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최근 일본을 방문해 일본 수상 아베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아베는 더 말할 것 없이 과거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씻어내려 별 ‘야바위’ 짓을 다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는 한국·중국 등 주변국으로부터는 물론이거니와 세계로부터 고립무원이다. 이래서 한마디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서 메르켈을 초청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혹을 떼기는커녕 도리어 혹을 붙였다.’

두 사람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메르켈은 아베에게 정중하게 훈계했다. 메르켈은 ‘과거사 정리는 화해를 위한 전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아베의 양심이 결릴 아픈 지적이다. 초청국의 카운터파트가 옆에 서있는 자리에서 이처럼 몹시 부담스러워할 주제에 대해 정중하지만 가차 없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아베는 이 말에 대해 별 대꾸가 없었다.

메르켈 총리는 이에 앞서 열린 도쿄의 한 강연에서도 같은 기조의 발언들을 쏟아냈었다. 이렇게 말했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연합국이 주도한 뉘른베르크 전범(戰犯) 재판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것을 확실히 지켜봤다”며 “유태인 대학살을 말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다시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행운이었다. 침략을 당한 프랑스의 관용과 독일의 진정한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메르켈의 말이 풍기는 뉘앙스(nuance)는 아베가 집권 이후 취해온 과거사 입장과는 극과 극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아베는 생존 증인들이 증거하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과 중국 난징에서 양민 20만명을 죽인 일제의 대학살극마저 부인하는 후안무치함으로 일관해왔다. 급기야는 한국·중국을 침탈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긴 것은 물론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기습함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가 패전한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강변하는 형편이다.

아베의 논리대로라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당시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전범이 아니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 명령을 내린 승전국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전범이 되는 것이다. 이는 태평양전쟁의 원인을 뒤집어 놓는 것이며 일본의 전범들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의 결과로 수립된 전후 세계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보다 더 전쟁 피해국인 이웃과 세계를 향한 엄중한 도발이 있을 수 없다. 메르켈이 초청국 수반의 면전에서 과거사 정리에 대해 충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베의 도발을 엄중하게 보는 세계의 보편적 시각과 우려를 반영해서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베가 미국에 당장은 ‘곶감’처럼 놀더라도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의 위험성을 절대로 미국이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때가 됐다.

독일의 역사 수정주의는 한 무리의 신(新)나치주의자들이 주동이 된 역사적 반동이라 볼 수 있다. 이쯤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아베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실권 권력 엘리트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함께 움직이는 사회지도층들이다. 그것이 주목을 끈다. 그렇다면 이들이 당장은 평화헌법의 지배를 받는 현재의 잠시 평화주의적인 일본을 장차 어떤 평화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일본으로 바꾸어 놓을지에 우려가 쏟아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같은 아베의 무리들이 더욱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두 나라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메르켈 총리의 아픈 충고에 대해 아베의 똘마니인 외상(外相)을 동원해 나중에 반박한 점이다. 이는 메르켈의 소리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며 별로 경청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일본의 주변국이 독일과 다른 상황에서 일본과 독일을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 자가 말한 독일과 일본의 다른 사정이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된 것은 없지만 보나마나 주변국에 염장 지르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뻔뻔한 아베는 메르켈과 함께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지금껏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참으로 가소로운 소리다. 메르켈도 아마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것도 아베의 야바위 짓이 틀림없지만 아무도 속이지는 못한다. 그들이 근세 들어 1905년 러시아와 현해탄에서 러일전쟁을 벌이고 1984~1985년 그들의 공격으로 청나라와 전쟁을 했으며 1910년 조선을 먹어치우고 1930년대 만주와 중국 대륙을 침탈했으며  1941년 진주만을 기습했다는 것을 세계가 다 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탈한 일은 접어두고라도 미국의 원자탄 공격으로 무조건 항복한 이후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꼬리 내리고 얌전히 지낸 것 말고는 그들이 남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의미의 평화국가였던 때가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껏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침략전쟁의 길을 걸어왔다. 독도가 저희네 땅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그 같은 길을 가는 것과 무관치가 않다. 아베는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그러니 역사 수정주의의 야바위 짓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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