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교리비교 기획을 제공해온 본지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재기획 ‘목사님 성경이 궁금해요’를 선보입니다. 본 기획은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교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에 선정된 질문들은 그간 독자들이 본지 종교부 기자에게 보내온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각 교단에 공문을 발송해 협조를 구했으며, 성도들의 질문에 답한 목회자들의 답을 게재했습니다.
 
Q12.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나무)는 어떤 나무이며, 이 나무 과실은 어떤 것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에덴동산의 중앙에 위치한 나무로 창세기 2장 10절에서 보도하고 있다. 기록된 성경에 의하면 ‘생명나무’는 그 나무의 열매를 계속 따 먹기만 하면 인간의 육적 생명을 영존케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것은 아담의 타락 후 그 생명나무를 따먹고 영생할 것을 우려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즉각 추방하고, 그곳을 천사들로 지키게 하셨다는 창세기 3장 23, 24절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웨에츠 핫다아트 토브 와라(ערו בוט תעדה ץעו)’이다. 이중 ‘알게’로 번역된 ‘다아트(תעד)’는 ‘야다(עדי)’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지식뿐만이 아니라 ‘재능’까지를 함축한 단어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이란 표현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지식을 포함하여 그 양자를 다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됨을 뜻한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 아담은 악은 행할 수 없었다. 그것은 율법이 없으면 죄를 지을 까닭도 없기 때문이다(롬 4:15).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악과 율법을 주심으로 이를 범한 인간은 이제 죄에 오염되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부터 나무 자체에 어떤 특별한 요소가 있어 그리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 즉 하나님 말씀의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창조요 생명이며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과나무를 생명나무라 하시고, 감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 하셨다 하더라도 역시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란 사실이다. 즉 중요한 것은 그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문둥병을 치유 받고자 엘리야를 찾아온 사건이 나온다. 엘리사는 그때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몸을 씻을 것을 명했다. 그에 따라 나아만이 순종하자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다(왕하 5:14)고 하였다. 이 부분 역시 요단강물 자체에 어떤 효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일환이며 말씀의 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다.

그러므로 이것이 어떤 나무이고, 이 나무 과실은 어떤 것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창세기 2장 8절에서 ‘에덴’이 있는 곳을 ‘동방’이라 하였다. 이것이 모세에 의해 기록된 것이란 측면에서 대부분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추정을 한다. 그러나 실제는 에덴이 어디이고, 그 나무가 어떤 나무, 어떤 과실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씀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안다고 한들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함을 자각함이 선악과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할 교훈의 핵심이며 본질이다.

[전 예장합동 이근호 목사]

에덴동산의 중앙을 차지하면서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의 위상을 규정짓는 특수한 나무이다. 인간은 이 두 나무를 보면서 자신을 에덴의 주인공으로 여길 수 없다. 도리어 인간마저 생명나무나 선악과나무의 취지를 나타내는데 봉사되어야 할 존재다. 쉽게 말해서 인간을 위하여 두 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나무의 의미를 위하여 인간이 창조되었으며 만약에 인간이 이 나무의 취지를 훼손한다면 인간이 흙으로 환원되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물론 에덴동산에서 추방도 된다.

이를 놓고 볼 때에 이 두 나무에 인간이 손대므로 그 뒤틀려진 관계 속에서 인간존재가 처해 있는 의미가 드러나는데 그 비밀은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약속으로 구체화된다. 창세기 3장 15절의 약속은 이러하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즉 죄라는 것은 인간의 단독범행이 될 수 없고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주체들이 이미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참여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나온다. 이 ‘여자의 후손’은 곧 예수님을 언급한다.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리고 뱀의 후손은 이 ‘여자의 후손’으로 심판받게 될 ‘만국’이다. 그렇다면 생명나무나 선악과나무, 이 두 나무는 인간을 다루는 창조주의 두 속성과 관련 있다. 이 두 원칙을 가지고 창조주는 세상만사를 다루어오고 계신 것이다. 위반하면 저주요, 저주받은 자에게는 생명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시고자 하나님에 의해서 심겨진 나무다.

이 두 나무는 창세기 3:15의 약속이 진천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의 창조 작업을 통해 그 취지를 흘러나오는데 선악과나무는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취지를 나타내고 생명나무나 언약의 성취를 통해서 나타난다. 결국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서 생명나무는 언약의 완성체인 천국에 나타나서 그 영원성을 발산하게 되고 선악과는 인간과 더불어 사라졌다. 더 이상 피조나무를 통한 취지는 소용없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조예식 목사]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동쪽에 동산을 세우셨다. 동쪽은 희망이며 시작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산된다. 동양사상에서 오행 중 ‘목’은 동이며 ‘봄’을 말하고 인체에서는 ‘간과 담’이다. 즉 동쪽에 생명의 시작은 동쪽으로부터이다.

에덴의 동쪽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었지만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창 2:9, kjv).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창 2:17). 네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것에서 나오는 것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먹는 것은 반드시 그 날에 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말은 아담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다. 그러나 말씀을 받은 적이 없는 이브는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이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창 3:5)’ 일단 나무의 것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간이 신처럼 선악을 알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눈이 열리고, 신들과 같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나무인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나는 것도 참 좋은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것에서 나오는 것을 통하여 사람을 저주하기 위해 동산가운에 세우신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말씀하셨다(요 15:1). 즉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서 만 알 수 있다 고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예수그리스도이다. 그 나무에서 나오는 것은 생명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열매(거듭난 그리스도인)로 올리는 것이다.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너희 열매가 남아 있어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요 15:16)’ 선과 알게 되면 인간은 벗은 줄 압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모른다.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한다. 선과 악을 알았다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목적은 영생이다(요 3:16, 요일 5:13).

이스라엘인은 율법이라는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었지만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피 흘림을 통하여 단번에 죄 사함을 얻지 못하면 생명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드릴 수 없다. 예수님의 피 없이 영생은 없다(창 3:22, 히 9:22). 복 되도다.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이여,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그 문들을 통하여 그 도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때문이라(계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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