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귀화 선수를 대하는 법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귀화 선수를 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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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1990년대 프로축구에서 골키퍼로 활약한 사리체프는 구 소련의 타지키스탄 출신 외국인이었다. 성남 일화에서 뛰면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신의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00년에 한국으로 귀화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최초의 귀화 선수로 기록됐다. 당시만 해도 크게 화제가 됐다. 요즘은 귀화 선수가 있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탁구 등 여러 분야에서 귀화 선수들이 생겨났고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운동 때문에 국적을 바꾸는 일은 고대 그리스 시대 때에도 있었다. 신에게 제를 올리는 의식으로 시작된 고대 올림피아는 지금의 올림픽처럼 4년마다 열렸다. 올림피아에서 우승하면 고향 도시에 조각상을 세워주고 대대적인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공식 행사 때는 높은 자리에 앉도록 해주고 무료 식사도 제공받았다. 그야말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올림피아 우승은 개인의 영광뿐 아니라 국가의 자랑이기도 했다. 올림피아 우승자가 많이 나올수록 국력과 군사력이 세다고 여겼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강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에서 가장 많은 올림피아 우승자를 배출했다. 이 때문에 각 국가들은 올림피아 우승자에 대한 대우와 보상을 강화하면서 성적 관리를 했다. 기량이 뛰어난 외국 선수들을 자국 시민으로 귀화시켜 올림피아에 내보내기도 했다.

올림피아 우승 포상을 두고 공정성 시비가 일자 아테네에서는 규정을 만들어 잡음을 없앴다. 올림피아 우승자에게는 당시 아테네 시민의 1년 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상금으로 주었다. 올림피아보다 격이 낮은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에 상응하는 포상금이 주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대회 규모에 따라 포상을 달리해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올림피아 참가 자격은 아주 엄격했다. 순수한 그리스인으로 남자여야 하고, 배신자나 범법자, 노예나 외국인이 아니어야 했다. 10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훈련을 해야 하고, 대회 한 달 전에 제우스 신전에 기도를 올려야 했고 자격심사도 통과해야 했다. 여성들은 올림픽 참가는 물론 관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이 올림피아 경기장에 몰래 숨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올림피아에 참가한 선수들은 속옷은 물론 신발도 신지 않았다. 요즘처럼 디자인과 기능성이 뛰어난 운동복이 따로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니 옷을 벗고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나체로 하자는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기원전 720년 15회 올림피아 때 어느 선수가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려 우승을 하면서 관행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남자들만 출전하고 관중들도 전부 남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나라로 국적을 바꾸거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국가에서 보상해 주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 어느 귀화 농구 선수가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게 있어도, 다 같은 국민이다. 생각하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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