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국립공원인 안면도의 안면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만 4년을 근무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구경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토, 일요일은 하숙을 했으니 집에 와야 하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 교사가 오늘 토요일이니 황도에 같이 구경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그간 황도에 가보고 싶어서 벼르던 터라 쾌히 승낙을 했다. 황도는 안면도에 속한 섬으로 옛날의 해안지방 풍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곳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붕기풍어 놀이가 전국민속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 대통령상을 받은 일도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우리는 황도행 완행버스를 탔다. 유명한 안면도 소나무 숲을 뚫고 향긋한 솔향을 맡으며 기분 좋게 즐거운 마음으로 황도에 갔던 것이다. 같이 간 동료교사는 과거에 황도국민학교 서무과 직원으로 같이 근무했다는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와 오래간만에 만나서 구멍가게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소주도 못 마시고 우두커니 옆에 앉아 있다가 옆을 보니 내가 가르치는 2학년 5반 반장인 이선영이 앉아 있었다.

“너희 집이 황도라고 했지?”
“예.”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갈 수 있나. 너희 집에 가자.”
“오늘은 안 돼요. 다음에 오세요.”
“야 내가 너의 집에 오기 위해 황도에 또 오겠니? 이왕 왔으니까 들러 보자는 거야.”
“안 돼요.”
“내가 너의 집에 간다고 해서 부담될 것 없다. 그냥 집만 알고 싶어서 그러니 대접 같은 것은 마음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이 어려워서라면 염려할 것이 아니다.”

조금 있다가 옆을 보니 선영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어허 얘가 왜 이러지. 내가 너의 집에 꼭 가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농담으로 그런 것이지. 안 갈게 안가.”

옆에서 술을 마시던 그 구멍가게 주인아저씨가 그런 상황을 보더니 말을 한다. “그 애 요새 울 만큼 됐지.”

그 아저씨가 들려주는 사연인즉 선영이의 아버지는 어부의 한 사람으로 남의 배를 타고 일하다가 불행하게도 중풍에 걸려서 반신불수가 되어 꼼짝 못 하고 누워 있게 됐다. 그 바람에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얘, 미안하다. 내가 눈치 없이 네 아픈 곳을 찔렀구나. 주책이 없어서 그랬다. 울지 마라. 불행이 닥칠수록 마음을 더욱 굳게 가져야 되는 게 아니냐? 조금 지나면 병이 완쾌되시겠지.”

나는 시선을 산 쪽으로 돌렸다.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 조그마한 당집이 보였다. “저기 당집이나 구경하러 가자.”

이때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섬마을의 풍취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봄 가을 두 차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정성껏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야, 선영아 너 웅변 잘하더라. 굉장한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더욱이 목소리가 특히 우렁차고 좋더라. 웅변이란 음성과 몸짓을 통해서 청중으로 하여금 압도를 당하게 하여 설득을 하는 기술인데 상당한 요령이 필요해.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태도가 의젓해야 하고 목소리가 우렁차야지. 그런데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운 태도가 보여야 매력이 가는 법이다. 제스처도 세 번 이상은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말의 기교에 자신이 서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차라리 잘하는 것으로 보이더라. 너 작년에는 2등을 했지만 금년에는 꼭 1등을 해야 한다. 알았냐?”

“예, 열심히 해 볼게요.”
작년에 그는 교내 웅변대회에서 2등을 했다. 작년에 나는 심사위원장을 했다. 심사위원장으로 강평도 했었다.

“나도 들을 줄은 아는 사람이야. 직접 하지는 못해도. 필요하면 들어주고 아는 데까지 지도도 해줄게.”
“예, 알았어요.”

그 일 후 며칠 뒤에 보니 선영이가 납부금을 못 내서 서무실에 불려다니고 있었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당시 주임교사로 담임은 없었다. 교과담임으로 3학년 4개 반, 2학년 1개 반 25시간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선영이 반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서무과로 가서 선영이가 못내 밀린 1기분 등록금(2만 5000원)을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본인에게는 누가 냈다고 하지 말라고 서무과 직원에게 말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 찾아와서 고맙다고 했다. 똑똑한 아이였다.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웅변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그 후 5월이 되어서 예전과 같이 교내 반공웅변대회를 열었는데 당당히 1위를 했다. 군대회에도 참가해 1위였고 군대표로 도대회에 나가서도 1위였다. 상금도 그 당시로는 상당히 많은 금액인 무려 10만 원을 탔고 승승장구하다가 전국대회에 나가서는 애석하게도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안면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섬 황도(지금은 안면도와 연육이 되어 자동차도 다니고 있음)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충분히 고무시켰던 것이다.

그 다음 해부터는 도서벽지부터 단계적으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의 시행으로 수업료는 면제지역이 됐고 육성회비만 내면 되는 지역이 되어서 수업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나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해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물론 진학을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통솔력도 좋고 모범적인 데다가 공부도 퍽 잘하니 좋은 인재가 될 것이 분명한데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라면 진학을 시켜서 키워야 옳지 않을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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