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흙이 뭐길래. 야구장 흙이 엉뚱하게 수난을 받고 있다. 현재 야구장 흙은 그냥 흙이 아니고 발암물질인 석면이 다량 포함된 ‘불량 흙’이라는 것이다. 이 흙 속에서 뒹구는 선수들이나 경기를 즐기는 관중들의 건강에 큰 위험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이미 나왔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정작 야구장 흙 때문에 건강에 대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덧씌워진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필자는 4강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며 박진감을 더해가는 프로야구 TV중계를 보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야구장 흙에 자꾸 눈길이 가게 된다. 불량 흙 때문이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볼을 잡거나, 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면서 흙이 묻거나 튀기거나 하면 “선수들이 석면이 섞인 흙먼지를 마시지나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꺼림칙하다.

석면 파동이 터진 것은 지난달 말.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등이 석면함유 광물질이 전국 주요 야구장 그라운드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철회사와 학교 운동장에 사문석 또는 감람석 이름으로 공급돼 온 석면함유 광물질들이 이번에는 앙투카, 레드샌드, 화산재 흙 등의 이름으로 사용돼 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석면이 검출된 곳은 잠실과 문학구장을 비롯해 부산 사직구장, 경기도 수원구장, 구리구장 등 1군 야구장 3곳과 2군 야구장 2곳이다. 이들 야구장에서 2003년 사용이 금지된 각섬석 계열인 트레몰라이트 석면과 액티놀라이트 석면 2종, 2009년부터 전면 금지된 사문석 계열인 백석면 등이 최고 1%의 농도(사용 금지 기준의 10배)로 검출됐다. 특히 잠실구장의 경우 석면 함유 토양이 적어도 2007년부터 5년 이상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문제가 된 야구장에 대한 전면적인 흙 교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경기는 계속된다. SK와 기아전에 이어 SK와 롯데전이 불량 흙이 깔린 문학구장과 사직구장에서 관중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인 선수와 관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흥행만을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WBC클래식 준우승 등 국제무대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한 프로야구는 창설 30년 만에 올해 관중 650만 명을 넘어서며 초유의 호황세를 보였으나 불량 흙을 통해 드러난 하드웨어적 펀드멘탈은 여전히 전형적인 후진국형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불청객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라는 심각성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물 뿌리기 등의 임시 대응책을 내놓아 고질적이면서 후진적인 관리 실태라는 비난을 받았다. KBO가 석면파동의 위기상황을 초동단계에서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플레이오프가 진행 중이라 경기를 중단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KBO가 신속하고 신뢰감이 높은 중장기 위기관리 방안 등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KBO는 총재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석면파동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과 대책 등을 밝히고 선수와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했어야 했다. 또 정부에게 석면 함유량 규제에 대한 규정을 명시해 줄 것을 당부해 앞으로 야구장 흙을 이러한 기준에 따라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을 밝혀야 했다.

공익단체인 KBO는 위기 시에 단순히 말로만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체계적인 방안을 갖고 치밀하게 운영을 해나가야 한다. 이번 석면 파동을 통해 KBO는 선수와 관중을 진정으로 위하는 좀 더 진일보한 자세와 방법을 배우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야구장은 잔디로 잘 포장된 일본과 미국에 비해 흙이 많아 흙 관리가 훨씬 중요하나 평소 이를 소홀히 한 결과, 석면 파동이라는 화를 불러왔다고 해도 KBO는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제대로 적재적소로 흙을 배분하고 관리하지 못해 애꿎게 야구장 흙이 불량품으로 낙인찍힌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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