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1. 아담 세계가 왜 노아의 전도(방주에 들어가야 구원받음)를 믿지 못했으며, 육적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전도를 믿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인간, 원래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 아니야
지속적인 구원시도는 배후 악의 세력 때문

전도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용도로 주어진다. 노아언약의 증거물로 주어진 방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저히 믿기지 못하는 식으로 제공되는데 이를 통해서 인간은 원래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진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이 사실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지속적으로 구원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는 배후에 수상하고 어두운 악의 세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어두움의 사주를 받아서 인간들은 본성적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고 반응하게 되어 있다. 보다 더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면 마치 그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기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보냈다고 곡해하게 만드는 요소가 인간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이 사실은 알지 못한다.

따라서 언약의 투입은 이 내막을 폭로시키면서 드러나는데 그 와중에서 ‘피’ 곧 희생이 발생한다. 아벨처럼 또는 방주 안에 있었던 정결한 짐승의 죽음처럼 말이다. 정결한 짐승이 죽어서 부정결한 짐승까지 물의 심판을 이겨내는 효과가 다 이 ‘피’에 있다. 이 언약은 장차 십자가라는 ‘새 언약’을 통해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노아는 예수님의 영을 받아서 이 작업에 마치 그 시대의 메시아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아의 육적 본질 속에서는 여전히 함이라는 저주의 요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노아 자체의 훌륭함이 아니라 노아 안에 계신 주되심의 두 가지 속성인 공의와 지자비가 그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합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예수 믿지 않은 유대인, 하나님이 눈 멀게해
하나님이 택한 백성 아니었기에 안 믿은 것

이 질문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세전 선택의 원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복음주의, 종교일치운동, 심지어 종교다원주의로까지 치닫는 작금의 세태에서 창세전 선택을 말한다는 것은 심각한 여론의 몰매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이를 하나님 백성들에 대하여 창세 전에 선택하셨음을 분명히 한다(엡 1:4).

따라서 누가 믿어 구원에 이르는가에 대하여 행 13:48에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하였다. 바울도 구원서정에 대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고 하였다. 또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문제에 대하여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3)”이라고 하였다.

요한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한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케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요 12:39, 40). 예수님도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 4:11, 12)”고 하셨다.

이러한 진리에서 보면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주님은 요 10:26에서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노아시대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그 시대의 인류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로 양분하였다(창 6:2). 또 홍수심판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의 자식들이 번성하여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창 6:5). 즉 복음을 배척한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믿음의 원리로 설명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바울은 믿음에 대하여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엡 1:4)이라고 하였다. 그럼 하나님은 믿음을 누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일까? 롬 11:7에서는 구원에 대하여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남은 자, 곧 택하심을 입지 못한 자들은 모두 완악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오직 택하신 자들에게만 주시는 선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가 믿는 것임을 말했던 것이다. 즉 믿음이란 인간의 의지의 소산이 아닌 것이다. 택한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고 하였다. 따라서 노아나 예수님 당시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은 결국 택한 백성들이 아니었기에 믿을 수 없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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