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겸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성재 이동휘 선생 75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성재 이동휘 선생 75주기 추모식’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29일 오후 2시에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이희범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원, 하빈이씨 종친회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기념사업회장 식사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등으로 진행되며, 추모식에 이어 위패가 모셔진 충열대 무후선열제단을 참배할 계획이다. 함남 단천에서 출생한 이동휘 선생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 임시의정원 의원‧임시정부 문화부장 등으로 활동한 김상덕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1891년 12월 10일 경상북도 고령군 저전동 558번지에서 태어난 그는 1917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되는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 등에 참여하며 한인 유학생들과 민족운동방안을 모색했다. 김 선생은 1919년 1월 김도연ㆍ백관수 등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해 2월 8일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다음
“신문! 신문! 매장에 한 푼씩이요.” 아직 신문이 없고, 인쇄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시절, 취재부터 편집 그리고 인쇄까지 손수 해야 했던 한 사내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외친 말이다. 그는 바로 민족계몽에 사활을 걸며 당시 수구세력의 견제와 압제 속에서 독립신문을 창간한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 박사다. “조선 여인들이 불행한건 남성들이 계몽하지 못한 탓이다”라고 1896년 독립신문 사설을 통해 전한 그의 메시지는 한국을 서서히 개화해 독립으로 이어지는 서광으로 인도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서재필 박사는 서광효의 아들로 7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과 교전 중 순국한 ‘한지 김상옥(金相玉) 열사 순국 87주기 추모식’이 22일 효제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사)김상옥‧나석주 의사 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손용호(서울북부보훈지청) 지청장과 남만우(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전 국무총리 이한동(김상옥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은 식사에서 “의로운 삶을 마치신 의사님의 이름이 이 민족에 길이 남아 후손들에게 애국애족의 본보기가 되셨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계원 노백린 장군의 84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다. 유족의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에는 이희범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승병일 광복회 부회장, 박상준 황해도민회장 등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친지‧종친 유족 등이 참석한다. 이날 추모식은 황해도민회장의 약력보고와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헌화, 분향 순으로 개최된다.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난 노백린(1875~1926) 장군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마침내 군대가
“당신은 독립운동의 의지가 있었는가?” 3.1운동 후 일경에 체포돼 끌려간 그는 예심판사의 독립의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항상 신문을 봄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의견이 합치됐소”라고 답변했다. “당신은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일반에게 배포한 목적은 무엇인가?” 또 그는 경찰조사에서 이 같은 질문에 “그 목적은 독립선언서에 있는 바와 같이 국권을 회복해 조선독립을 계획코자 한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했다. “어떠한 방법과 수단으로 국권을 회복하려고 했는가?”란 이어진 질문에도 그는 “우리는 평화적인 자주독립운동
“놈들이 지나간 말발굽 자국이 여기 있다. 놈들은 이제 독안에 든 쥐다. 더 멀어지기 전에 따라잡아 무찔러라.” 독립군의 병력이 보잘 것 없다는 말은 들은 일본군은 1920년 10월 20일 의기양양하게 청산리를 3면으로 포위하고 기병대일부를 가지고 대담하게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백운평 삼림을 점령했다. “어리석은 놈들, 놈들이 걸려들었다. 전원 사격! 한 놈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콰콰쾅… 쾅쾅.” 일본군은 “함정이다. 전원 퇴각하라”고 외치며 위기에 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독립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본군
이봉창 의사 78주년 기념식,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이봉창 의사 의거 제78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김신 백범기념관장, 윤경빈‧김국주 전 광복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문국진 회장은 식사에서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당시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아성(牙城) 방한민(方漢旻) 선생을 2010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1900년 1월 16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에서 부친 방규석(方圭錫)과 모친 조현정의 차남으로 출생한 방 선생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전 민족이 항거한 3.1운동을 겪으면서 항일의식에 눈을 뜨게 됐다.1920년 서울로 올라와 조선일보 창간 사회부 기자로 근무한 방 선생은 항일기사를 연재하면서 일인을 ‘왜놈’으로 표현하는 등 일제를 통렬히 비난하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기사를 특종으로 보도하는 등 일제와
중국 삼국시대 천하를 놓고 유비, 손권과 겨뤘던 조조(曺操, 155~220)의 무덤이 허난성에서 발굴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로이터통신 등 외신들과 CCTV 등 중국 언론들은 허난성 문물국과 중국 고고학자들이 허난성 안양현 안펑향 시가오쉐촌에 있는 동한시대의 무덤을 발굴하다가 이 무덤이 문헌상으로 전해 내려오던 위 무왕 조조의 진짜 ‘고릉’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27일 일제히 보도했다.허난성 문물국과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에서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과 ‘위 무왕이 사용하던 돌베개’ 등의 명문과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
“그는 조국 해방을 위해 곳곳을 누비며 항일을 호소한 조선의 걸출한 지도자다. 그의 희생은 조선 독립운동의 앞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조선혁명군 벽해(碧海) 양세봉(梁世奉) 총사령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관내에서 발행된 ‘흑백반월간(黑白半月刊)’ 제10기에는 이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중국 남만주 일대에서 치열하게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한 항일 민족 운동사의 영웅에 대한 찬사였다. 일제 제국주의는 1934년부터 동북에서 이른바 ‘치안 숙정’이란 항일 무장 세력을 대대적으로 포위해 소탕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 경인년 1월 1일 새해 일출시간(예정: 오전 7시 44분)을 맞아 천안지역 산악동우회 모임인 천산회와 함께 흑성산 정상(519m)에서 ‘2010 나라사랑·가족사랑 해맞이 행사’를 개최한다. 6회째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오전 5시 30분 풍물패인 하늘소리 연희단(병천고등학교)의 새해맞이 공연을 시작으로 6시부터 풍물패 길놀이 안내에 따라 흑성산 정상으로 이동한다. 이후 정상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일출 전까지 새해 소망 기원 명상과 나라사랑·가족사랑 한마디 이벤트에 참여한다. 이어 참가자들은 2010년 새해를 여
세계 속에 독도와 동해를 수호할 최고의 사이버 외교관으로 미국인 ‘Gabriel Furnari’가 선정됐다.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원장 김희범)과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동해·독도 오류시정 국제서한 공모대회’ 결과, Gabriel Furnari가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현재 경상남도 화개(Hwagae) 중학교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Gabriel Furnari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왜 한국의 영토인지를 지리적, 역사적, 국제해양법적으로 체계적인 서술을 통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윤봉길 의사 순국 77주기 추모식일본 수뇌부에 폭탄을 투척해 폭사시킴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77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거행됐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학준)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은 이병구 서울지방보훈청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장과 광복회원, 각 군 대표, 양재고등학교 학생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묵념, 추모사,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학준 회장은 추모사에서 “위대한 애국자이신 선생님은 77년 전 이날 이
“우리는 현실을 직시(直視) 정시(正視)하여야 한다. 우리가 구적(仇敵)을 몰아내고 나라를 도로 찾는 데는 부질없이 감상에만 흐르지 말고, 현대로 개화 진보한 일본에 가서 배워 그 놈을 이기고 일어서야 한다.”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돼 망국으로 치닫게 되자 역설적으로 독립운동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극일의 심정으로 일본유학을 단행한 이가 있다.그는 바로 일제강점기에는 투철한 민족독립운동가로, 해방 이후에는 反독재민주정치가로, 또 민족교육운동가로 잘 알려진 해공 신익희(申翼熙) 선생이다.1892년 경기도 광주 출생인 해공은 현실문제의
6개 지역, 8개 기념관의 전시물 정리·수록국가보훈처(처장 김양)와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200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중국 내 각 지역에 산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의 전시물들을 정리·수록한 ‘중국 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도록’을 10일 발간했다. 이번 도록은 우리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중국 내 독립운동사적지의 복원과 전시 지원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이해를 돕고, 한국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발간하게 됐다. 독립기념관 측에 따르면 이 도록은 크게 상해시기, 장정시기, 중경시기 순으로
불멸의 독립투사(5)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함께 선정한 2009년 12월의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은 1880년 8월 1일 함경도 영흥읍에서 태어났다. 민족역사학자 계봉우 선생은 1910년 영생중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다가 이동휘의 가르침에 따라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하고 구국운동에 힘썼다. 1911년 초 북간도로 가족과 함께 망명한 선생은 간민회(간민교육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또한 광성학교(光成學校)의 교사로서, 후에는 학감으로 민족주의 교육에 헌신하면서 ‘신한독립사’ ‘조선역사’ ‘오수불망(吾讐不忘)’ 등의 책자를 편찬
동북아역사재단은 4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동 대학 한류교류연구원과 공동으로 ‘13~14세기 고려·원 관계의 성격’ 규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재단 측에 따르면 고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13~14세기에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원나라(대몽고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만 그동안 국내 학계의 고려사 연구는 고려 내부문제에 국한돼 왔다. 이에 ‘13~14세기 동아시아와 고려: 고려·대원 관계의 성격연구’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회의는 양쪽 분야 연구자들의 교류를 통해 ‘원 간섭기의 고려’에 대한 연구 수준을 높이고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진다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만해 한용운 선생은 재판정에서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란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난 만해 한용운은 1944년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조국 해방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직 민족의 독립 앞에 바쳐진 삶을 살았다. 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불행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서울시는 서울신청사 건립부지에서 조선시대 화포(火砲) 등 무기류와 건물지 등이 함께 발견됐다고 30일 밝혔다. 시는 지하층 골조공사 시 전문가를 입회시켜 굴토공사를 시행하던 중, 일부 미교란지역(공사전 서울시청 주차장부지)에서 이 같은 조선시대 유물을 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시에 따르면 이번에 출토된 화포(보물 861호 불랑기 자포와 동일형태), 소총통, 장군전의 날개와 촉 외에 철환(둥근 쇳덩이) 등이 발견돼 현재 고증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이 외에 도ㆍ자기편류와 대옹(곡물, 물 등의 저장 용기류) 등도 발견됐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