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 콜레라가 처음 발병한 것은 1821년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3, 4년 꼴로 콜레라가 발생해 조선 인구의 5%가 사망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여겼다. 쥐 귀신이 사람 몸 안으로 들어가 병이 생긴 줄 알고, 집 대문 밖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 붙여 놓고 쥐 귀신이 도망가기를 바랐다. 

콜레라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콜레라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것은 1895년이었다.청일전쟁 중 만주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조선으로 퍼진 것이다. 콜레라가 창궐하자 나라에서는 서양에서 온 선교의료진과 일본인 의사들에게 방역을 맡겼다. 우리 전통 의술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역단은 콜레라는 귀신 때문이 아니라 세균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로 인해 발병하는 것으로, 이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손과 입을 깨끗이 씻고 물은 반드시 끓여 먹으라고 알렸다. 특히 서양의 선교 의료인들은 한 여름 무더위와 불결한 환경 속에서도 약을 나눠주고 환자를 돌보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서양인에 대한 불신이 많이 사라지게 됐다.

서양 의료진이 조선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1884년 세워진 광혜원의 힘이 컸다. 나중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 광혜원은 미국 공사관 의사로 조선에 온 알렌이 세웠다. 이곳이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 전신으로, 선교와 의료사업의 근거지가 됐다. 선교사들은 의료품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했다. 의사와 목사의 사명을 동시에 수행했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이렇게 떠들어댔다. ‘종래 조선의 의술은 아직 유치한 정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조선 사람들은 천수를 다하지 못하였다. 이를 가장 가슴 아프게 여겼던  바 지난번 경성에 중앙의원을 열고 또 전주 청주 함흥에 자혜의원을 설립한 이래 그 은혜를 입는 자 매우 많다.’

1921년 4월에는 서울에 “파리를 잡아오세요. 파리 열 마리를 잡아오면 3전(錢)을 드립니다”라는 광고가 나붙었다. 사람 몸만큼이나 큰 파리가 어린 아이를 덮친 흉측한 그림과 함께 ‘파리를 죽이고 애기를 살구자(살리자)’라는 글이 새겨진 광고 포스트가 실리기도 했다. 경성부(서울시)가 질병의 근원인 파리에 현상금을 걸어 파리를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동아일보 등 언론에서도 아주 잘 하는 일이라며 거들었다. 경성부 청사가 파리에 파묻혀도 좋으니 파리를 많이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성부는 발표 하루 만에 파리 열 마리 값을 1전으로 줄였고, 그마저도 아예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말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다. 이제는 파리를 잡거나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들고 가지도 않고, 송충이를 잡으러 산으로 몰려가지도 않는다. 최근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우리나라 보건 안전 체계가 세계 9위로 선진국 수준이라고 했다. 국력이 높아지고 나라살림이 나아진 덕이다. 고마운 일이다. 중국으로부터 또 재앙이 닥쳤지만, 국가 방역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국민들이 힘을 모으면 이 또한 잘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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