 없이 과거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씻어내려 별 ‘야바위’ 짓을 다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는 한국·중국 등 주변국으로부터는 물론이거니와 세계로부터 고립무원이다. 이래서 한마디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서 메르켈을 초청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혹을 떼기는커녕 도리어 혹을 붙였다.’두 사람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재준 역사연구가 1992년 한·중 간 외교관계 수립으로 대륙의 빗장이 열리자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들 중 상당한 지식인들은 한국의 전통현장에 살아있는 유풍(儒風)에 놀라고 말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왕실의 ‘종묘제례(2001.5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였다. 그 장중한 음악과 참례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이들은 한국을 다시 보게 이르렀다. “당(唐)시대의 공부묘(孔府廟) 제례 음악이 한국에 남아있다니….” 감탄한 중국 정부는 특별히 전문가들을 한국에 보내 종묘제례를 배워 단절된 제례악을 복원했다고 한다
이재준(칼럼니스트·대기자) 중국 복건성에 있는 무이구곡(武夷九曲)은 기묘한 경치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이 명승은 송나라 주자(朱子)의 고향으로 그가 노래한 ‘무이구곡가’는 불후의 명시로 회자된다. 1곡에서 9곡까지 아름다움에 대한 소회가 절실하여 신선의 경지에 빠지게 한다.옛 조선의 석학들이 경승지에 구곡(九曲)을 지어 찬탄한 것은 주자의 멋진 유풍을 닮으려 한 때문이다. 전국에는 구곡이름이 붙여진 경승지가 많으며 퇴계는 도산구곡을, 율곡은 고산을 사랑하여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지었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은 괴산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너도 나도 통일운동에 뛰어드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통일을 무슨 ‘상품’ 쯤으로 생각하는 ‘잡상인’들까지 끼어드는 일은 서글프다. 통일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민족사다. 너도 나도 함께할 수는 있지만 간혹 통일을 핑계 삼아 생계를 해결하려 든다면 이는 차라리 물러나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연계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독립운동 당시 너도 나도 독립을 외쳤지만 우리는 자체의 힘으로 독립을 얻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남녀노소 한결 같이 통일을 말하지만
최상현 주필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 부부가 지난 2013년 6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緩)을 만나주지 않았다. 큰 외교적 결례였다. 미셸은 그 핑계로 자기 딸의 학교 문제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기실은 천안문 진압 기념행사에 참석한 펑리위안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든 미셸 스스로도 그것이 미안하게 느껴지고 국빈에 대한 결례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펑리위안에게 그 일을 변명하는 편지를 썼다. 요지는 이렇다. ‘딸의 학교 문제 때문에 못 만난 것이 미안하
이재준(시나리오 작가·칼럼니스트)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사극(史劇)일수록 역사왜곡 문제가 쟁점이 되곤 한다. 역사학자 가운데 사극을 시청하다 TV채널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막장은 고사하고 실존인물에 대한 왜곡이 도를 넘는다는 것이다. 소도구의 등장에도 웃지 못할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삼국시대를 다룬 모 드라마의 경우 중국 청나라 시대의 분채자기가 등장했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에 조선백자가 탁자 위에 놓이는가 하면 조선시대 가구인 사방탁자가 버젓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5년 전 ‘어 퓨 굿맨(A Few Go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금으로부터 꼭 130년 전인 1884년 12월 4일에 김옥균 등에 의해 일어난 갑신정변은 개혁을 외친 갑오개혁이었다. 조선 후기 이래로 조선시대의 사회는 안으로는 봉건체제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자본주의의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었고, 밖으로는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구미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중인 출신의 지식인과 양반 관료들 사이에서는 조선사회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깨닫고 세계역사의 발전방향에 따라서 사회를 이끌려는
장순휘 한국호국문화선양 협회 사무총장 특히 해군력의 대일(對日) 압박강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중국 해군이 산동반도 칭따오에 기지를 둔 북해함대를 공개한 것은 1894년 9월 17일 패전한 청나라 북양함대의 역사적 계승부대로서 항공모함과 구축함 100여 대와 항공기 30여 대로 편성된 서해에 대한 군사장악력을 한국과 일본 양국에 공식통보한 바와 다름없는 군사적 준도발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북해함대의 공개는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댜오위다오섬 영유권분쟁에서 예상되는 해․공군력의 충돌을 염두에 둔 고도의 군사적 시위(Demonstr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