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7. 마태복음 24장의 전쟁은 어떤 전쟁이며, 성전이 무너지고 성전에는 사단 목자 곧 멸망자가 섰을 때 도망갈 산은 어디인가? 도망가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마태복음 24장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더불어 주님 재림의 징조와 관련된 복합적인 교훈이다. 그중 본 질문은 A.D.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과 관련된다. 본장 1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예수님께 자랑을 했고(눅 21:5), 그에 예수님은 그 성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언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느냐고 물었고, 그에 답변하신 것이 24장의 말씀이다.
주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다니엘’(15절)의 예언을 들어 설명하셨다. 다니엘의 예언은 단 9:26, 27을 가리킨 것으로, 이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70이레란 상징을 통해서 가르쳐준 묵시다. 그중 26, 27절은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한 것으로 역시 예루살렘의 멸망과 직결된다.
마 24:15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 한 말씀의 병행구로 눅 21:20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하였고, 단 9:27에서는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고 설 것이며”라고 하였다.
이는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포위를 당할 것임을 명확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고 설 것이란 표현은 로마 군대가 황제의 군대란 뜻에서 독수리 형상이 그려진 깃발을 앞세우고 전쟁을 하였는데 그 깃발이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서게 될 것을 가리킨 묵시였다.
당시 전쟁은 로마의 베스파시안(Vespasia)의 지휘로 이루어졌고 예루살렘은 이내 로마군대에 의해 겹겹이 포위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로마의 황제가 죽게 되었고, 베스파시안은 황제 승계를 위해 로마로 돌아갔다. 그는 황제의 위에 오른 뒤 자신의 아들이었던 디도(Titus)에게 예루살렘의 함락을 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잠시 예루살렘이 로마의 포위에서 풀어지게 되었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던 믿음의 사람들은 이것이 예루살렘의 멸망의 징조임을 깨닫고 요단계곡에 위치한 베레아의 펠라(Pella)라는 곳으로 피신을 하였다. 그러므로 A.D. 70년 디도의 침략이 있었을 때 그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 안이 더 안전하다하여 성 안으로 피신을 하였고, 성이 함락됨으로 로마 군사들의 칼날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교훈이 생생히 들려지는 듯하다.
즉 본 질문은 이미 지나간 역사와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주님 재림의 때나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산으로 도망갈 것을 말씀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주님 재림 때와 관련한 26절에서는 오히려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전쟁이란 ‘주의 이름’을 겨냥해서 벌이는 ‘하나님의 원수’와의 전쟁이기에 인간은 빠져야 한다. 인간이 나서서 해야 될 전쟁 양상이 아니다. 단지 성도는 본인의 전쟁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참여의 방식이 곧 ‘자기 부인’이다. 전쟁 상황에서 성도는 철저하게 ‘소자’ 곧 ‘작은 자’ 내지는 ‘이름조차 알려질 필요가 없는 자’가 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오늘날 이 전쟁은 특이하게 진행된다.
그 내막은 이러하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했다는 소자는 말한다. 의아해하면서 도리어 예수님께 반문한다.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이는 마지막 심판 때에 양으로 간주되어 주의 오른편에서 천국에 입성할 소자가 정작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전쟁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본인의 주체성으로 감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정답은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기 사람을 동원시켜놓고서는 모든 진행과 결실은 홀로 다 이루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차후에 자기 백성들의 참여로 돌려버린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입성하는 자들은 자신이 쓴다는 그 생명의 면류관까지 주님 발 앞에서 도로 내놓게 된다(계 4장).
마태복음 24장에서 나오는 지명과 싸움은 십자가 지기 전, 그 시대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전쟁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 역사적 상황이 발생되는데 이 발생된 상황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상황이기에 단회적으로 끝나버린다. 영원한 전쟁의 양상은 십자가 지신 이후, 성령이 오심으로써 사도들의 편지에 나오는 양상으로 전환된다.
즉 특정 시간과 공간관은 그 자체가 이미 죄악된 의식으로 나온 발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천년이 하루 같이 하루가 천년같이(벧후 3:8)’ ‘땅에 있는 것처럼 사랑치 말라. 이미 너희는 그곳에서 죽은 자요 너희 생명에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골 3:3-4)’ 즉 ‘땅’ 자체가 의미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지리적으로 어느 지점이냐는 바로 ‘보고 믿겠다’는 불신자의 일반적 대표적 해석이 된다. 인간의 육신 자체가 특정 공간과 시간을 의식하기에 (인간은 하루 간격을 기반으로 한 시간관으로 자기 일생과 자기 역사를 따로 갖고자 함) 이미 인간의 육신 자체가 악마의 취지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입장에서 특정 공간과 시간은 그저 사람들을 미혹하고자 하는 악마의 술책에 불과하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인간은 이미 죽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새언약적 안목에서 보는 롬 6:2). 사도 바울은 비록 고향을 떠나 그리스, 이태리나 터키 지방을 돌아다녔지만 결코 예루살렘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하늘나라에서 멀어졌다는 인식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그는 ‘성령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옆에 계신 듯이 일했다. ‘예수 안’에 있는 그곳이 곧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일하시는 시간이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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