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11. 땅의 임금들이 음녀와 함께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하셨다. 음녀와 땅에 거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인가? 지금 누가 이것을 먹고 있는가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계시록 17장은 계시록 13장에서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칼에 상하여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짐승에 대해 음녀란 이름으로 재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계시록 13장에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한 짐승이 있는데, 그것에는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라고 하였다(13:1). 그런데 그 짐승의 일곱 머리는 일곱 왕(17:10)으로, 열 뿔 역시 열 왕(17:12)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일곱 왕에 대해서는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17:10)”고 하였다. 때문에 일곱 머리는 제국의 권세를 가진 왕을 가리키고, 열 뿔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 국민국가시대, 즉 다국가 정치체제에서의 세상나라 모든 왕들을 가리킨 묵시이다.

그 가운데 음녀는 일곱 머리 가운데 아직 이르지 않은 한 머리로서, 칼에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짐승을 말한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교회 안에 들어온 세력으로 제국의 권세를 함께 가졌음을 뜻한다. 그것이 제국의 권세를 가졌음은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기 때문이고, 그것이 전 세계 교회를 통치할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그것이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하였는데(13:5), 그 권세를 받은 자에 대해서 11장 2절에서 성전 밖 마당에 들어온 자로 계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요한 시대에서 볼 때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시대로서이 짐승이 활동할 시기는 미래의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었고, 또 열 뿔과도 연관성이 있음을 말하였다(17:13).

따라서 이것이 나타날 시기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였던 그 시대일 것임이 명백하다. 로마제국 이후 일곱 번째 머리로 소개된 짐승, 즉 음녀 말고는 또 다시 제국의 권세를 가진 왕이 나올 수는 없다. 제국은 일곱 머리로 확정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가는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전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권세와 함께 전 세계 나라까지 통치할 세속 권세를 가진 세력은 오직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의 임금들이 음녀와 함께 음행하였다고 하였다. 즉 이는 교회를 통치하는 지도자가 세상 나라 왕과 사상적으로 일치를 이루고 제휴를 할 것이란 뜻이다. 또 땅에 거하는 자들도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하였다. 이들은 계시록 13장 8절과 17장 8절에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즉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가 거짓된 교회, 세속적 교회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따를 것이란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에 대해 요한은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5)”고 하였다.

오늘날도 교회이든 성도이든 신앙과 삶의 목적이 이 세상나라, 육신의 것에 집중하는 것은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음녀란 예수님 십자가 지신 이후에 다시금 규정받은 이 인간 세상 전체를 말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은 이 세상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모든 자들은 말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희망을 걸고 있는 모든 자들은 성령님이 말씀하신 그 소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 24~25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즉 세계평화를 운운하고 세계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는 자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음녀다.

그동안 교회사에서 보면, ‘국가 종교’에서 ‘종교 국가’로 전환되면 자신들을 구심점으로 세계 정복및 세상 통합을 시도하는데 이런 시도가 바로 천주교이며 개신교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것은 가장 이상적(理想的) 조직체를 천국의 대용으로 보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여망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사상적 규합을 시도하고 세를 과시하려고 한다. 즉 초라한 것은 하나님의 일의 실패로 간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에서 악마가 예수님에게 유혹하는 마지막 유혹과 동일한 취지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바로 음행의 포도주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8~10)”

원래 구약에서 음녀란 남편을 버리고 다른 신을 찾아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했는데 이 음녀같은 이스라엘이 멸망으로 전 세계에 다 퍼지게 되자, 음녀라고 규정한 그 언약적 차원도 동반해서 전 세계와 확대하면서 규정지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전 세계는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조직적이며 의도적으로 음녀의 본색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게 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 피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녀란 진정한 신부를 드러내기 위해 배경으로 작용해야만 하는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즉 음녀는 제발 음녀다워야 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세상 권력과 영광에 늘 취해서 움직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진정 성도는 십자가의 희생만을 감사하는 자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그렇다면 땅의 임금은 누구이기에 음녀와 음행을 하는가? 땅의 임금은 족장 시대는 족장들이 왕이며, 사사시대는 사사들이 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하나님은 사울의 불순종을 꺾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수많은 왕들이 이스라엘서 나왔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보다는 권력과 물질과 이방여인들과 이방신들을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곳에 배치했다. 고로 이스라엘 왕은 멸절 되었으며 영원한 왕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이스라엘 왕만이 아니라 온 우주의 왕으로 오셨다. 그분이 곧 예수이시며 하나님이다. 그분은 어떠한 음녀와도 음행하지 않았으며 죄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사신 자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벧전 2:9).

역사 이래 아론부터 삼손을 비롯하여 사사들과 이스라엘의 왕들 거의 모두가 바알신과 아세라 신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음녀로부터 벗어나라고 외쳤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톱과 칼로 죽였다. 음녀와 땅에 거하는 자들은 아합과 이세벨 같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학살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성전에 이방신을 들여 놓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더러운 자들이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계 22:11)’

다시 말하면 거짓 선지자이며 적그리스도이다. 말로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하나님 자리에 풍요의 신 바알을 우선으로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만사형통을 비는 자들이다. 태양이 없으면 가난과 질병이 온다는 식이다. 주님은 가난과 질병 속에서 함께 하신다. 태양과 상관없는 신앙이 곧 기독교이다.

음행의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며 인본주의적인 해석과 세상의 권력과 타협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권력과 타협하는 것은 음행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하고 세상의 힘도 필요로 하는 자들이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인간의 힘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보다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웃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사도들이 웃으면서 복음 전도 했는가. 기쁨과 즐거움은 복음의 푯대를 향하여 경주할 때 생길 것이다. 40년 동안 목회한 한 순수한 목회자가 퇴임 예배 때 그동안 ‘헛 목회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백년을 신앙생활하면 그 기간을 인정받을까. 수많은 선진들은 성경에 입각하여 짧고 굵게 주님 안에서 살다가 갔다. 잡다한 잡신들의 사상들을 교회 안에 들여와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며 사람에 취해 있는 자들이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흠뻑 적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하는 말씀 또한 포도주이다.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마다 다 그 도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얼마든지 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포도주에 취해 있으며, 음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음녀인지 진리의 말씀에 조명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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