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작가

최근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평소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 나도 재미있게 보고 있을 정도로 흥미를 끄는 내용인데, 바로 <자이언트>라는 드라마다. 60년대의 경제 개발의 빛과 어둠 속에서 이뤄낸 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기획의도이니, 남자라면 흥미가 가는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려운 역경을 딛고 국내 굴지의 건설사로 도약한 만보건설의 황태섭 사장이 딸에게 하는 행동이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딸인 황정연을 기획실 말단 직원으로 입사시킨다. 그러나 회장의 딸이라는 이유로 황정연은 직원들의 시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황태섭 사장은 이런 딸을 절대 감싸주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고통을 지켜본다.

그가 그런 행동을 취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고, 그것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딸을 유능한 CEO로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부진과 이서현을 떠올렸다. 회장의 딸이 직원으로 입사해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내고 마침내 큰 모습으로 성장하는 자이언트의 주인공 황정연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과거 천재론을 제시하면서 “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재해석하자면 경영 천재 한 명이 직원 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누가 경영의 천재로 인정을 받아 이건희의 후계자로 선정될 것인가.

이건희의 리더십은 현재 이재용과 이부진, 이서현 등 2세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먼저 이재용을 살펴보자. 이재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했는데, 이 역시 리더십 수련과 관련 있다. 대학 전공을 놓고 고민할 때, 할아버지인 이병철이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이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교양을 쌓는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이나 문학과 같은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에 유학을 가서 배우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이건희는 자식들에게 사람을 다스리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며 “이재용이 임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다.

또한 이재용은 이건희의 지시로 국내외 경영현장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데, 그럴 때마다 늘 현지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스킨십을 통한 리더십을 키우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나 핵심 임원들의 역할도 한몫한다. 그들이 이재용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부진도 이재용에 뒤처지지 않는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버지의 리더십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리더십을 가져서였을까?

2002년 이건희가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기 1년 전에 “앞으로 10년 후 호텔신라가 과연 어떤 호텔로 고객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 중장기적인 계획과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녀는 용인술에서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루는 일식당 주방장이 다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곤 그 즉시 자신이 알고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는 정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매년 연말엔 주부사원들로 구성된 룸 청소부들과 벨보이 등 말단 직원들에게 일일이 내복을 선물할 정도로 세세히 직원들을 살   핀다.
하지만 그런 면으로만 십만 명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긴 힘들다.

리더는 십만 명의 직원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에 이부진은 호텔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기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라호텔 부장이었을 때도 자신의 업무 영역이었던 식음료는 물론 영업, 일반 관리, 브랜드 이미지 관리 등 전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더욱더 배움에 박차를 가하면서 회의실에 수백 권의 국내외 호텔 전문서적을 비치하고 이를 탐독하며 선진 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서현 역시 일선 디자이너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간담회를 자주 할 정도로 소탈한 면을 보여주며 직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창의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 평가를 받으며 삼성을 이끌 미래의 리더로 인정을 받고 있다.

과연 누가 이건희의 지목을 받아 십만 명의 직원을 이끌 삼성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 자신만의 강점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을 다루는 법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회장이라고 할지라도 혼자 모든 일을 100% 다 할 수는 없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에 십만 명의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을 이끄는 회장은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레 갖출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누가 가장 먼저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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