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어린왕자가 자신의 제1호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니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서워?”라고 한다. 어린왕자가 그린 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인데 어른들은 모자처럼 보고 스스로의 눈높이로 판단하였으며 어린왕자가 설명을 해주어야 그제야 알아챘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청담동에서 열린 미술전시회 ‘Like wind: 자연과 사회, 그 사이 사람’에서 광물의 사회학을 표현하는 박승희 화가는 광물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세계를 얘기하였다. 마치 통섭학자들이 개미를 사회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고판이 화가는 “자유로우려면 자유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잡초’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식물 이름을 몰라서 스스로 잡초라 부르는 순간 뽑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엄습하였다고 한다. 어린왕자 이야기에서처럼 어른들이 보아를 모자로 생각한 순간 더 이상의 보아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번은 사막을 여행하게 되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벌판만 계속되었다. 또 태양 볕은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물도 이미 바닥이 났다. 두 사람은 지칠 때로 지쳤다. 급기야 아들은 체념한 듯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힘들게 걸어가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달랬다. “아들아,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걸어가면 틀림없이 시원한 오아시스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어갔다. 한동안 걸어가던 그들의 눈앞에 몇 개의 큰 무덤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순간 아들은 절망한 듯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보세요. 이 사람들도 결국은 죽어서 여기에 묻히고 말았지 않습니까? 우린들 별수 있겠습니까?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애야, 이제는 우리가 정말 안심해도 되겠구나!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산 사람들이 이들을 여기에 묻지 않았겠느냐? 그러니 틀림없이 이 근처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 가지 않아서 큰 오아시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동안 갈했던 목을 시원하게 적실 수가 있었다.’

이 글에서 보듯이 사람마다 판단의 수준이 다르다. 스티브 잡스는 “평생 설탕물이나 팔 겁니까, 아니면 나와 같이 세상을 바꿀 겁니까? 해군이 될 바에야 해적이 되자.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에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의 글에서 모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남들이 가기 힘든 곳을 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사진작가라 부를 수 있을까요?”라는 이상한 질문을 하였다. 작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에 대하여 나는 “경계를 짓는 자는 스스로 자신이 정한 그 안에 갇힐 것이 분명하다”는 답을 하고자 한다. 1960년대에 미국이 달나라에서 사용할 볼펜을 개발하려고 불필요한 애를 쓴 적이 있었다. 달나라에서는 연필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볼펜이라는 단어에 매몰된 결과였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는 단어에 매몰되어 이성과 감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용하는 단어의 종류와 그들에 대한 정의가 중요한데 통섭과 융합적 사고가 편협한 판단을 방지해 준다.

경제학 학사, 음악 석박사인 첼리스트 이강호는 “경제학을 공부한 게 음악인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사고, 분석력을 갖추게 만들었다. 틀에 박힌 선택 대신에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엇을 말하고 듣고 보고 배우느냐가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지배한다. 어느 목사의 “나는 위대한 과학자인 크리스천이고 싶다”는 말처럼 지금은 바야흐로 통섭과 융합의 시대다.

예술에서의 통섭과 융합은 풍부한 지식에서 나오는 자유로부터 가능함을 우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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