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1919년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토’가 한국 영화사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영화와 달리 연쇄극이라 불린 것으로 장충단, 청량리, 한강철교, 명월관 등 서울 명소를 찍은 장면을 연극 중간 중간에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한국 영화라 해 지난해 한국영화 백주년 관련 행사를 열고 기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영화가 첫 선을 보인 것은 그보다 20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미국의 여행가 버튼 홈스가 고종 황제와 신하들 앞에서 영사기를 돌려 활동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이 신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우리나라에서 콜레라가 처음 발병한 것은 1821년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3, 4년 꼴로 콜레라가 발생해 조선 인구의 5%가 사망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여겼다. 쥐 귀신이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가 병이 생긴 줄 알고, 집 대문 밖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 붙여 놓고 쥐 귀신이 도망가기를 바랐다. 콜레라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콜레라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것은 1895년이었다.청일전쟁 중 만주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조선으로 퍼진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하면,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조선 청년 손기정이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자 신문사에서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우고 게재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고서도 가장 슬픈 얼굴을 한 손기정의 표정은 두고두고 민족의 한이 됐다. 베를린 올림픽은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올림픽이란 오명을 안고 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자신감이 떨어진 독일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작심을 했다. 밖으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1990년대 프로축구에서 골키퍼로 활약한 사리체프는 구 소련의 타지키스탄 출신 외국인이었다. 성남 일화에서 뛰면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신의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00년에 한국으로 귀화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최초의 귀화 선수로 기록됐다. 당시만 해도 크게 화제가 됐다. 요즘은 귀화 선수가 있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탁구 등 여러 분야에서 귀화 선수들이 생겨났고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운동 때문에 국적을 바꾸는 일은 고대 그리스 시대 때에도 있었다. 신에게 제를 올리는 의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새해 들어 스포츠 경기가 한창이다. 축구 등 올림픽 예선 경기가 본격화하면서 TV 중계방송 볼 일이 많아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상황이나 국제 정세와 상관없이 스포츠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가 국민의 정신을 딴 곳으로 돌린다고 해 비난 받은 적도 있지만, 고단한 현실을 잊고 마음의 활력을 얻는 데는 스포츠만한 것도 없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한 안전 문제와 욱일기를 둘러싼 논쟁 등 이래저래 말도 많고 걱정도 많다. 그럼에도 도쿄 올림픽 열기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과거제도는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등용문이었다.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벼슬을 얻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초시나 진사만 되어도 뒷짐을 지고 유세를 떨었다. 선비들은 누구나 과거 시험에 매달렸다. 젊었을 때 합격해서 영감님 소리 들으며 영광을 누린 사람도 있었지만, 평생 공부만 하다 죽은 이들도 많았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벼슬을 못한 사람은 묘비에 학생이라 새겼다.그렇다고 게나 고둥이나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문과(文科)는 양반집 자제 아니면 응시할 수 없었고,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백년 전 서울에는 초가들이 즐비했다. 서울의 집 열 채 중 일곱은 초가였고, 기와집이 둘, 반기와집이 한 채 정도였다고 기록돼 있다. 1888년 서울에 처음 온 미국의 언더우드 부인은 서울이 마치 거대한 버섯처럼 보였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이 초가였다. 돈만 있으면 신분에 상관없이 크고 화려한 기와집을 지을 수 있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집의 규모나 형태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던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보인 양옥은 1884년 인천에 세워진 세창양행 사택이라고 한다. 건평 170평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강원도 대관령면 횡계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이곳에는 개·폐막식장과 시상식장, 스키 경기장, 슬라이드 경기장 등이 있었다. 지금 이곳은 언제 올림픽이 열렸나 싶을 정도로 삭막하다. 개·폐막식장은 일부 건물만 남아 있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시상식장 광장엔 찬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봅슬레이 올림픽 금메달로 국민들을 환호케 했던 슬라이드 경기장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강릉의 경기장들도 마찬가지다.‘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요즘 베트남 사람들, 참 살 맛나겠다. 축구만 했다 하면 온 나라가 난리가 난다.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을 축구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온 국민이 축구 하나로 한 덩어리가 되고 있다. 편 갈라 싸울 일도 없고 아파트 값 치솟는다고 걱정할 일도 없다. 축구 하는 날만 되면 밤새 오토바이 타고 달리며 부부젤라 불어 재낀다. 진짜 부럽다. 우리도 저렇게 신난 적이 있었다. 벌써 아득한 시절 같지만, 17년 전 2002년 월드컵 때 꼭 저랬다. 거리가 붉은 색 물결로 넘쳤고 밤새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렇게 국민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늘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면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한다.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인데, 올해도 정말 그랬다. 정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정치 때문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없다. 편을 가르고 악다구니 하면서 증오를 키웠다. 그 와중에서도 노래 부를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춤 출 사람은 춤을 추었다.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매출액이 125조 5천억원이었다. 작년 119조 1천억원에 비해 5.4% 성장한 것이다.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군대에 있을 때 가장 부러운 일은 선임이 제대를 하는 것이다. 가슴과 모자에 예비군 마크를 턱 붙이고 부대 문을 나서는 선임의 뒷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싶어 공연히 심란해지는 것이다. 별 탈 없이 군대를 제대하는 것도 대견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만 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고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그런데 막상 제대를 하고 군대 물이 조금 빠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민간인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현역 시절 그 부럽던 예비군 마크를 달고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가는 것도 여간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강화오일장 꽃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공광규 시인의 시 ‘빨간 내복’이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빨간 내복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을 사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많은 색깔 중에 왜 하필 빨간 색인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아무튼 내복하면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자본과 상업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가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10년 전 ‘워낭소리’ ‘똥파리’ 등이 10만 관객을 맞으며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예술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컸다. 이후 독립영화 제작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지만 그때만큼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독립영화의 위기론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2018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독립영화는 113편으로 평균 관객 수는 9774명이었다. 2014년 개봉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손흥민 선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의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차범근을 뛰어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흥민이, 우리 흥민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의 대기록도 반갑지만 축구 선배의 따뜻한 격려와 애정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손흥민은 ‘차붐’을 뛰어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기뻐하는 대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세러머니를 했다. 그 전 경기에서 자신의 태클로 부상을 당한 선수에 대한
[천지일보·천지TV=황금중 기자]■방송: 천지팟 보이는 라디오 - 운동극장 24회■일시: 11월 11일 12:00 (녹화방송)■진행: 유재호, 아리24회차 운동극장에는 기계체조 전 국가대표 한연숙 선수를 게스트로 초대했다.21년 동안 기계체조를 한 한연숙 선수는 10살 때 운동을 시작했다.친언니를 스카우트했던 체조감독이 집에 찾아와 한 선수의 신체 조건을 보고 운동을 권유해 기계체조에 뛰어들게 됐다.한연숙 선수는 어렸기에 또래 선수가 많지 않았고, 선배 선수들을 보고 따라 하면서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밝혔다.실업팀으로 가게 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다. 대박이 터질 조짐이다. 한국 영화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위기론이 나오고 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흥행 성공과 함께 논란도 있고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 마음으로 즐기던 모습 대신 논쟁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이 가사노동, 육아, 직장, 시댁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이 빙의에 걸려 많이 아프다는 사실 말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헛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1964년 동경 올림픽은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에서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백인이 주도하던 올림픽을 아시아인이 주관함으로써 올림픽이 전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도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열등국가에서 선진국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는 일등 국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올림픽에 투영됐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일본은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7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이지 올림픽 스타디움과 스포츠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90년 전인 1929년 10월 지금의 서울 계동 현대그룹 빌딩 자리에 있던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첫 경평축구대회(京平蹴球大會)가 열렸다. 서울인 경성과 평양은 조선의 남과 북을 대표하는 도시였는데 이 두 도시가 서로 축구 경기를 펼쳤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였다.경평축구대회는 스포츠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선일보가 마련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무슨 민족정신이냐고 가자미눈으로 흘겨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1회 대회에선 모두 3차례 경기를 펼쳐 평양이 2대 1로 승리했다.그 다음해인 19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인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에 있던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라는 연쇄극(連鎖劇)이 공연됐다. 연쇄극이란 연극 막간에 영화가 상영되는 것인데, 연극과 영화가 혼합된 새로운 작품 형식이었다. 연쇄극은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날 첫 선을 보인 ‘의리적 구토’는 김도산이 이끌던 신파 극단 신극좌가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의리적 구토’는 일반 연회장으로 인기가 높았던 단성사를 1918년에 인수해 전문 영화상영관으로 탈바꿈시킨 박승필(1875~1932)이 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최근 이란에서 여성들도 축구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게 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란에서는 그게 현실이다.여성이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 여성 팬이 없는 스포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들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이란의 한 여성이 남장 차림으로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적발돼 체포까지 되자 분신자살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사례가 많다.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