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백마 탄 김정은
[이재준 문화칼럼] 백마 탄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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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백마 탄 왕자님’은 여성들의 로망인가. 소녀라면 누구나 신데렐라처럼 일생에 한 번 잘 생긴 왕자님의 프러포즈를 받아봤으면 하는 꿈은 갖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마를 탄 왕자님의 출현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백마는 회색 말이 노화되면서 하얀 털이 많아져 생긴 것이라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백마를 신성하게 여겨 궁 안에서 여러 마리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백마는 의장용이지 전장에서는 창검을 피하며 적진을 돌파 할 수 없다. 

진짜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은 적토마(赤兎馬)다. 온 몸에 윤기가 넘치며 적색이 진해야 한다. 적토마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운명을 같이 한 명마(名馬)다. 한혈마(汗血馬)는 달릴 때 붉은 피땀까지 흘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말은 중국의 역사를 바꿔 놓기도 했다. 한(漢) 무제(武帝)는 서역의 페르가나에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피땀을 흘린다는 명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정벌에 나섰다. 무제의 원정군은 서역에서 결국 한혈마를 얻었다고 한다. 

오늘날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이 원산지인 ‘아칼 테케(Akhal Teke)’가 한혈마의 혈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구려 동명왕의 어머니 유화는 아들을 위기에서 건질 때 말을 이용했다. 적토마를 굶겨 마르게 위장하고 나중에 아들을 북부여에서 탈출 시키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주몽이 북부여 궁을 탈출, 남쪽으로 도망하면서 군사들의 추격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의 주력 때문이었다. 

김유신은 화랑이었을 때 서라벌 낮은 계급이었던 천관녀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어머니는 유신을 심하게 질책했다.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김유신은 무술연마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깐 조는 사이 말이 천관녀 집 앞까지 갔다. 자신을 책망한 김유신은 말에서 내려 단칼로 애마의 목을 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백마는 천신에 제사 지낼 때는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백제, 신라왕은 665AD 8월 공주 인근의 취리산(就利山)에서 만난다. 그리고 다시는 싸우지 않을 것을 금서(金書)로 서약한 후 백마를 죽여 그 피를 입에 묻혔다. 이 회맹이후 신라군과 백제 복국군의 충돌은 나타나지 않았다. 

청나라 강희, 건륭제는 말을 무척 좋아한 황제였다. 주변국에게 매년 조공 품목으로 명마를 넣었다. 건륭제 때 이탈리아 화가 낭세령(郎世寧. 이탈리아 이름. Castiglione, Giuseppe)은 중국으로 귀화해 궁중 화원이 되었으며 특히 백마 그림을 잘 그렸다. 건륭황제는 낭세령의 극사실화를 좋아해 이를 궁중에 걸고 완상했다고 한다. 실제 그림을 보면 말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날 낭세령의 그림 값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비싸며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을 찾아 군 간부들과 백마 퍼포먼스를 했다. 조부 김일성이 항일 운동 때를 재현하며 미국에게 결전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자력갱생 불굴의 정신력으로 사회주의 부강조국 건설에 총 매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항일혁명성지’로 선전하는 10여 곳을 일일이 시찰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부인 이설주까지 대동, 금슬을 자랑하며 마상 행렬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일제 강점기 팔로군이나 항일 무력부대 지휘관들이 하던 모습이다. 미국에 굽히지 않으려 한 번 폼을 잡으려 한 것 같은데 늙고 허약한 백마들이 힘겹게 느껴진다. 국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한가롭게 시대착오적 백마 퍼포먼스나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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