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는 눈으로 발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역들이 저마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 그곳에서 나서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 아름다움과 함께 늘 같이해 온 얘기가 있고, 그 이야기 또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때의 얘기로 끝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온갖 교훈을 남기기도 하고 때론 먼 훗날을 기약한 소망 섞인 이야기로 승화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얘기를 듣노라면 우리의 선조들은 악(惡)을 싫어했고 선(善)을 택한 착하고 어진 성품을 가졌으며, 화(禍)보다는 복(福)을 빌었고 나아가 저주와 증오보다 사랑과 행복으로 끝을 맺기를 주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는 항상 여운과 함께 많은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얘기 중에 필자는 얼마 전 아름답기로 유명한 거제도 앞바다에 있는 소매물도를 찾은 적이 있다. 찾은 이유는 소매물도의 관광답사코스와 상관없는 ‘굴’ 하나를 찾아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일행이 타고 간 여객선과 다르게 별도의 작은 고깃배를 빌려 거센 파도를 가르며 다가간 곳은 기암괴석으로 천혜(天惠) 비경(秘境)을 그대로 간직한 소매물도와 이웃한 등대섬 옆구리의 ‘글씽이 굴’이다. 소위 말하는 진시황이 보낸 서복(서불)이 이곳을 지나다 절경에 반해 머물러 갔다는 ‘서불과차(徐芾過此, 서복이 지나갔다)’라는 글이 쓰여 전해 내려왔다는 굴을 말하는 것이다. 과연 당시 서복이 마음을 빼앗겼을 만한 천혜의 비경임엔 틀림이 없었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세상을 다 가졌으나 본인이 갖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게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목숨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린 시황제라 할지라도 한갓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갖지 못한 남은 한 가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부하 서복을 시켜 명약인 불로초를 구해올 것을 명했던 것이다.

불로장생한다는 불로초가 있다는 곳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땅 바로 이 한반도였던 것이다. 신하 서복은 그 명을 받들기 위해 동남동녀들과 함께 이 한반도 이곳저곳 명산은 다 뒤지고 다녔으니, 그가 다녀간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소매물도 등대섬의 ‘글씽이굴’이다. 그 옛날 서복과 그 일행도 이날처럼 배를 타고 너울 파도를 가르며 이곳을 그렇게 찾았으리라. 그가 남긴 흔적은 여기뿐만이 아니다. 거제면에 가면 ‘서복이 자고 갔다’는 데서 유래한 누울 와(臥)자를 쓴 ‘누우래’라는 지명과 함께 경치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남해의 금산과 제주도의 서귀포엔 아직도 서복이 다녀간 흔적과 함께 그날의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복이 불로초를 캐기 위해 한반도 전역을 뒤졌지만 그가 찾는 불로초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찾았다면 어쩌면 진나라의 시황제는 지금껏 살아 있어야 했을 게다.
그렇다면 불로초는 없단 말인가. 아니면 불로초가 갖는 또 다른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또 진시황은 불로초가 왜 이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의문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고서 또는 예언서들에 보면 한결같이 한 천택지인(天擇之人)이 있어 삼풍지곡(三豊之穀) 즉, 하늘로부터 세 가지 풍요로운 곡식을 가져오는데 그것은 바로 화우로(火雨露)라고 하는 하늘양식이라고 한다. 이 하늘양식을 일음연수(一飮延壽) 즉, 한 모금씩 마시면 영생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며, 이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보내신 한 성인의 입에서 나오는 言(火雨露로 비유된 말)을 샘물 삼아 한 모금 한 모금 연달아 마시면 영생불사(永生不死)한다는 것이다.

바로 때가 되어 이 강산에서 하늘이 택한 한 목자가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와 열어 알려 줄 때 듣고 깨달아야만 하늘이 예비한 복(福)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제 이런 일이 있을 때 이 얘기는 얘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시황과 서복으로 하여금 미리 사건을 통해 알려준 축복의 예언적 의미가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생각나는 것은 그 옛날부터 이 강산 위에 유독 많은 얘기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구전(口傳)되어 온 것은 한 때를 만난 우리에게 중대한 사실 즉, 불로초의 진정한 의미와 그 실체를 찾으라는 시대적 명령이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는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진시황제와 같이 부지불식간에 이 불로초를 찾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