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通] 중국 우한과 코로나19
[중국通] 중국 우한과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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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하루 만에 사망자가 254명이 증가해 확진환자가 전일에 비해 9배가 많아진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확진시스템을 달리해 숫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의심환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해왔다. 핵산검사 확진자만 사망통계로 잡았다. 사례정의와 중국 나름의 진단 지침이 바뀌면서 나온 폭발적 증가이다. 고무줄 통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급기야 시진핑은 2600여명의 군대 의료진을 우한에 급파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관료 인사책임을 물어 후베이성과 우한시 당서기를 시진핑 측근으로 교체했다. 후베이성의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어, 시진핑 등 중앙정부의 집중적 책임을 피해가고, 날로 악화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장차오량서기를 잉융 상하이시장으로 대체해 당서기 자리를 인계하게 한 것이다. 새로 임명된 후베이성의 1인자 잉융은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를 역임할 때 같은 성의 고급인민법원장을 수행해낸 측근이다.

영국 전문가 임피리얼칼리지의 닐 퍼거슨 교수의 코로나19 환자가 1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그냥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사이 우한은 텅빈 유령의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으며, 병원에 출퇴근하는 의료진만 차량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한산하다. 서울 보다 크고 인구 1100만 도시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행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한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성이 있는 도시이다. 왕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바뀐 것이 중국의 신해혁명이 아닌가.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역임한 부의가 나오는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는 청나라를 배경으로 만들어 졌다. 바로 1911년 10월 10일 신해혁명이 발발한 역사적 도시이다. 때문에 우한시민들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만주족인 청왕조를 무너트리고 중화민족이라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정을 탄생시킨 혁명의 도시이다. 아직도 대만에서는 쌍십절(10월 10일)이라는 이름으로 우한에서 일어난 신해혁명을 중시한다. 물론 대륙의 공산당 정권은 대만과 약간 온도 차가 있지만, 우한의 중요성은 현재에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우한은 소위 중원지방의 핵심 도시이다. 중국을 4등분으로 나누면 거의 정중앙에 위치해있다. 인체로 따지면 배꼽에 해당되는 곳이다. 고속철도가 지나가고, 내륙의 배들이 지나가고, 세계 곳곳으로 비행기가 드나들고, 독일 뒤스부르크까지 국제화물 철도가 연결돼 운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수준도 북경과 비슷하다.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에 육박한다. 상하이 보다 높은 수치이다. 괜히 중국의 7대 도시가 된 것이 아니다. 소득의 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중국 국내뿐이 아니고 해외로도 많은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이다.

우한에서 외지로 500만명 이상이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춘절 전에 이동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분들이 국내뿐이 아니고 세계로 흩어진 것이다. 치사율은 2003년 사스 때보다 낮지만 전염감염률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의료전문가들의 말들이 걱정을 자아낼 뿐이다. 중국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 중에 하나인 우한에서 인류가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니 중국 중앙정부와 인민들은 당황스러움을 뛰어넘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우한 힘내라! 중국 힘내라!’라는 세계 각국 유명인사의 중국 티비출연 격려의 메시지가 귀에서 계속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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