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지금 서울 공대에 다니는 막내놈을 출산할 때의 일이다. 출산일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니 준비를 서둘러야 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산후 처리(산바라지)를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작은방 한 개를 얻어서 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이니 가정부를 둘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일가가 하나 살고 있어서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며칠 와서 보살펴 주겠으니 때가 되면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미리 같이 있을 처지는 못 돼서 기다리고 있는데 73년 4월 16일에 해산을 했다. 해산하는 것은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도와주셨고 새벽밥도 주인집 아주머니가 수고를 해 주셔서 아침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라면 보통의 경우 연가를 내서 집에서 산모를 도와야 했으나 고지식한 나의 생각은 산모를 돕는 것은 사적인 일이고 학교 일은 공적인 일인데 사보다는 공이 우선한다는 생각으로, 더구나 교직원이기 때문에 내가 하루 결근하면 수백 명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출근을 하였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필자의 수업시간이 다행히 3시간 들어있는 날이었다. 두 시간은 1, 2교시였고 또 한 시간은 오후에 들어 있었다. 수업계에 부탁해 오후에 든 한 시간을 3교시로 돌려놓고 수업을 마친 다음 마침 교장선생님은 출타 중이어서 교감선생님에게만 사정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산후조리를 해주기로 약속을 한 일가집을 찾아갔다. 아침은 해결이 됐으니 점심만 제때에 해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마침 비가 오는 날이어서 비를 맞아가며 찾아가 조카뻘 되는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오다가 또 학교가 못 미더워서 나는 학교에 들어갈 테니 집에 속히 가서 점심도 빨리해주고 잘 좀 보살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다음 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기다리다가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장선생님께서 말도 않고 외출을 했다고 꾸중을 하셨다.

그때 나는 붓글씨는 잘 쓰지 못했으나 직원 중에 붓글씨 쓰는 사람이 없어서 붓으로 글씨를 써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나에게 와서 부탁을 해 작은 붓 2개가 필요하던 때이다. 서무과에 요구하면 예산 타령을 하고 수속 밟아 사자면 절차도 복잡하고 이유가 많아서 우선 학교용 붓을 때마침 붓장수가 학교로 왔기에 두 자루 외상으로 산 적이 있는데 그 외상값을 받으러 왔던 것 같다. 당시는 당당하게 서무과에 의뢰해서 사는 시기가 아니고 서무과에 가서 과장에게 사정사정을 해야 인심을 쓰듯이 겨우 사주는 시기였다.

교장선생님께 말씀 안 드리고 외출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출타 중이어서 그랬고 부하직원의 형편을 환하게 아는 마당에, 더구나 외출시간이 잠시였고 또 수업을 다 마치고 외출을 하고 왔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요새 교장 같았으면 속으로는 혹 마땅치 않더라도 속히 집에 들어가 산모를 도와주라고 권고했을 것이다.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재하자 유구무언이란 말을 되새기면서 사죄를 한 다음 퇴근시간이 되어서 집에 와보니 산모가 탈진을 해서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해산한 산모가 아침 이후 점심도 굶고 저녁때까지 혼자 그냥 누워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오전이야 아침을 먹었으니 됐고 점심때부터야 조카 아가씨가 갔으니 나는 안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항상 나돌아다니는 분이라 예대로 이웃마을에 마실을 갔고, 이 아가씨는 농촌에서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래간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니 친구도 만나야 되겠고, 언니도 만나야 되겠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였는데도 어두울 무렵에야 들어오는 게 아닌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꾸중할 처지도 못 되었고 또 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니 그저 가슴만 찢어지는 것같이 아프기만 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때의 산후조리 잘못으로 건강을 잃었다고 지금도 가끔 무심한 사람이라고 원망하는 말을 듣는데 대단히 미안할 뿐이다.

또 부모의 제사에도 참례한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집안의 대소사에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식들 그리고 학생들의 예절교육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상을 추모하고 친족 간에 우애하고 이웃과 서로 돕는 것이 미풍양속이라고 가르치면서 그것에 참여하기 위해 결근할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두 가지 중 하나는 놓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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