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천지일보 시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른 눈의 선각자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눈에 비친 조선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1910~1920년대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를 돌며 선교활동을 하던 베버 신부가 급기야 한국에도 발을 디뎠고, 조선의 문화에 감동을 받아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 같았던 그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조선의 숭고한 문화를 남겨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 남긴 116분짜리 영화의 제목이다.

왜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눈에서조차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을까.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곧 조선(朝鮮)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곧 조선이라는 국명(國名) 속에는 어떤 사연과 역사가 담겨있을까.

예부터 ‘이름’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 했다. 사람의 이름 즉, 인명은 물론 지명, 국명 등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붙여진다. 나아가 모든 사물에 붙여진 이름은 반드시 그 이름값을 하니 이름은 곧 그 사물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나라 최초 고대국가의 이름은 고조선(古朝鮮)이다. 하지만 본래의 이름은 조선(朝鮮)이었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 건국됨으로 옛 고대국가 조선은 고조선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이 조선이라는 국명이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크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조선의 의미를 지켜오고 뒷받침해 주기 위해 유래해온 또 다른 지명들을 통해 감춰진 조선의 참된 의미를 되짚어 보자. 

옛 조선 즉, 고조선의 수도는 ‘아사달’이다. 이 아사는 ‘아침’, 달은 ‘뫼 또는 들’이라는 의미로 아사달은 ‘아침의 뫼(들)’이라는 뜻이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침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아침이 주는 시상은 바로 ‘태고의 신비를 떠오르게 하는 고요와 평화 내지 평화스러운’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해 진다. 

슬픈 전설의 무영탑(석가탑)을 완공한 백제의 석공 아사달로도 오버랩 된다.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은 훗날 ‘평양(平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고, 이 평양은 고조선과 고구려 나아가 현재 북한의 서울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세 나라의 수도로 그 이름을 유지해 왔다는 측면에선 어쩌면 남쪽의 수도인 한성(漢城, 서울의 옛 이름)보다 관심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평양은 한자로 직역하면 ‘평화스러운 땅’이 된다. 즉, 아사달을 한자로 옮긴 글자가 바로 평양이며, 이 평양이 곧 조선이 된다. 우리는 이쯤에서 인명과 지명과 국명을 통해 한결같이 배달돼 온 우리 민족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과 사명을 깨닫게 된다.

민족의식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흰 옷을 입고 배달시켜온 배달의 민족이며 백의의 민족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는 소름끼치도록 놀라운 역사의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사달은 겨레의 시조이자 하늘의 대행자가 머무는 곳이며, 하늘에 제사하고 조상을 섬기며 하늘의 뜻에 따라 대행자가 이 땅을 다스리던 신성한 곳이다. 

한때는 ‘단군왕검이 머무는 도성’이라는 의미에서 ‘임검성(왕검성)’으로도 불렸다. 참고로 현재 경상북도 청도(淸道)의 고대국가 이름이 ‘이서국’이다. 아사달의 ‘아사’는 아침이란 뜻이라 했고, 이 ‘아사’는 ‘이서-아스-아사’의 변천과정을 겪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이서국은 예부터 하늘의 제사를 지내던 제사장 나라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이어져 왔었음을 고문헌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평양은 아직까지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의 이름을 가진 곳에서 인류상 가장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횡횡하고 있으니 지명의 아이러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대목이다. 가장 평화롭지 않은 곳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 세계평화의 시금석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는 기적의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원해 본다.

이 조선은 인류문명이 시작된 동방(東方)이며 해 돋는 나라다. 구전돼 온 문화와 지나온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제 동방의 밝은 빛이 서광을 비추며 온 누리를 서서히 밝혀가고 있으니, 한반도에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찬란한 빛 안으로 나아와야 한다.

이 빛으로 나아오는 것이 이 시대에 태어난 시대적 사명이며 의무며, 그 옛날 푸른 눈의 선각자 베버 신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