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2. 구약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전도를 받아 주지 못하고 도리어 이들을 죽인 자들은 불신자인가, 타종교인인가? 어떤 자인가?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하나님 개별적 자질 따지지 않고 심판해
마지막 아담 예수도 하나님께 심판 받아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모두 인간인 것처럼 그들도 인간이며 다같이 아담의 자손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개별적인 자질을 따져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괄해서 심판해버린다. 그래서 심판받지 않을 인간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마저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았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는다’가 아니라 ‘죄를 위하여 인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율법이 주어진 것은 인간을 통원해서 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드러내기 위함이다. “죄가 더욱 죄로 드러나게 함이니라(롬 7:7)”

선지자들도 마땅히 예수님의 전도를 받지 못한 자들이다. 베드로도 또한 마찬가지요 12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더 높으냐”는 식으로 예수님 면전에서 엉뚱한 논쟁을 했던 자들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자질로서 구원될 수가 없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바로 ‘아담의 자손이 죄의 자손임’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말한다. “나는 주께만 범죄했다”고 말이다(시 51:4). 그리고 말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다’고 말이다(시 51:14).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름대로 보호하고 두둔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예수님에게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게 된다(마 16:21). 베드로의 인생 끝날도 결코 자기 원대로 살 수가 없었다. “원치 않는 길”로 인도받아야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요 21:18).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딤전 1장).

성령을 받는 성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깊은 십자가 의미로 인하여 참으로 전에 미처 몰랐던 죄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사도들의 편지에 나오는 지시와 명령들이다. 이런 지시와 명령 앞에서 인간은 그동안 자신의 육신에서 나오는 죄의 위력과 위세에 대해서 더욱더 깊이 있는 체험을 하게 되고 따라서 오로지 ‘자기 의’를 가지려는 악마적 작태가 바로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신앙과 경건과 성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예수, 서기관·바리새인을 마귀자식으로 정죄
하나님으로부터 ‘믿음’ 선물 받지 못한 결과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에 대한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은 엄격하게 구분하면 3종류다. 첫째, 구원과 관련된 믿음이다. 이는 ‘에크 피스테오스(ἐκπίσττως)’로 근원적인 믿음,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둘째, 성장과 관련된 믿음이다. 이는 ‘에이스 피스티스(εἰςπίστις)’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는 궁극적 믿음이다.

이 두 가지 믿음에 대하여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앞에 언급된 ‘믿음’이 ‘에크 피스테오스’이고, 뒤에 나온 ‘믿음’이 ‘에이스 피스티스’이다.

셋째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믿음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의(自意) 자생적(自生的)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성경에서 예를 찾아보면 주님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들 수 있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더욱더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주님은 마귀의 자식으로 정죄를 하셨다(요 8:44).

마 15:13에서는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뽑힐 자’들로 선언하셨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믿음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이 믿음을 ‘자의자생적인 믿음’이라 규정하는 근거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불신자들이 아니었다. 타 종교인은 더욱더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일컫기를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 8:41)”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을 향해 믿지 않았다고 지적하셨다(요 8:45). 따라서 우리가 성경의 교훈에 의해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은 믿는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믿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바디매오도 주님을 알아보았다(막 11:46, 47).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도 몇 마디 오고간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아챘다(요 4:29). 심지어 시돈의 가나안 여인도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믿고 있었다(마 15:22). 그런데 왜 성경 박사들이라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도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경우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주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확인할 수 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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