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894년 12월 12일에 고종은 종묘 영녕전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신령 앞에 고했다.“감히 황조(皇祖)와 열성(列聖)의 신령 앞에 고합니다. (중략) 우리 왕조를 세운 지 503년이 되는데 짐의 대에 와서 시운(時運)이 크게 변하고 문화가 개화하였으며 우방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조정의 의견이 일치되어 오직 자주 독립을 해야 우리나라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짐이 어찌 감히 하늘의 시운을 받들어 우리 조종께서 남긴 왕업을 보전하지 않으며 어찌 감히 분발하고 가다듬어 선대의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884년 10월에 김옥균, 박영교·박영효 형제,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20~30대 젊은 급진 개화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변에 일단 성공했지만, 청나라의 신속한 개입과 일본군의 철수로 ‘3일 천하, 정확히 말하면 46시간 천하’로 끝났다.1884년 10월 17일 밤 7시, 서울 견지동 우정총국에선 낙성식(落成式)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총판(總辦) 홍영식이 주관한 연회에는 후트 미국 공사, 영국 공사, 묄렌도르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1873년 11월, 10년간의 대원군 섭정이 끝나고 고종이 친정하자 이번에는 중전 민씨(1897년에 명성황후로 추존)의 척족들이 판쳤다.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민씨들이 정권을 잡자 백성들이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자주 탄식하며 도리어 대원군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적었다.고종과 중전은 돈을 물 쓰듯 썼다. 대원군이 십년간 모은 국고를 일년만에 탕진한 것이다.“원자(나중에 순종)가 1874년 2월에 탄생하면서 궁중에서는 복을 비는 제사를 많이 벌였는데, 팔도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정라곤 논설실장/시인비 그치고 바람이 불자 가로수 은행잎이 많이도 떨어졌다. 차차 앙상한 가지로 드러나는 걸 보면서 가을이 깊어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너나없이 우울하다. 예년 같았으면 겨울맞이하면서 다소 들뜬 연말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는 새해는 여건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졌지만 올 연말은 그렇지 못하다. 더욱이 국내 신규 확진자수가 연일 300명대에 이르고, 정부에서는 3차 유행을 우려하는 상태니 우리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화이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코로나 백신 긴급사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중국에서 ‘중화민족’이란 단어 혹은 개념은 고대와 중세에는 없었고 20세기에 들어와 쑨원 등이 사용했다. 쑨원은 한족이 만주족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면서 ‘중화민족’을 내걸었다. 그런데 1980년 후반부터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을 새롭게 개념화해 이론화했다. 즉, ‘중화민족’은 한족을 중심으로 하고 55개 소수민족이 모두 포함되는 공동체로 제시됐다.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중화민족’은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현재에도 실체가 불분명하다. 이는 중국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갖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지난 22일 부산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했는데 회담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회담 후 양측의 발표와 중국 언론 보도로써 회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보고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우선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대해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한다.이에 반해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양제츠는 ‘중국은 양국 간 고위 교류를 증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6세기 중반 백제 왕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성왕. 일본 긴메이(欽明) 천왕에게 불교를 전래하면서 특별히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관음에 대해 당부한 말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조서를 보내 보주관음에 대해 잊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이것이 일본에 전래된 첫 불교 유물이 아니었을까. 성왕은 왜 ‘보주관음’을 강조했던 것일까.-(전략)…이 법은 무상의 보리(菩提)에 도달 할 수 있다.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들이 여의주를 품고 필요에 따라 모두 먹은 마음대로 되는 것과 같이 이 묘법의 보물도 그렇다. 또 멀리 천축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은 세계 부호자리 1~2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그가 세계의 부호로 성공한 것은 대단하다. 그가 이번에 한국, 일본에 각각 1백만장의 마스크를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마윈은 마스크를 보내면서 ‘산수지린 풍우상제(山水之隣 風雨相濟)라’는 문구를 포장지에 적어 보냈다. ‘가까운 이웃끼리 풍우에는 서로 돕는 것’이라는 뜻이다.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재난을 당했을 때 이 말을 잘 쓰지만 고사에서 전해진 문구는 아니다. 구당서(旧唐书·忠义传·王义方)에는 ‘본래 수재에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수많은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들이 활동하였는데 본 칼럼에서는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이하 도산)의 고귀한 생애를 재조명한다.제목에 도산을 선각자(先覺者)로 소개하였지만 이를 좀 더 세분화한다면 그는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교육자(敎育者), 사상가(思想家)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가 오래전, 종조부(從祖父) 박의서(朴義緖)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귀중한 인연을 맺었는데 그중에 도산의 조카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인연을 기억하면서 선각자, 독립운동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하루 만에 사망자가 254명이 증가해 확진환자가 전일에 비해 9배가 많아진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확진시스템을 달리해 숫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의심환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해왔다. 핵산검사 확진자만 사망통계로 잡았다. 사례정의와 중국 나름의 진단 지침이 바뀌면서 나온 폭발적 증가이다. 고무줄 통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급기야 시진핑은 2600여명의 군대 의료진을 우한에 급파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1600년 11월에 선조는 류성룡의 직첩을 돌려주었고, 1601년 12월에는 서용(敍用)의 명을 내렸다. 그러나 류성룡은 조용히 물러나서 말년을 보내도록 해달라고 선조에게 청했다. 1601년 10월에 류성룡은 청백리로 뽑혔다. 영의정 이항복이 그가 부패 관리라는 오명을 씻어 주기 위해 추천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의 ‘서애청백’ 글에서 류성룡의 청렴을 적었다. 여기엔 정경세가 서애의 아들 류진에게 써 준 시가 있다. 하회 마을 집에 전해 내려오는 것이 서책뿐이니 자손들 나물밥도 채우기 어려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무척이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황금 돼지의 해’ 기해년(己亥年)을 보내고, ‘하얀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이하며, 조선 시대의 주요 사건들에 연계된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이야기들이 떠올려진다.천지(天地)와 연계된 십간십이지에서 천간(天干)을 일컫는 십간(十干)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이다. 그리고 지지(地支)를 일컫는 십이지(十二支)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띠’와 연계돼 있다.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를 동물 이름으로 상징해 부르는 띠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백마 탄 왕자님’은 여성들의 로망인가. 소녀라면 누구나 신데렐라처럼 일생에 한 번 잘 생긴 왕자님의 프러포즈를 받아봤으면 하는 꿈은 갖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마를 탄 왕자님의 출현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백마는 회색 말이 노화되면서 하얀 털이 많아져 생긴 것이라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백마를 신성하게 여겨 궁 안에서 여러 마리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백마는 의장용이지 전장에서는 창검을 피하며 적진을 돌파 할 수 없다. 진짜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은 적토마(赤兎馬)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대마도 이즈하라 수선사(修善寺)에서 면암 최익현(1833~1906) 순국비를 보았다. 비 앞면에는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지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비는 1986년 8월 3일에 한국 일해재단(日海財團)과 대마도 대표들이 세웠다.순국비 제막식 때 KBS 취재팀이 대마도의 향토사학자 나카도메 히사에와에게 “항일투사의 순국비를 왜 일본에 세우는가?”라고 질문했다. 나카도메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세계 어느 나라든 다 같다. 이를 주창하는 것이 곧 무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10월 26일은 안중근 의거 110주년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반 경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처단했다.오전 9시경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열차가 하얼빈 역에 멈췄다. 이토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체프와 약 25분간 대화를 나눈 뒤, 의장대를 사열하고 각국 사절단의 인사를 받았다.의장대 뒤에서 기회를 노린 안중근은 이토가 10여보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브라우닝 권총을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중국공산당 4중전회가 28∼31일까지 북경에서 열린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대해 중국을 이해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작년 6월 3중전회 이후 근 20개월 만에 열리는 것이다.이번에는 홍콩 사태로 인해 공산당 지도부의 정치국원을 일부 교체하고 시진핑(習近平)의 후계구도를 위해 사전정지 작업을 한다는 얘기들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소황제(小皇帝)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시진핑이 쉽게 권력누수를 용인할 것 같지는 않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사람이 슬픈 일이 생겨 통곡 끝에 더욱 처절한 심경이 되면 피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혈루(血淚)라는 것이다. 청나라 오용당(吳溶堂)이 편찬한 보영이지록(保嬰易知錄)에는 ‘태열(胎熱)과 태화(胎火)에 의한 것이다(乃胎熱胎火所致)’라고 적고 있다. 눈은 간규(肝竅)이며 혈은 심액(心液)인데 화(火)가 심(心)과 간(肝)을 작열시키면 혈을 위로 넘치게 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종의 병이라고 했다. 천하의 영웅이라는 항우는 일상에서 매우 냉혹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해하전(垓河戰)에서 대패하고
박상병 정치평론가“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한다(한일의정서 제3조).”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일제는 한국을 압박해 1904년 2월 를 체결한다. 겉으로는 동양의 평화(1조), 한일 양국의 친선과 우의(2조)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전쟁수행을 위한 병참기지가 핵심이다. 제4조에 일본의 ‘필요한 조치’와 군사기지(군략상 필요한 지점) 이용을 적시한 것이다. 용산에 일본군 기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다.심지어 제5조에는 한일 양국의 승인 없이 이 조약의 취지에 어긋나는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와 20세기 전반 ‘극단의 시대’에는 무역으로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총칼을 든 군인들이 전쟁을 통해 국경을 무력화시켰다. 영국이 청나라가 아편문제로 수입규제를 단행하자 역사적인 ‘아편전쟁’을 일으켰으며, 일본은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조치에 불만을 품고 기습적으로 진주만을 공격, 태평양 전쟁을 불러왔다. 통상정책과 무력 압박을 병행했던 게 제국주의 시대의 단면이었다.수천만의 인명을 살상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체제 대결로 극심한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닮은 점은 두 전쟁 모두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싸웠고, 전쟁은 선전포고 없이 일본의 기습으로 시작된 점이다.다른 점은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겼으나 러시아 등 삼국간섭으로 한반도 지배에 차질이 생겼고, 러일전쟁에서 이긴 후에는 미국과 영국의 양해 아래 한반도를 지배하게 된 점이다.1894년 2월 10일(음력 1월 10일)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해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들이 봉기했다. 5월 31일에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고종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