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올림픽에 욱일기, 어림없다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올림픽에 욱일기,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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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하면,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조선 청년 손기정이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자 신문사에서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우고 게재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고서도 가장 슬픈 얼굴을 한 손기정의 표정은 두고두고 민족의 한이 됐다. 

베를린 올림픽은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올림픽이란 오명을 안고 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자신감이 떨어진 독일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작심을 했다. 밖으로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안으로는 민족주의로 국민들을 단합하려 했다.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세계 최초로 TV 중계방송이 이뤄진 대회다. 올림픽 기간 내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설치된 TV 화면을 통해 올림픽 경기 모습이 방영됐다. 경기장에 가지 않고서도 경기장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TV 중계방송으로 인해 올림픽은 전 세계적인 스포츠 제전으로 거듭났고 이후 스포츠 미디어의 역사가 크게 발전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또 사상 처음으로 기록영화가 만들어졌다. ‘민족의 제전’ ‘올림피아’ 등의 제목으로 올림픽에 관한 정보들이 기록됐다. 레니 리슈펜탈이라는 여성 감독이 무비 카메라 8대와 170여명의 기술진을 데리고 제작한 이 기록영화는 무려 4만 미터에 달하는 필름이 소요됐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영상미로 선수들의 모습을 담아내 찬사를 받았고, 심지어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림픽 성화(聖火)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것도 베를린 올림픽이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해 주경기장에서 점화하는 올림픽 성화가 이 때 나온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칼 디엠의 아이디어였다. 1936년 7월 20일 정오, 올림피아 성지 유적지에서 15명의 신복(新服)을 입은 성녀(聖女)들이 성화를 채화했다. 

성녀의 손에서 소년의 손으로 전해진 성화는 이틀에 걸쳐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메인 스타디움을 향해 달렸다. 3천여명의 주자가 동원된 가운데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가로 질러 나갔다. 성화가 베를린 시내로 들어서자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성화가 지나가는 길과 골목 곳곳에 나치스의 깃발 하켄그로이츠가 빼곡히 걸려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성화를 든 게르만 소년이 하켄그로이츠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습이 TV 화면을 타고 전 세계로 전달되었다. 올림픽이 나치 독일의 선전장이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올림픽에 나치기가 걸린다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세상 어리숙할 때 이야기다. 일본은 그 시절의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에서 한편이었던 독일과 동지애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독일이 올림픽에서 나치기를 등장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사람들이 도쿄 올림픽에서 전범의 상징인 욱일기를 흔들어대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한심한 짓이다. 세상이 변하고 달라졌건만, 철없는 것들은 늘 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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