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천년 전 지구상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마 이를 아는 사람도 관심 갖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당시 지구촌엔 엄청난 대 변혁이 있었으며, 이를 알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성경이다. 하나님은 약 6천 년 전 아담을 택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고 언약했으나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죄의 길을 걸었다.그래도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떠나가지 아니하시고 약 1천 년 간 회개를 요구했으나, 회개는커녕 죄는 더욱 관영해지고 결국 하나님은 지구촌을 떠나고 만다. 이게 바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
흔히 오늘날을 말세 또는 말세지말이라 한다. 말세란 세상의 끝이 왔다는 의미며, 나아가 끝 중에서도 끝이니 갈 때까지 다 갔다는 의미다. 이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 세상이 끝이 났으니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끝나고 없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오해다. 한 세상의 끝이 왔으니 말세가 잉태하고 있던 새시대 즉,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의미며, 나아가 지금까지의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운 세상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시대적 명령이기도 하다. 이것이 순리고 만고불변의 이치가 아닌가. 다시 말해 지금 이 시대의 모든 것이 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통령도 되겠다”는 일성이 아직도 필자의 귓전에 생생하다. 나아가 소통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취임 첫 날부터 밥그릇 들고 커피잔 들고 직원들과 대화 제스처를 국민들에게 보이고 인식시키려 애쓰던 모습이 국민들 마음의 눈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당시 어느 야당 지도자의 ‘쇼’라는 비아냥 소리가 약간은 귀에 거슬렸으나, 결과적으로 사실이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양의 탈을 쓰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야비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 참으로 서글픈 사연이며, 무엇보다 백성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문 대통령과 조국(曺國)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문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의 극렬한 임명 반대에도 전쟁을 방불케 하면서까지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제 한 달여 지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윤석열 성찰하라”는 작심발언을 하는가 하면 청와대 비서진과 여당은 거품을 물고 윤석열 죽이기에 앞장섰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국의 의혹에 관한 수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다는데 왜 대통령은 그런 발언을 했을까.내 편을 위해서라면 모순이 가득하고 무엇을
작금의 시대를 세인들은 말세라 하며 더 나아가 말세지말이라 한다. 말세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정말 세상 곧 지구촌의 종말이라도 오는 것인가. 지금까지 지도자들의 입으로부터 흔히 그렇다고 듣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구촌의 종말은 오지 않는다. 어쩌면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성이 타락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말하며, 범인들의 심령이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이 말을 다시하자면 지음 받은 피조물 가운데
정의로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그것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내 뱉은 일성 곧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가 아닐까. 나아가 ‘상식과 기본이 서 있는 나라’가 아닐까. 그래서 무조건 내지 누구나 평등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한 만큼 대우받는 세상 즉, 공평한 세상을 염원하는 것이다. 최순실 농단에 분노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하지만 요즘 조국사태를 지켜보노라면 왠지 씁쓸함이 입가에 번져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시 내건 슬로건과 너무나 괴리감이 큰 행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더 심각한 것은 자신의 생각에 사무쳐 국민의 분노를
중세 가톨릭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학문과 예술의 옳고 그름은 당연히 가톨릭교회(로마 교황청)가 판단했다. 당시 누구나 천동설을 믿어오던 시절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는 지동설을 믿고 주장했다. 로마 교황청은 법정에서 갈릴레이에게 앞으로 지동설을 유포하며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으며, 만약 법을 어길 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는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겨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또 그 이전 예수가 이 땅에 초림으로 와 하늘의 진리를 전해도 당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던
창간 10주년, 시작할 때 마음 변치 않으려 애쓴 천지일보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마음은 언론의 사명이자 정신인 ‘중도(中道)’를 말한다. 애매모호한 가운데 길(중간 입장)이 중도의 길이 아닌 어느 쪽이든 맞는 길, 진실의 길, 정의의 길을 의미한다. 따라서 때론 색깔이 분명치 않다는 오해도 받는다. 그 오해는 치우치지 않은 올곧은 길을 걷는 쪽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오늘도 중도의 정신으로 중도의 그 길을 걷고자 한다. 요즘 온 나라를 혼돈과 분열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두 가지의 국내 이슈가 있다면 ‘조국’과 ‘지소미아’다
폭염특보가 연일 이어지면서 모두는 부지불식간에 선선한 가을바람을 간절히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찾아온 가을바람,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폭염이라는 자연재해는 며칠 전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로 한방에 날려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보았고, 또 순리에 순응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과거에도 그랬지만 작금에 와선 더욱이 평화를 말하고, 특히 한반도 평화를 논한다. 그리고 그 평화를 이루겠다고 난리다. 그러나 이 평화 역시 하늘의 뜻이기에 그 섭리를 쫓아야 한다. 나아가 “진인사
“서에서 구름이 일면 비가 오고, 남풍이 불어오면 심히 더우리라고 하니 과연 그러하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잘 분변하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당시 유대 땅을 치리하던 지도자들을 향한 약 이천년 전 성자 예수의 책망이다.또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못하느냐”며 시대를 분별했으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그 길을 따르지 않고 현실과 권력과 핍박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구시대 편에 서서 새 시대를 핍박해야 했던 어리석은 지도자들 내지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향한 질책이었다.이는 그 이전 선지자의 입을 빌려 “내
한반도(韓半島),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반도국에 속한다. 반도국이란 지정학적으로 대륙에서 해양으로,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요충지로서 육대주 어느 나라든 역사적으로 늘 외세 내지 열강들의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반도국으로는 그리스, 로마, 발칸, 크림반도 등이 대표적이며 우리 대한민국이 위치한 한반도 또한 이에 속한다. 이 반도국의 지난 역사를 보노라면 참으로 주변 열강들과의 끊이지 않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으며, 흥망성쇠의 갈림길에서 자의든 타의든 늘 숨 가쁘게 살아왔고 버텨왔고 때론 지배해 왔다. 그
누누이 말해 왔다. 그래도 또 하련다. 성인의 말씀엔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는 말이 있다. 그 말씀은 곧 진리고 이치다. 기본과 근본 나아가 개념과 기준이라는 말은 무슨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기본이기에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며 오히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보수와 진보’, 보수는 헌법과 역사 문화 등 우리의 가치를 소중히 하며 지킨다는 뜻이며, 진보는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 현재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되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보수와 진보의 정의며 기본이며 가치다. 이러한 두
지구촌(村), 이 말은 온 세계가 마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마을과 같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격조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구촌이라는 품위 있는 단어를 쓰기엔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세상을 함께 노력해서 그야말로 지구촌을 만들라는 지상 명령을 받은 것이며, 이는 우리의 지상 과제다. 온 세계가 진정 지구촌이라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구촌은 평화가 찾아온 지상 낙원이 되며, 이에 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인들과 선각자들이 미리 말해 왔으니 바로 무릉도원이며 신세계
‘살라미스 해전’, 이 살라미스 해전은 지중해 해협인 에게 해의 또 다른 작은 해협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와 맞붙은 해전이다. 제3차 페르시아 전쟁 중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연합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으로 유인해 괴멸시킨다. 결과적으로 페르시아제국의 멸망을 견인하게 된 살라미스 해전은 세계 3대 해전의 하나로 꼽힌다. 이 해전의 이름을 본 따 오늘날 협상에서 단계적 접근으로 결과적 승리를 꾀한다는 전술이 바로 ‘살라미 전술’이다. 지금 북한과 미국의 핵 협상은 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세상에는 이치가 있다. 하늘에도 진리가 있다. 즉, 콩 심은 데서 반드시 콩이 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치를 더 쫓아가 보면 콩 씨를 심는 때가 있고 자라는 기한이 있고 거두는 때가 있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이른 아침에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 목적이다. 이 세상 범사(凡事)에는 목적이 없는 것이 없다. 즉, 그 목적은 씨가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어 결실하는 것이다. 그 결실이 주는 열매를 얻고자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씨를 뿌렸던 것이다.그리고 그 열
난민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얼마 전 하나의 사진이 전 세계를 울렸다.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려다 익사한 엘살바도르 부녀의 비극적인 모습은 2015년 9월 터키의 해안에서 익사한 상태로 발견돼 전 세계를 울렸던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 3살밖에 되지 않은 쿠르디의 사진은 시리아 난민과 관련한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이 일로 IS(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를 비롯해 이슬람 테러단체를 피하기 위해 나라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시리아 난민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며,
1968년 11월 2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예하의 124군 부대 소속의 무장공비 120명이 경북 울진-삼척지구에 침투했다. 이 사건으로 무장공비 113명이 사살되고 7명이 생포됐으며, 아군 측도 전사 82명, 전상 67명이라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 침투사건은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침투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금번 북한 어선이 정박 귀순한 지역이 바로 그날의 후유증을 안고 사는 주민들의 인근 지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전쟁과 분단과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세대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앞바다에서 벌어
16일 새벽 한국은 동구유럽의 중심 폴란드에서 개최된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유럽의 복병 우크라이나를 만나 아깝게 석패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아직 청년의 반열에 서지도 못한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이자 소년 이강인 선수는 지구상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선수에게 수여되는 ‘골든볼’이라는 영예를 들어올렸다. 경기 종료 후 대표 팀 정정용 감독은 가장 훌륭한 감독이었음에도 결승전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민들 앞에 송구한 마음을 앞세워 자신의 부족함을 어필하며 한껏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 높아 보
지난 6일 문재인대통령은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정치권의 통합을 강조하며 갑자기 ‘김원봉 발언’을 했다. 이에 정국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아니었나 싶다. 국민들은 편향된 정치적 쏠림 현상에 굳이 편승할 필요는 없다. 먼저 김원봉 그는 누구인가. 약산 김원봉은 독립투쟁의 최선봉에 섰던 비밀결사 ‘의열단’ 단장이었으며,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였으나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서열 3위의 정치인이자 6.25 남침의 선
푸른 눈의 선각자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눈에 비친 조선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1910~1920년대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를 돌며 선교활동을 하던 베버 신부가 급기야 한국에도 발을 디뎠고, 조선의 문화에 감동을 받아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 같았던 그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조선의 숭고한 문화를 남겨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 남긴 116분짜리 영화의 제목이다.왜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눈에서조차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을까.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곧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