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안에는 전사들의 피 튀기는 전쟁의 참상도 서술되고 있다. 칼과 창, 방패만을 가지고 싸워야 했던 고대 전사들의 백병전은 호메로스에게도 처연한 비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인가. 목이 찢기고 살점이 튀며 선혈이 강을 이루었다는 기술이 섬뜩하다.

전쟁이 끝난 후 또 하나의 비극은 아름다웠던 도시 트로이의 파괴와 시민들의 수난이었다. 최대 피해자는 전사들 보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었다. 점령군은 어린 왕자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는가 하면 공주나 며느리들을 전리품으로 삼아 장수들의 성 노리개로 분배했다.

12세기 몽골군은 연합군을 편성하여 바그다드를 공격했다. 이 시기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의 제37대 칼리프인 무스타 아쉼이 통치하던 수도였다. 어 떤 외침에도 난공불락이었던 바그다드 시민들은 성문을 굳게 잠그고 항전을 선언한다. 몽골군은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준다고 했지만 아쉼은 알라신을 믿고 이 제의를 거절했다.

전쟁은 7일간 계속됐다. 몽골군은 결국 성을 넘어 시내로 진입했고 비인도적 살육이 시작되었다. 바그다드 시민 20만명이 몰살됐다는 설도 있고 10만명을 살해했다는 기록도 있다. 도시는 점령군의 방화로 처참하게 파괴되었으며 길에 널려있는 시체들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전한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미증유의 국난으로 기록되는 임진전쟁. 병자호란, 6.25 동족상잔의 사망자는 약 1천만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민초들이었다.

임진전쟁은 일본군에 의해 7년간 국토가 유린되어 그 참상은 글로 표현이 안 된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간 포로 숫자는 50만명이었다. 청에 교섭하여 많은 사람들이 귀국은 했지만 집에 돌아 온 숫자는 그 반도 안 된다.

부모는 자식을 잃고 자식은 고아가 돼 걸인이 된 숫자들이 수백만이었다. 생존한 부모들마저 자식을 간수하지 못해 종으로 팔았고 기아와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의 거리에 가득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1천만 이산가족을 만든 66년전 6.25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의 비극 사다. 현재도 남북분단의 장벽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으며 갈등은 첨예화 되고 있다. 1세대 이산가족들은 하나 둘 모두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데도 재회의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용산전쟁기념관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천지일보가 마련한 ‘전쟁과 평화 특별사진전’은 6.25의 비극을 실감시켜 준 특별한 기회였다. 미국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 속에는 전쟁으로 고통 받았던 힘없는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눈물겹다. 누가 이런 전쟁을 일으켰는가.

지금 한반도 정세는 어떤가. 북한 핵을 두고 사드 배치문제로 미,중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더해지고 있다. 북한은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연일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에 핵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피해는 과거 재래전쟁의 양상이 아닐 게다. 우리민족의 장래도 불투명하며 세계는 감내하지 못할 파국으로 치달을 지도 모른다.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이 줄 곳 추진해온 전쟁 종식 평화 운동이야 말로 이 시기 가장 절실한 메시지이며 전 세계에서 서명이 이뤄지고 있는 평화협정은 꼭 실현돼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한반도의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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