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3. 예수님 재림 때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다(눅 18:8). 오늘날 기독교인인 영적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재림 때 구원 받을 사람 없다는 뜻
구원받는 자, 창세 전에 이미 확정

첫 번째 질문 때에 확인한 바와 같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속사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대상자들을 창세 전에 선택하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는 곧 구원에 이를 자들의 수가 창세 전에 확정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는 근거 역시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14절에서 이방의 교회를 통하여 구원받을 자의 수가 정해져 있다는 뜻의 예언을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요한은 계시록 14장 1절에서 신약교회를 통해 인 맞을 자들에 대해 14만 4천이라고 했다(계 14:1). 물론 이는 상징수다. 그렇지만 신약시대 구원 받을 자의 수가 이미 확정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3장 제4항에서는 “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그리고 변치 않게 계획되어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의 수효는 확실하고 확정적이므로, 그것은 더하거나 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원리에서 보면 구속사의 년대가 지속 될수록 구원에 이를 자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또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남은 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구원받을 자가 창세 전에 확정되었고 세월의 흐름 속에 택한 자들의 구원이 완료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역시 계시록에서 너무나도 명료하게 밝혀주고 있다. 계시록의 주된 내용은 신약 구속사와 관련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3대 7중 역사, 즉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란 묵시를 통해서 밝혀주신 내용이다. 그런데 신약의 복음운동, 즉 신약 구속사를 상징한 베옷 입은 두 증인이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으로 예언되었다(11:7).

증거를 마칠 때에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씀하였기에 그들의 죽음은 구원 역사의 종결을 뜻한다. 그런데 무저갱이 열리고 그로부터 짐승이 올라오는 때가 다섯째 나팔 때로 9장 1절 이하에서 보도했다. 따라서 신약의 구속사는 넷째 나팔 때까지 진행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는 것은 이어진 다섯째 나팔부터 일곱째 나팔까지가 최후 심판과 관련한 화(禍), 화(禍), 화(禍)(8:13)로 규정하였음에서도 명백하다.

주님의 재림의 때는 화, 화, 화 가운데 일곱째 나팔 곧 일곱 대접재앙의 마지막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때는 이미 택한 백성들의 구원이 종료된 시점이다. 즉 그 시대는 노아시대나 예수님 당시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지상에 믿는 무리들은 많지만 택한 백성들, 구원에 이를 자가 없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때에는 구원에 이를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없다는 뜻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교회나 지도자 아닌 오직 십자가 봐야
복음 전하다 죽는 현장에 예수 등장

‘영적’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소유 대상에 관한 개념이 아니다. 성령을 인간이 소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령이 그 인간을 소유할 때 나타내는 표현이다. 예를 들면, 스데반 집사가 설교 마치고 과감하게 죽게 되는데 이 설교할 때의 상태가 ‘성령 충만’이다(행 7:55). 즉 ‘성령 충만’이란 사태는 그 상황을 인간 본인이 조종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 성도는 철저하게 자기 부인을 하게 된다. 이는 성령께서 바로 성도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이것이 성령의 객관적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책망하고 책망하므로서 그 사람은 성령에 붙잡혀 사는 존재가 된다(요 16:8-10).

따라서 참으로 영적인 목사라면 날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목회하면서 저로 하여금 천하의 몹쓸 죄인으로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자기 의로움과 자기 세력화 혼이 나가있으면서 열중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이 사실 자체가 악마의 노림수임을 저는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교회나 저의 지도자를 따르지 마시고 오로지 성령님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처럼 여러분들도 스스로 세력화되지 마세요. 그런 것들이 악마의 작용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목사가 되었다는 것은 ‘목사가 돼야 본인이 지옥가도 마땅함’을 알려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도이다. 그 와중에서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이유를 알면 그 목사는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런 목사에게는 많은 협박과 유혹이 따른다. 자신을 좋아하는 교인들의 맹종이 그것이고 노회나 교단의 협박과 생계위협용 조치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스데반 집사처럼 복음 전하다가 죽는 그 현장에 예수님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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