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동백기름 발라 참빗으로 머리 빗다가 우리 남매 등록금 고지서 보며 한숨 쉬는 아버지를 슬며시 돌아보는 어머니 어두운 불빛에도 대낮의 환한 빛 아래서 그림 색칠하는 붓처럼 곱게 빗질하던 어머니 손길 멈춘다 깨알처럼 써진 가계부 숫자 하나하나 빗으로 읽어 내려가다 끝장을 넘기신 어머니 입가의 미소 띄우며 빗질을 계속 하시며 혼잣말 한다 7남매 건강 하것다 우리 부부 건강 하것다 뭔 걱정이까 가을 수확 후 갚으면 되제 허-헛! 기침하시며 마루로 나가시는 아버지 방문을 닫고 소리 없이 큰 숨 내쉬던 어머니
윤용호 소설가 전국 집값 상승은 강남이 주도한다. 한때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직까지 이 약발은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가 전율하는 총체적 경제 위기로 사정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말이다. 사실 강남의 집값이 상한가를 치던 시절은 노무현 정권 때였다. 당시 그 기세가 얼마나 등등하던지 정부는 갖은 시책으로 이곳의 집값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바람에 전국의 부동산 가격까지 춤을 추게 만들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이 강남을 부정과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땅이라고 여겨 직접 칼을 뽑아들었다. 더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최근 급증하는 아동 청소년 환자들을 경험하고 있다. 다양한 문제로 내원하는 아이들이지만 절제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이어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부모가 아이의 모든 욕구를 다 들어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한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지 아닌지보다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었는가의 여부가 더 작용한다. 아이의 물질적 욕구는 점차 커져서 나중에는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정수연 통섭예술인어린왕자가 자신의 제1호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니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서워?”라고 한다. 어린왕자가 그린 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인데 어른들은 모자처럼 보고 스스로의 눈높이로 판단하였으며 어린왕자가 설명을 해주어야 그제야 알아챘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청담동에서 열린 미술전시회 ‘Like wind: 자연과 사회, 그 사이 사람’에서 광물의 사회학을 표현하는 박승희 화가는 광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세계를 얘기하였다. 마치 통섭학자들이 개미를 사회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
지금 서방세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유럽의 원조격인 이탈리아․그리스는 풍전등화(風前燈火) 그 자체다. 요즘 세계 뉴스의 탑은 그리스에 가 있다. 그리스는 총파업으로 굶주림과 대중교통의 마비 나아가 국가의 주요 기능마저 마비돼 가고 있다.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져 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더 큰 문제는 그리스 부도사태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조짐이 크다는 데 있다. 사실상 유럽의 시대는 그 끝을 선고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가 의지할 곳은 아시아뿐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현실도 아직까진 그리 녹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저조한 출산율로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지자체마다 출산을 장려한다든지 다자녀 가정에 혜택을 주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업이 있는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각 직장별 복지혜택도 조금씩 늘어가고는 있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한 걱정과 부담은 여전하다. 최근 한 초등학교 교사가 산전후 휴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동료 여교사가 교원 성과상여금 최하등급인 B등급을 받은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문화재 관리와 보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우리 민족은 우수한 문화재를 강탈당한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로도 문화재 국내외 밀반출, 도난 사건 등으로 정부가 문화재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국보 1호인 숭례문 화재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소실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훼손될 위험이 높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리와 보존에 힘써야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옆집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개구쟁이 녀석이 요즘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우는소리를 한다고 했다. 학교가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녀석 담임이 여자 교사인데,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은 물론 체육시간에도 아이들이 새색시처럼 굴지 않으면 엄청 혼을 낸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요즘 아들 키우는 부모들이 은근히 속을 태우고 있다. 남자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여자 담임만 만나게 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인데, 여자 선생님이 왜? 엄마들이 하는 소
이병익 정치평론가 김대중 정부 때 최초로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당시는 국무총리에만 적용됐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장관급 이상에 대한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것이다. 최초로 인사청문회에 선 사람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였다. 이한동은 민주당, 자민련 공동정부의 국무총리 후보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을 받는 입장에 서게 됐다. 검증의 주요 논점인 병역 문제, 재산형성 문제, 도덕성에 기초를 두고 철저한 검증이 시작됐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미움을 산 이한동 전 총리는 그들의 압박을 받아
박종윤 소설가 굴원은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 우국지사였다. 이름은 평(平), 자는 원(原). 초나라 회왕(懷王)을 도와 공을 많이 세웠으나 참소를 당하여 한때 방랑생활을 하다가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하고 회사부(懷沙賦)를 읊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초사(楚辭)에 수록된 25편 중 ‘이소’ ‘천문’ ‘구장’이 남아 있다. 굴원은 왕족으로 일찍부터 회왕의 좌도(보좌관)로 임명되었다. 그는 학문이 높고 식견이 뛰어나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쌓았다. 궁중에서 왕의 상담역을 맡아 나랏일을 도모하고 외교면에서도 빈객
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어느 날 필자는 대학원 신입생 발표회가 있어서 학교 기자재를 빌릴 기회가 있었다. 다른 과에 다니는 한 한국인 친구가 학교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 건물 1층에서 신입생 발표가 있었기에 가깝고 해서 잠시 기자재를 맡겨두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긴 발표가 끝나고 기자재를 반납할 시간이 가까이 다가와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마침 그 시간에 수업을 받고 있는 친구의 사정으로 교실로 직접 찾아가 아이디와 열쇠를 받아 가지고 와야 했다. 시간 안에 기자재를 반납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 학교에선 어떤 건물
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는 눈으로 발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역들이 저마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 그곳에서 나서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아름다움과 함께 늘 같이해 온 얘기가 있고, 그 이야기 또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때의 얘기로 끝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온갖 교훈을 남기기도 하고 때론 먼 훗날을 기약한 소망 섞인 이야기로 승화되어 전해지기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당연히 인정된 기본적 권리를 우리는 인권이라고 부른다. 인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광범위한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만이 옳고, 나만이 잘났다는 생각은 상대를 폄하하고 무시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상대방을 정죄하게 되고 심지어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나와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면서 ‘인권’을 무시하는 세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노예제도와 남성에게만 참정권이나 선거권이 주어졌던 시대가 그랬다. 이런 일은 나라와 시대를 초월해
10.26 재보궐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 네거티브 공방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당초 두 후보는 지난 4일 청계천에서 열린 ‘희망 나눔 걷기대회’에서 이번 선거를 정책선거로 하자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책대결은 온데간데없고 상호 비방과 의혹 제기로 얼룩지고 있다.네거티브전은 지난 9일 박 후보가 6개월 방위로 복무한 것을 두고 나 후보 측이 병역을 기피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나 후보뿐 아니라 같은 당 홍준표 대표, 신지호 의원, 김기현 당 대변인
최상현 주필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은 됐으나 한국에 돌아온 것은 자주독립의 기회가 아니었다. 도리어 남북분단의 비극이 찾아왔다. 북위 38도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군이 각각 진주해 한반도의 허리가 잘리게 된 것이다. 소련은 일제의 패망이 확실해지고 승전국 미국이 긴 전쟁으로 탈진해 있는 틈을 타 일제가 항복하기 불과 6일 전에 약삭빠르게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는 파죽지세로 한반도에 점령군을 투입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소련의 독자적 행동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
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서울시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10.26 서울시장 재선거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하여 요즘 진흙탕게임인지 인물검증게임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민의 미래를 확정할 수 있는 정책대결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된 것 같고 그나마 예의상 TV 토론회를 중심으로 하여 나름대로의 정책 토론도 했건만 정책을 가지고 무엇이 서울시민들에게 유익한 것인지에 대해 다투는 정책게임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자가 상당히 선전하고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흙이 뭐길래. 야구장 흙이 엉뚱하게 수난을 받고 있다. 현재 야구장 흙은 그냥 흙이 아니고 발암물질인 석면이 다량 포함된 ‘불량 흙’이라는 것이다. 이 흙 속에서 뒹구는 선수들이나 경기를 즐기는 관중들의 건강에 큰 위험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이미 나왔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정작 야구장 흙 때문에 건강에 대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덧씌워진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필자는 4강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며 박진감을 더해가는
아, 나는 일렁이는 새 땅에 첫발을 디뎠다. 어제부터 차가워진 맨 발을 벗고 아, 나는 상처 날 곳에 두 발을 딛고 섰다. 새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대의 별 테두리는 해처럼 검게 폭발해대었다. 밀려드는 우주의 열기에 온갖 불순한 것들이 증발하여 머리 위에 일곱 겹의 무지개를 이루고 하늘은 온통 빛과 불꽃으로 아롱대었다. 새 세상에서는 금성이 달을 대신할 거요. 옛 먼 바다가 비로 변해 내려와 대지를 굳게 식혀주고 나의 발자국을 따라올 그대는 결단코 헤매지 아니할 거요. 앞선 길 끝에 서 있을 나에게로 그대는 뽀얀 새 땅을 밟고 곧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