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국립공원인 안면도의 안면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만 4년을 근무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구경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토, 일요일은 하숙을 했으니 집에 와야 하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교사가 오늘 토요일이니 황도에 같이 구경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그간 황도에 가보고 싶어서 벼르던 터라 쾌히 승낙을 했다. 황도는 안면도에 속한 섬으로 옛날의 해안지방 풍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곳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붕기풍어 놀이가 전국민속 경연대회에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지금 서울 공대에 다니는 막내놈을 출산할 때의 일이다. 출산일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니 준비를 서둘러야 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산후 처리(산바라지)를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작은방 한 개를 얻어서 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이니 가정부를 둘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일가가 하나 살고 있어서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며칠 와서 보살펴 주겠으니 때가 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미리 같이 있을 처지는 못 돼서 기다리고 있는데 73년 4월 16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나는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전출되어 근무하고 있는데 주임교사로 담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접촉도 적을뿐더러 더구나 학생들의 생활여건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교과지도를 하고 있는 2학년 3반에 이해란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체구는 작으나 성격이 활발하고 똑똑한 편이었으며 공부도 잘하는 예쁜 학생이었다. 나에게 스스럼없이 교무실로 자주 찾아와 질문도 잘했고 붙임성도 좋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접촉이 비교적 많은 사이였다. “참고서 있으면 하나 주십시오” 하고 스스럼 없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지금까지 근무해 오는 동안 생활신조라고나 할까 분수에 맞게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 학생시절에는 오래간만에 가까운 친척집에 갔을 경우, 가면 정말로 반갑게 대해주었으며 집에 다시 귀가할 때면 택시를 불러 준다고 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학생의 신분으로 택시를 탈 수 있느냐는 생각으로 사양하고 굳이 걸어가곤 했었다. 교직에 있는 지금도 사람은 자기 처지에 맞는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신조로 살아가고 있다. 또 교직자는 다른 사람과 달라서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같은 무렵의 이야기다. 당시 교감선생님이었던 이영하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우리 집에 세계 아동문학 전집 150권이 있는데 그것을 학교에 기증하면 어떻겠느냐고 여쭤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보던 책인데 아이들이 커서 소용이 없는 것이고, 단칸 셋방에서 짐도 되는 것이었다. “아, 그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환영을 하기에 서울에서부터 150여 권이나 되는 책을 한꺼번에 손으로 들고 학교로 가지고 왔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서계 선생님께 도서대장에 올리라고 하세요.” 그래서 도서계 선생님께 말씀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1학년 1반을 담임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다. 그때는 학년주임 제도는 없었고, 학생주임을 맡아 일을 하면서도 형편상 임시로 겸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반 학생 중에 서희연이란 학생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바로 위로 농고에 재학 중인 오빠와 국민학교에 재학 중인 여동생 하나와 함께 시내에서 어렵게 사글세방에 살고 있었다. 입학을 하고 며칠이 지난 후 반장선거가 있었는데 희연이가 반장에 당선되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가운데 과반수가 훨씬 넘는 같은 국민학교 출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안면중학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오늘도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 직원회의를 끝내고 1교시가 돼 수업에 들어갔다. 출석을 확인하고 막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키가 작아서 앞쪽에 앉아 있는 김순일 군이 누런 종이에 싼 큼지막한 보따리를 내밀면서 선생님 잡수시라고 한다. 풀어보니 여러 종류의 생선이었다. “생선이면 가지고 오기도 어려웠을 텐데 혼났구나. 정말로 고맙구나.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 옳지? 애쓰고 가지고 온 걸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고. 잘 먹고 그 고마움을 오래 기억하마”라고 말하고 할 수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 협회장 세간을 뒤흔들었던 서울대 음대의 학생폭행 사건은 뭘 남겼을까. 재발 방지를 위해 해당 대학은 물론 전국의 대학들은 또 뭘 준비하고 있을까. 그 어떤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땜질에 불과할 수 있다. 논란이 되었던 것 중의 하나가 도제식 교육이다. 도제식 교육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기 상공업의 발달로 봉건사회가 퇴락하면서 자유도시가 발달했다. 당연히 중앙집권적 관료정치 체제가 붕괴하면서 상공 계급의 교육적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제교육이 발달한 것이다. 도제식 교육의 근본
정수연 통섭예술인 정트리오(정명화,정경화,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며칠 전 9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식들이 예술을 하면서 어려워 할 때는 “사람이 먼저다. 네가 힘들면 당장 그만 두자”라고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마음을 자녀에게 심어주는 교육을 했다. 아들 정명훈 씨는 말한다. “내가 본 최고의 교육전문가가 바로 우리 어머니다.” 강남의 광림교회에서 주최한 자폐증을 지닌 발달장애우들의 미술전시회 가 인사동에서 있었다.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읽어주는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1980년에는 주안중학교로 전근을 갔다. 첫 부임을 하고 난롯가에 앉아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학교에 ‘해골단’이라는 불온 서클이 있어서 두통거리라는 이야기였다. 이 해골단은 중학교로부터 고등학교 더 나아가 일반사회까지 조직이 뻗어 있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신문에도 여러 번 기사화되었던 샘골의 살인사건도 이 단체와 연결되어 있고 경찰도 뿌리를 못 뽑고 골치를 썩고 있는 무서운 조직이라고 했다. 본교에도 3학년에 6명이 있는데 우리 1반에 4명이 있다고 했다. 아무튼 몰랐다면 그대로 지나갔겠지만 안 이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소설가 하루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앉아 있는데 허름하게 차린 농부 하나가 건너편 책상에 앉아 있는 김모 교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이도 60이 훨씬 넘어 보였고 가난한 농부 같았다. 내용인즉, 그의 딸에게 보충수업을 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려서 그 값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본인(딸)에게 고등학교도 못 보낼 텐데 보충수업을 해서 무엇 하느냐고 타이르면서 보충수업을 하지 말라고 하면 듣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굶고 학교 가기가 일쑤고, 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골을
제주의 계절 꽃이 피고 산새들이 날아오고 고사리가 자라고 사람들이 동그랗게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 바람은 꿈을 꾸고 나무는 청년처럼 튼실해지고 마음은 말간 물빛처럼 순해진다 산 주름이 많은 길 주름마다 꽃물을 들이고 서러운 세월을 다독인다 그것을 바라보는 바다의 눈은 한없이 너그럽고 잔잔하여라 귤밭에 앉았던 바람이 창을 열고 들어오면 이방인들은 귤꽃 향기에 감전되어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복에 겨워 진저리를 친다 순하디 순한 제주의 계절 돌담과 바람과 까마귀는 어깨동무를 하고 푸르게 달린다, 한라산이 깃발을 흔든다. -최옥근
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공학박사 올해 들어 벌써 4명의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아쉬움을 주고 있다. 어려운 입시 관문을 뚫고 들어가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큰 기쁨과 자랑거리였던 뛰어난 영재들이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가야했던 모습을 지켜보며 동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움과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이 사건을 통해서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개혁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슈는 성적에 따른 등록금차등제와 100% 영어수업으로서 카이스트를 글로벌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올려놓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소설가 해미중학교에서는 2회나 근무를 했다. 첫 번째는 3년 8개월을 근무했고 두 번째는 2년을 근무했다.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르고 입학하던 시절이라 누구나 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가난한 시절이었다.당시는 교복을 입었고 머리를 빡빡 깎던 시절인데 머리 깎는 기계도 귀하고 돈도 없기 때문에 머리를 자주 깎지 못해서 항상 머리가 길고 지저분했다. 학생과에서는 자주 용의검사를 해서 복장상태도 보고 머리도 점검해서 상태가 불량한 학생에게는 제재를 가했다. 늘 제재를 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
정수연 통섭예술인 정진석 추기경은 책 에서 통섭(統攝)의 지혜를 강조했다. “우리 삶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다. 행복을 통해선 하느님의 은총을, 불행을 통해선 하느님의 경고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종교는 영생을 지향하는 공동체다. 불교에선 극락세계, 그게 영원한 세계다. 그리스도교의 천당, 그게 영원한 생명이다. 종교는 진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공동체다. 그런데 이런 종교 간에 갈등이 있다는 건 모순이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하나의 큰 줄기에서 만난다는 얘기다. 인문, 사회과학과 자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지금도 농촌은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 때는 도시도 어려웠고 더군다나 농촌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때였다. 지금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90%이상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만 그 때는 여학생의 경우 절반 정도가 중학교 졸업으로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교복을 입던 시절이라 중학교 입학할 때 미리 넉넉한 크기로 맞추어서 졸업할때까지 입었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이 되면 교복이 깨끗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교복천의 질도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인순 양의 교복은 유난히도 누렇게 바래서 흉할 정도로 퇴색
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 ‘나는’ 본래부터 교직에 뜻을 두어 사범계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다른 분야에 목적을 두고 일반대학에 진학했던 사람으로 본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분야의 공직에서 근무하다가 본래의 희망과는 거리가 먼 교육계에 들어왔으니 모든 것이 미숙한 상태에서 출발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교직에 이직이 많고 자원은(교원) 적어서 교육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던 시기이니 우리 같은 일반대학을 나온 사람도 단기 교육을 시켜서 일선에 배치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공주교대 초등교원 양성소 4개월 과정을 이수한 다음 처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올해도 ‘정의’의 열기가 뜨겁다. 미국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가 쓴 가 작년 국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 3일부터 EBS-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역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자정 시간에 편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였을 뿐 아니라 트위터 등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EBS는 재방송을 고려하는 한편 DVD 제작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에 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은
정수연 한국트리즈 경영아카데미 원장 199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시인, 작가, 비평가 겸 외교관이었던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1914~1998)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 문학적 소질을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는 “예술은 미학의 발명이다. 즉, 예술은 철학자들의 발명이다. 소위 우리가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게임(game)이다”라고 하였다. 예술이 진짜 예술답기가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사람
김종원 작가 최근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평소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 나도 재미있게 보고 있을 정도로 흥미를 끄는 내용인데, 바로 라는 드라마다. 60년대의 경제 개발의 빛과 어둠 속에서 이뤄낸 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기획의도이니, 남자라면 흥미가 가는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려운 역경을 딛고 국내 굴지의 건설사로 도약한 만보건설의 황태섭 사장이 딸에게 하는 행동이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딸인 황정연을 기획실 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