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소설가

하루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앉아 있는데 허름하게 차린 농부 하나가 건너편 책상에 앉아 있는 김모 교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이도 60이 훨씬 넘어 보였고 가난한 농부 같았다.

내용인즉, 그의 딸에게 보충수업을 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려서 그 값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본인(딸)에게 고등학교도 못 보낼 텐데 보충수업을 해서 무엇 하느냐고 타이르면서 보충수업을 하지 말라고 하면 듣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굶고 학교 가기가 일쑤고, 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골을 부리고 울고 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나는 요새도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오려면 집에서 걸어서 찻길까지 한 시간 걸리고, 거기서 차를 타고 30분 거리인데 걸어서 온다고 했다. 얼마나 어려우면 통학버스비(학생 60원)도 못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바로 전 해에 도서 벽지 의 교육지역이 되어서 수업료는 없었고, 육성회비만 내는 시기였다.

그 농부의 딸 기원이는 내가 작년에 3학년 4개반, 2학년 1개반을 담당하고 있을 때 2학년 5반의 부반장이었다. 공부는 썩 잘하는 편이 못 되지만 성격이 명랑하고 유머가 있었다. 엉뚱한 행동도 잘해서 선생님들한테 꾸중도 가끔 받았지만 학생들한테는 인기가 좋았다.

가정 형편이 그렇게 어려우니 자포자기하는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공부에는 열의가 없고 장난에는 1등이었다.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가니 인절미 한 접시가 교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아무개가 선생님 잡수시라고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을 생각하고 가져온 것이라니 고맙구나. 물건의 가치보다도 그 마음이 소중한 것이다. 대단히 고맙다.”

학생들 앞에서 먹기가 쑥스럽지만 한두 개 집어서 먹었다.

“선생님, 그것 다 안 잡수시지요?”

“응.”

“그럼 제가 먹어도 좋은가요?”

“응, 먹어라. 먹고 싶은 사람 가져다가 먹어도 좋아.”

성큼성큼 기원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인절미를 집어서 이 아이도 하나, 저 아이도 하나 주면서 다 먹어 치우니 학생들이 소리치면서 까르르 웃는다. 이런 거친(?) 행동을 잘하고 또는 공부시간에 장난을 잘해서 나에게도 가끔 꾸지람을 받았던 학생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보충수업을 해야 할 입장은 못 되나 간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체면을 생각해서 보충수업을 억지로 해야 했던 모양이다.

이것을 안 나는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서 보충수업비 3개월분과 시내버스비로 졸업 때까지 쓰라고 1만 5000원을 봉투에 넣어 보내면서 돈만 보낼 수가 없어 내 딴에는 위로와 격려를 한다고 몇 글자 적어 동봉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내용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편지와 함께 돈이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 후 만나서 사과를 했다. 오히려 네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왕 주기로 한 돈이니 아무런 부담 가질 것 없이 쓰라고 권했으나 막무가내로 거절이었다. 그렇다면 꾸어 쓴 것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갚으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섣부르게 남을 돕는다고 했다가 상대방의 마음만 상하게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됐다.

그리고 그 고집을 살려 꿋꿋하게 사회 세파를 이겨서 성공하기를 빌었다.(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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