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어느 날 필자는 대학원 신입생 발표회가 있어서 학교 기자재를 빌릴 기회가 있었다. 다른 과에 다니는 한 한국인 친구가 학교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 건물 1층에서 신입생 발표가 있었기에 가깝고 해서 잠시 기자재를 맡겨두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긴 발표가 끝나고 기자재를 반납할 시간이 가까이 다가와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마침 그 시간에 수업을 받고 있는 친구의 사정으로 교실로 직접 찾아가 아이디와 열쇠를 받아 가지고 와야 했다. 시간 안에 기자재를 반납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 학교에선 어떤 건물이든지 모든 학생들의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절차를 거친 후 들여보내주는데, 친구의 숙소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때 문제가 발생했는데, 갑자기 경비가 불러 세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문 앞에서 학생증으로 신분 확인한 것도 모자랐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서 불러 세운 게 아니었다.

불러 세운 이유는 필자가 아무리 학교 학생이라도 기숙사에 사는 거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긴 설명을 해야 했다. 필자가 빌린 학교 기자재가 여기 사는 내 친구의 기숙사 방에 지금 있는데, 오늘까지 반납해야 하고, 그 친구가 현재 수업을 듣는 중이라 교실로 찾아가 아이디와 방 열쇠를 빌려왔으며 그 친구의 허락하에 직접 가져가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가야 하는 방의 호수까지도 함께 제시하였지만, 경비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설명하다가 필자가 매우 기분 나쁠 정도의 행태로 친구의 아이디와 방 열쇠를 그 자리에서 빼앗는 것이 아닌가.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에게 문자로 현재 상황을 급히 전달하긴 했지만, 모든 상황 설명을 했는데도 마치 필자를 도둑 취급을 하며 친구의 아이디와 방 열쇠까지 빼앗고, 학교 정책만 운운하고 깐깐하게 구는 그 경비 아저씨가 사실 처음엔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 친구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혹여나 문 앞에서 본인 아이디와 방 열쇠를 나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에 없어서 불편을 겪는 일이 발생될 것을 염려해서 그 경비원에게 아이디와 열쇠를 빌린 것은 필자이니 친절을 베푼 그 친구에게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해야 한다고 여러 번 부탁하고 강조해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개인적으로 기분 나쁘게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 또한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것임을 후에 알게 되면서 모든 상황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아이디는 본인을 증명하고 보호하는 생명카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필자는 한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고등학교 2년, 대학교 3년으로 총 5년에 가깝게 해본 경험이 있다. 때론 빠뜨린 준비물을 친구에게 어떤 땐 부탁하며 방 열쇠를 내어준 경우도 있었고, 친구에게 부탁을 받아 친구 방에 가서 물건을 챙겨다 갖다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열쇠와 아이디만 있으면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궁금해하지 않고 통과되는 융통성 있는 한국인 경비만 생각했었지, 이렇게 세세하고 꼼꼼하게 철저하리만큼 재확인을 하고 또 방주인의 확인 서명까지 받아 와야지만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게 하는 미국의 철저한 보안문화는 융통성 없이 냉정하게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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