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간송미술관 불상 경매
[이재준 문화칼럼] 간송미술관 불상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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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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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반 백제 왕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성왕. 일본 긴메이(欽明) 천왕에게 불교를 전래하면서 특별히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관음에 대해 당부한 말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조서를 보내 보주관음에 대해 잊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이것이 일본에 전래된 첫 불교 유물이 아니었을까. 성왕은 왜 ‘보주관음’을 강조했던 것일까.

-(전략)…이 법은 무상의 보리(菩提)에 도달 할 수 있다.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들이 여의주를 품고 필요에 따라 모두 먹은 마음대로 되는 것과 같이 이 묘법의 보물도 그렇다. 또 멀리 천축에서 삼한에 이르기까지 교에 따라 받들어 모시고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다…(하략) (日本書紀 卷第 19. 欽明13년 冬 10月條)

성왕은 불상과 경전 그리고 장식물(幡蓋)등을 긴메이 천왕에게 하사했다. 천지(天地) 180신을 숭배했던 당시 일본은 불교에 대해 무지했다. 반대하는 신료들 때문에 이들 불상과 보물을 궁중에 두지도 못하고 자원한 중신 집으로 보내 간직토록 했다.

성왕은 백제를 선진국으로 도약시켜준 남조 양(梁)나라에 대한 고마움이 두터웠다. 무제(武帝)를 기리기 위해 웅진(公州)에 대통사(大通寺)를 짓기까지 했다.

1884년 청나라 말기 중국 성도(成都) 만불사(萬佛寺) 유적에서 매우 흥미로운 유물들이 출토됐다. 중국학자들이 배병식(背屛式) 불상이라고 하는 뒤에 광배가 달린 양나라 유물인 대리석제 보살상군이 여러 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특별히 보주를 들고 있는(奉寶珠) 보살들이 있었던 것이다.

보살들은 모두 아름다운 자태와 미소를 머금고 있다. 흡사 서산 운산면 마애삼존불에서 보이는 보살상을 닮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천의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두 손을 흉전에 모아 왼손에 든 보주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보주를 든 관음보살 신앙이 백제 후기에 유행되었다. 부여에서 출토된 많은 불교유물 가운데는 보살상이 가장 많다. 그 가운데 보주를 든 불상등이 있다. 일본에 전래된 보살상 가운데는 특별히 보주를 들고 있는 관음이 제일 많다. 백제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전래된 것들이다.

과중한 상속세가 부담이 된 간송미술관이 보물 두 점을 모 옥션 경매에 내놓았으나 모두 유찰됐다고 한다. 재벌이나 재력가들이 현 시국과 경제상황에서 선뜻 거액을 들여 문화재를 사들이는 것 자체가 부담 되었을 게다. 사재를 털어 해외로 반출될 위기의 문화유산을 지켰던 간송이라 경영난 소식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에 경매에 붙여졌던 두 개의 불상 가운데 하나가 보물 285호 보주관음이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얼굴은 길고 갸름한 편이다. 코가 작은데다 입술도 작아 영락없는 평범한 한국 여인의 얼굴이다. 영락은 어깨로부터 내려와 하복부에서 원형의 큰 구슬을 통과해 X자로 교차됐다. 천의는 삼국시대 양식으로 여러 갈래로 칼처럼 뻗어있다.

이 불상의 국적은 어디일까. 간송 미술관 자료에 따르면 이 불상은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토됐다는 것이다. 거창은 본래 가야 땅이었지만 백제 땅 남원과 인접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관음을 백제의 소작으로도 본다.

성왕의 염원처럼 보주관음은 민생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보살이다. 간송 미술관이 지금의 어려운 사정을 잘 극복해 민족문화 창달에 계속 기여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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