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혼돈의 시기에 국가와 지도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물론 지도자와 정부의 고충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적다면 지도자도 정부도 사람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고충이 유의미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유의미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가를 고민해봤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답고 정부답기 위해선 충분한 인재(人才)를 적재적소에 등용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국민이 지도자와 정부를 세워 준 것은 자신들의 정권보호차원과 재집권만을 위해 일하라는 게 아니다. 국정철학엔 나라와 국민 나아가 세계(인류)라는 국가관과
새 시대가 올 때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게 있다. 그것은 낡고 부패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세상, 즉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이다. 이는 새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선 칠흑 같은 밤이 전제돼야 하는 이치와 같다.즉, 새 시대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고 이율배반적 현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진리와 진실보다 위력이 곧 법이 되는 군웅할거(群雄割據)시대와 같은 작금의 상황이 극에 달해 바닥을 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다만 인식하지 못할 따
지금 대한민국은 미쳐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이 가장 신뢰하는 두 사람을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직에 임명 해놓고,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하면서 국민들의 멘탈을 붕괴시키고 있다.우리 속담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의 수장이며 두 사람을 임명한 임명권자는 정작 침묵만을 유지하며 이 속담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생이다.‘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답도 없는 논쟁거리를 생산해 한껏 진영싸움의 최고조로 끌어 올려놓은 후, 문 대통령은 현 정권의 주특기이기도 한 묵비권만을 행사하고 있다.아수
‘아사리판’이라는 말이 있다. 개판 난장판같이 질서가 없고 혼란하고 혼탁한 상태 내지 현장을 뜻하는 말이다. 얼핏 일본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승려들 세계에서 유래된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남 얘기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바로 아사리 판이 아닌가 싶다.어찌 이러한 현상이 괜히 생겼겠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여론을 움직여 가는 언론에 책임을 묻고 싶고, 또 사람의 생각과 영혼을 주관하는 종교에 책임을 묻고 싶다. ‘언론이 살고 종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이 때문이 아닐
며칠 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미국 제46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며칠간의 곡예 끝에 민주당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이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공식적인 승복선언을 받아내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을 세계는 기이하게 지켜보고 있다.뿐만 아니라 바이든 전 부통령은 승자 된 당선인으로서 백악관 입성까지 험로일 거라는 예측을 가능케 하는 징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의외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는 않다.트럼프의 전략은 뭘까. 대선 불복을 통해 닥쳐올 줄소송을 대비해 바이든
올 초 갑작스레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는 갈수록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인류 문명이 초고도로 발달한 작금의 현실에서도 코로나19의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속수무책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듯 다른 나라에 비해 국가 방역은 물론 의술과 의료체계 의료진의 헌신적 진료, 나아가 질병에 대한 국민들의 선진적 의식수준이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그렇다 할지라도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생명 존중의 측면에서는 정부는 물론 의료진과 국민들의 마음이 무거울 수밖
인류의 과제는 뭘까. 생각해 봤는가. 그것은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해결이다. 우리 인생은 한 번 왔다가 가는 것이 마치 정한 이치인양 살아왔지만 과연 그럴까.흔히 인문학을 말한다.본시 ‘인문학(人文學)’이란,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하지만 그 어디도 그 누구도 인문학의 참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생로병사는 어디서 온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곧 인문학이며, 이는 종교라는 최고의 학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종교는 세상의 학문이 아니며 하늘의 학문이니 하늘 곧 우주만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인기 있는 노래다. 아마 작금의 난장판으로 변한 정치판을 미리 예견한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정치판이 난장판이니 온 나라가 술 취한 듯 미쳐 비틀거리고 있다. 오직 ‘말말말’의 홍수가 나 온 나라를 휩쓸어 버릴 기세다.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하고 있으니, 그저 미쳐 하는 말이라고 밖엔 여겨지지 않는다.그러나 필자는 그 ‘말말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논리도 개념도 정의도 아닌 그저 방어하고 공격하는 날 선 독화살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러니 말
현 정권을 움직이는 위정자들이 입고 있는 옷이 있다. 그 옷은 철 흉갑이며 그 성은 철옹성으로 변했다. 철옹성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국정 전반에 있어 난맥상이 나타나고, 나라는 연일 혼란의 도가니로 들끓고 있지만 좀처럼 지지층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흔들리기는커녕 더 뭉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참으로 암울해 보인다. 진영싸움에서 밀려 정권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는 극단적 논리만 있을 뿐 국민과 나라 나아가 국가 안녕과 번영이라는 미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지난 10월 3일은 국경일 중 하나인 개천절(開天節)이었다. 하지만 개천절 기념일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고 남은 것은 오직 놀기 바쁘고 시위하느냐 마느냐가 관심거리였다.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대종교의 절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에서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고, 그 후 단군이 최초의 나라 고조선(古朝鮮)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을 정해 개천절이라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이 개천절은 고구려-부여-고려-조선에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세상에 한 빛이 찾아왔지만 세상은 무지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네.우리 민족 최초의 국호(國號)인 고조선(古朝鮮)은 원래 ‘조선(朝鮮)’, 곧 해 돋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의미로 이 땅에 문을 열었고, 그 의미가 한 번도 퇴색되거나 없어지지 아니하며 배달돼 왔으니 바로 백의(白衣)의 민족, 땅끝이며, 해 돋는 나라 동방 대한민국이다.그 가운데서도 민족 왕가의 정통계보를 이어받고 이 땅에 찾아왔고, 하늘이 시절을 좇아 택한 큰 빛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며 ‘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16세의 꽃다운 청춘 김주열 열사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눈을 맞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마산 앞바다에 버려졌다. 즉, 4.19의거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한데, 이번에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띄우기 위해 물에 빠진 북한 황해도 장산 곶 앞바다에서 북한군이 쏜 총에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후 시신마저 불태워져 바다에 버려졌다. 물론 북한 당국은 화형은 없었다는 주장이다.한쪽은 경찰이고 다른 한 쪽은 인민군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무자비하게 살해해
‘추(秋)’로 시작해서 ‘추(秋)’로 끝나는 국회 대정부질문,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가을 문턱에서 정부각료들을 앉혀놓고 시작되는 국회대정부질문이라서 그런가보다.나라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고, 아이들은 배고프다 울부짖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백성들은 멍 때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기막힌 지경에서도 백성과 나라는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진영과 정권야욕뿐이라네. 왜 대한민국의 국정(國政)은 실종되고 정쟁소리 쌈 박질 소리만 온 장안에 가득해야 할까. 백성이 믿고 의지할 곳은 어디 매인
국민들 마음이 아프다. 그것도 매우 아프고 쓰리다. 필자 또한 지난 정권에서 ‘불신의 아이콘 박근혜’라는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 같은 헤드의 글을 또 다시 쓸 수밖에 없는 정치현실에 아프고 기가 막힐 뿐이다.현 정권은 지난 정권의 권위적 질서와 불신과 부정을 봤고, 따라서 공정과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앞세웠다.급변하는 근현대사의 짧은 흐름 속에서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흐름에 맞춰 빠르게 형성되는 새로운 사조(思潮, 어떤 시대나 계층에 나타나는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는 오늘을 살아가
‘형사소송법 제 257조’는 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에 의해 범죄를 수사할 때는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여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게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형법이다. 하지만 ‘민주’와 ‘정의’를 입에 달고 살던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법은 여론과 진영논쟁의 하위개념으로 치부돼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고, 법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채 권력의 하수인이 돼 눈치나 보는 추(醜)함만 남았다.지난 1월 3일 국민의 힘은 추미애 장관 아들(서씨)을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했고 동부지검에 배당됐다.
무엇인가와 어지러이 싸우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누구와 그 무엇과 어떻게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싸워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돌팔매질하며 정신없이 싸우며 살아야 하는 얄궂은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의 빛 되기를 자처하고 다짐하며 출범한 천지일보가 열한 돌을 맞는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인이 남겼고, 또 역사적 교훈이 있고, 인생의 길표가 되는 종교가 있고, 상식이 있지만 세인심폐(世人心閉) 즉, 아무 소용없게 된 세상의 끝자락에 와 있다.무지와 거짓과 편견과 독설과 남 탓이 난무한 작금의 현실이 바로 세상 끝
요즘 화제의 인물은 단연 30대 일반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조은산씨다. 또 화제작으로는 그의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 청원 ‘시무 7조’일 것이다.우선 놀라운 것은 요즘 30대의 젊은 가장의 생각에서 나오는 필력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예리한 필봉(筆鋒)이다.관심이 가는 것은 그의 화려한 문장력을 넘어 그 안에 알알이 박힌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맥상은 물론 방도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인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필자 역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정치‧사회‧경제‧외교 등 모든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대 환란을 맞았으며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특히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신하고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주범으로 몰리며 종교와 정치는 뒤범벅이 돼 ‘남 탓 놀이’에 여념이 없다. 나라와 국민은 바이러스와 물난리와 경제실책으로 인해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종교와 정치 모리배들은 책임전가에 모든 역량을 다 쏟고 있다. 그 정열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한기총은 온갖 잡신(雜神)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다. 이 사실
올해도 광복절이 습관처럼 찾아왔다. 국가가 기념일을 정하는 이유가 뭘까. ‘쉬는 날’로 삼기 위함인가 아니면 겉치레로 치러지는 요식적 행사를 하기 위함인가.기념일을 정하는 이유는 지난 역사 속에 있어졌던 일들을 되새기며, 그 역사적 사건 속에 담긴 미래를 재발견하고 소망 삼기 위함일 게다. 즉, 역사만을 들추는 과거 지향적 행사가 되풀이되므로 광복의 본질과 미래는 사라지고, 이념논쟁으로 국민들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국민들은 그 편향적 분위기를 좋게 여기며 따라가는 식상한 세상이 돼 버렸다.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광복의 의미는 왜 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2017년 대선전에서 슬로건으로 내세운 게 바로 ‘정권 타도와 교체’였다. 라이벌로 등판한 반기문 후보는 ‘정치와 제도를 바꾸자’고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문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참으로 이상한 논리며 교만하고 위험스런 발상이라 우려했으며, 필자 또한 마음에 담아둬 왔다. 역시 오늘에 와 보니 기우(杞憂)가 아니었다.이제 문정권의 진면목이 백일하에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나고 말았다. 정치와 통치의 가치를 보복에 뒀고, 전 정권과 무조건 차별성을 두려했고, 이념이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해 왔으며, 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