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오나라 공자 광이 자신의 집 연회에서 오왕 요를 죽이고 오나라 왕좌에 올랐다. 그가 바로 오나라 왕 합려(闔廬)였다. 그는 약속대로 오왕 요를 죽인 대가로 협객 전제의 아들을 경으로 임명했다. 얼마 뒤 진나라에 갔던 계찰이 귀국했다. 그는 오왕 요가 살해당하고 합려가 왕위에 오른 경위에 대해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다. “누구를 원망할 것은 없다. 나는 죽은 왕을 슬퍼하고 신왕을 받들며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국왕이 조상의 제사를 끊은 일이 없으며 백성이 왕을 받들지 않은 일도 없다. 가장 중요한
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환경에 먼저 적응하고 또 그에 따르는 변화에 서서히 발맞추는 것이 그다음 순서이다. 미국에서 술을 사 본 경험이 있다면, 미국의 술 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미국은 술을 아무 데서나 팔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처럼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대형마트 등 어딜 가도 음료수를 사듯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미국은 술은 술만 취급해서 파는 ‘Liquor store(리꼬 스토어, 술을 파는 상점)’라는 곳에서만 따로 취급하게 되어
연평도에 핀 충혼이시여 1. 11월23일 하오 2시 34분 연평도는 아가도 낮잠 즐기던 평온의 시간 포구의 어부는 그물을 손질하며 밤배 출항 준비에 한가롭던 시간 북괴포탄 백여 발이 쏟아지던 순간 청천하늘의 날벼락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백주대낮에 포탄이 비처럼 오던 시간 혼비백산은 이를 일러 하는 말인가 그러나 포탄 속에서 죽을지언정 물러나지 않았던 해병용사 고 서정우하사님, 고 문광옥일병님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고 김치백님, 고 배복철님 님들의 주검앞에 망연자실 했던 참담함이여! 2. 그 포우 속에서 적진을 향해 자주포를 당겼던
지금 한국사회는 많이 아파하고 있다. 중증에 가까울 정도로 심한 증세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는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이 바뀌기를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천 년 전 예수의 사도인 바울은 전도차 아덴(아테네) 지방을 두루 다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외쳤다. 이 외침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이 나라 이 강산에 다시금 울려 퍼지고 있다. 말하고자 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교는 우리 삶의 일부요 전부라는 사실이다. 종교와 사회는 구분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요 삶이
꿈이 있기에 진용빈 간절한 꿈이 있기에 슬픔도 견딜 수 있어 가난에 찌든 삶에도 헤쳐 갈 힘이 솟구쳐 인내로 한 발씩 옮겨 다가가는 내 꿈이야 약력2003년 샘터 시조상 수상2007년 월간문학 시조 당선한국문인협회 회원
개그맨 최효종이 한 의원으로부터 ‘집단 모욕죄’로 고소당했다.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여당 의원들을 싸잡아 모욕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여당 수뇌부들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정치나 사회제도에 대한 풍자나 해학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물론 개인이나 소수자의 약점을 잡아 사람 개인을 비난하거나 조롱거리로 만든다면 분명 문제가 된다. 소수자와 약자는 보호받거나 이해받아야 할 존재이지 비난받거나 조롱당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평화스러운 연평도에서 불길이 치솟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북한의 기습 도발로 인해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고, 가옥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수많은 연평도 주민들은 졸지에 오갈 곳 없는 피난민이 돼버렸다. 당시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치욕거리를 남겼다. 앞서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46명의 젊은이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지 불과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군은 물론 국민 모두가 안보의식이 그동안 얼마나
장순휘 한국문화안보 연구원 사무총장 주한미군(USFK)의 용산기지 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1953년 허용되어 올해로 58년을 맞고 있다. 정부는 2004년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을 통해 현 미8군의 주둔지 약 390만㎡(118만 평)를 반환받기로 했고, 2005년에는 그중에서 244만㎡(74만 평)를 ‘용산 민족공원’으로 조성키로 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하고 ‘용산공원 조성 추진위원회’를 발족, 국토해양부를 책임부서로 공원 조성작업을 지속진행 중이다. 일부 시민·환경단체는 2006년
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여 년의 언론사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일선 기자, 부장, 편집국장 등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기자에서 시작해 편집국장까지 모두 거친 필자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필요로 하는 능력이 어떻게 다른지를 경험했다. 일선 기자는 순발력과 기동성이 요구됐고, 부장은 기자들의 기사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방향을 제시해야 했고, 편집국장은 전체적인 신문의 논조를 제시하고 왕성한 추진력과 기획력을 갖춰야 했다. 스포츠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최상현 주필 미국이 태평양으로 다시 돌아왔다. 중동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한 발이 묶였었던 미국이다. 그 한 발을 빼어 태평양에 첨벙 내디뎠다. 그로 인한 파장(波長)이 심대하다. 태평양 연안 국가치고 그 파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중국 연안에 와 닿는 파고가 심상찮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중국은 세계 G2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국력을 바탕으로 인접 아세안 지역과 아시아 태평양 연안에서 확실한 패권국의 지위를 추구해왔다. 중국이 이룩한 대국굴기(大國崛起)의 추동력은 개혁 개방이
떠나간 임을 그리며 오열하는 여인. 임 찾아 천리, 만리 마다않고 달려온 연인. 그리움은 강江도 바다도 담지 못하고 수문(水門)을 연다. 해도 살그머니 자리를 비우고, 달은 살며시 들어와 마음 살핀다. 간직한 마음은 부풀어 터질 것 같아 마른 침 계속 불러낸다. 숨겨온 가슴은 열고 싶어 벌건 화로(火爐)처럼 달구어만 간다. 터질 것 같다. 타 버릴 것 같다. 마음도, 가슴도. 두 손 잡고 다스려 이성(理性)의 두께를 넓힌다. 깊은 사랑은 신장(腎臟)에 간직된 채, 영원한 사랑의 결정(結晶)은 커져만 간다. -약 력- 서정문학 신인상
윤용호 소설가 “우린 그가 어떤 요술을 부리고 있는지 이미 다 파악했습니다.” 나는 지그시 웃었다. “아니, 그런데도 왜 그냥 둬?” 내가 계속 웃음을 보이자 아버지는 더욱 혼란스런 모양이었다. 나는 쉬 대답을 않고 아버지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백발과 자글자글한 아버지의 주름살이 내 가슴에 짠하게 와 닿았다. 이 땅에 이민 온 뒤로 아버지는 마음 편하게 쉬어본 날이 도대체 며칠이나 될까? 오로지 가족의 생계와 안정, 그리고 자식 교육을 위하여 일만 하신 분이 아버지였다. 묵묵히 소처럼.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되기는 싫었다.
정수연 통섭예술인 은행잎이 바닥에 뒹굴더니 청소부 아저씨의 빗자루에 쓸려 리어카에 실려 간 후 가을은 저만치 갔다. 시장 바닥 갈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노오란 모과마저 팔리고 나면 그 바구니에는 하얀 눈이 가득한 계절이 올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는 예술을 자극한다. 며칠 전 대전에 있는 ‘이응노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멀리 프랑스에서 몰입하며 작업을 했던 문신, 이응노의 2인전을 보면서 나도 작업에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인데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난 용기를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그때 마침 상문이가 친구가 있으니까 장난을 했다. 가해자인 성욱이는 장난에 신경을 쓰다가 틀려서 100원을 날렸다. ‘너 때문에 틀렸으니 돈을 물어내라’ ‘못한다’ 옥신각신하다가 그날은 어떻게 해선지 끝이 났고 그 다음 날 학교에 일찍 등교해서 다시 시비가 붙어 ‘100원을 내라’ ‘못 낸다’ 다투었던 것이다. 못 물겠다니 주먹이 올라갔고 맞은 피해자는 같이 대들어 싸우다가 힘이 강한 가해자 성욱이가 엎어 놓고 때렸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요사이 아이들의 정신상태다. 동료들이 싸우면 말려서 화해를 시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근 일본에서는 결혼식이 아닌 ‘이혼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혼식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지난 3월 대지진 이후 급증했다고 한다. 이혼을 결심한 부부는 일가친지가 참석한 가운데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결혼반지를 함께 망치로 부수는 의식을 치른다. 마치 결혼식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이혼식 뉴스를 듣고 나서 필자는 잠시 우리나라의 이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과거와 다르게 이혼이 흔해진 지 한참이다. 이혼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고, 각 부부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