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고대 순결한 부부애 도미부인 열전 기록을 보면 도미(都彌)는 고대 백제 사람이었다. 그는 왕경인 위례성에 살았으며 여종을 거느린 것을 보면 귀족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너무 아름다웠다. ‘미인은 박명하다’고
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왕봉현 행주산성엔 고와편의 흔적행주산성을 처음 구축한 시기는 백제 때로 추정된다. 여기서 서북쪽에 있는 작은 산 보루메라는 곳은 자연 토루를 이용, 사람들이 거주했던 고식의 토성지이며 마한 시기까지 시대를 올려볼 수 있다. ‘벽제’
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한성의 회복과 경영웅진에 천도한 문주는 다시 백제를 일으켰다. 왕성 인근에 대두산성(大豆山城)을 축조하여 나라를 잃은 한북의 민호를 옮겼다. 한북의 백성들이 문주의 그늘로 돌아온 것은 왕이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비
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계백현의 옛터 행주산성안장왕과 백제 한씨 미녀의 설화위례성의 이웃 한강 하류 계백현의 비밀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처음 왕도로 자리잡은 고대 한성(漢城, 위례) 백제는 개로왕 2(475)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의 새라고 한다. 고구려인들의 앰블럼으로 여러 장식이나 유물에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새겨 넣었다. 왜 고구려인들이 삼족오 문양을 즐긴 것일까.주몽의 개국설화에도 나타나지만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태양의 후손으로 자부했다. 그래서 이 새가 천손(天孫)의식을 갖고 있던 고유의 상징이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사신(四神)은 동, 서, 남, 북을 지키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삼족오가 자리 잡고 있다.북한 평양시 진피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가장 아름다운 삼족오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삼족오 문양 중 가장 완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처음 축조는 백제이성산성의 초축 시기는 언제일까. 이 성을 꾸준히 조사한 한양대 박물관의 조사보고서에는 비교적 소상하게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주로 내탁법을 사용하였으며 남쪽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부분과 서쪽의 일부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이성산성에서 찾아진 고대 악기 요고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초일동·광암동 등 3개리에 걸쳐 있는 표고 209.8m의 산능선에 축조되어 있다. 총 둘레는 1925m이며 산성 내부의 면적은 약 15만 5025㎡로 4만 7200평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하남에 숨겨진 백제 초기 역사감일 지구에서 백제 초기 석실분 무더기 발견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처음 왕도로 자리 잡은 위례성(慰禮城)은 아리수 북쪽(河北)이었다. 왕이 고구려 땅을 탈출, 남하하여 부아악(負兒岳, 지금의 북한산)에 올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비봉산 정상에 고대 성곽 유지비봉산 정상 부위에 고대 성곽유적이 남아있다. 양구현 고적조에도 ‘비봉산성 석축주 팔백구십이척 고 육척(飛鳳山城 石築周 八百九十二尺 高 六尺)’이라 나온다. 에는 ‘돌로 쌓은 삼국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북한강 어구를 지킨 백제의 윤노성강원도 양구는 본래 백제 땅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중국 吉林省 集安縣 通溝)에 기록된 여러 곳의 백제 정복성 가운데 ‘윤노성(閏奴城)’이 나온다. 바로 윤노성이 양구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윤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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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던 소동파 시집 말미에 부군 그리움 적어육필 시는 첫 발견… 세종 때 간행한 시집도 문화재급조선 4대 여류시인으로 시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이옥봉(李玉峯)의 육필 시로 보이는 한시 1수가 발견됐다. 이 시는 옥봉이 평소 시를 공부했던 서책인 ‘소동파 시집’ 맨 뒷장에 종서 2행 초서로 썼으며 내용은 부군이 괴산현감으로 부임하자 기뻐하면서도 떨어져 있음을 애석히 생각한 내용이다. 특히 시 왼편에는 붉은 글씨로 이 시가 옥봉이 쓴 것(敬述)이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李娘玉峯 憶其良人趙公援在槐山時作也’(이낭 옥봉이 괴산에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고대 철기 왕국 백제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모두 678년의 역사를 지닌 왕국이다. 백제 멸망 후 3년간 처절한 항쟁을 하였으므로 멸망 시기를 663년(豐王 재위3년)으로 잡아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남조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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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와당연구가연꽃은 청정함을 상징하며 불교 내세관과 연결된다. 석가나 불보살은 모두 아름답고 화려한 연화좌에 모셔지고 있다. 장엄한 불보살이 가득한 극락세계도 연꽃으로 장식 된다. 고대 궁전이나 사암(寺庵)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무늬가 바로 연화문이다.고구려가 건축물에 연화문 막새를 사용한 것은 4세기 후반(372AD. 소수림왕 2) 불교전래 이후로 생각 된다. 사서(史書)의 기록을 보면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375년 2월에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肖門寺)를 창건, 순도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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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많은 맥국 유적·전설, 학계 규명작업 긴요춘천 지역에는 맥국과 관련이 있는 지명 및 전설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일부 재야학자들은 이를 확대 해석, 고조선과 연계시키기까지 한다. 이들 유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학술조사가 따랐으면
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온조왕의 춘천 공략과 ‘맥국설’에는 백제를 개국한 온조왕이 13년(BC 6) 8월에 동쪽으로 ‘주양(走壤)’에 이르렀다고 했다.“왕은 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도(遷都)를 고하고 강역(彊域)을 획정하였는데, 북쪽으로는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