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백제사] 백제 윤노성 강원도 양구 고구려 광개토대왕 역사의 비밀을 품다(2)
[다시 쓰는 백제사] 백제 윤노성 강원도 양구 고구려 광개토대왕 역사의 비밀을 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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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비봉산 오르는 길
비봉산 오르는 길

비봉산 정상에 고대 성곽 유지

비봉산 정상 부위에 고대 성곽유적이 남아있다. <여지승람> 양구현 고적조에도 ‘비봉산성 석축주 팔백구십이척 고 육척(飛鳳山城 石築周 八百九十二尺 高 六尺)’이라 나온다. <여지도서>에는 ‘돌로 쌓은 삼국시대 산성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2002년 육군사관학교 군사박물관이 낸 <양구·인제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에 기록된 비봉산성에 대한 글은 다음과 같다.

“비봉산성은 비봉초교와 양구군청 뒷산인 양구읍 하리 산 28번지 해발 370m인 비봉산 정상에 위치한 돌로 쌓은 둘레 560m규모의 성이다. 비봉산 7~8부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산성 동벽 시작 부분에서 남서벽 50m지점까지 성돌이 가장 많이 분포돼 있으며 성돌의 크기는 14×30㎝, 40×20㎝, 60×23㎝의 각돌로 형성되어 있다. 또 정상부분 곳곳에서는 20×30㎝ 크기의 성돌이 3~4겹으로 겹쳐 쌓은 성벽을 등산객이나 일반인들의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양구군의 용역으로 이 성을 조사한 <강원고고문화연구원 보고서(2017.12.27)>에는 다음과 같이 조사내용을 기록했다.

“지표조사를 통해 살펴 본 비봉산성은 산 정상에서 서족으로 뻗어 내린 지봉(340m)과 작은 소곡지를 둘러싸고 있는 테메식 산성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서벽이 길고 동벽이 짧으며 동서방향으로 긴 사다리꼴 형태의 산성이다. 단면의 형태는 북쪽의 봉우리와 남쪽의 소곡지를 둘러싸고 있어 북고남저의 형태를 하고 있어 양구읍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측조 방법은 사방을 석축으로 축조하고 내외 협축 또는 내탁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매우 주목되는 내용이 있다. 즉 남벽 모서리 부근에서 가장 잘 쌓은 구간이 찾아진 것이었다. 조사단이 확인한 성벽의 길이는 13.7m로서 석재의 높이는 일정하고 석재의 모양도 치석(治石)되어 방형 내지는 장방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석재의 크기는 작은 것이 28㎝ 높이 23㎝, 큰 것은 길이 47㎝ 높이 23㎝이다. 더 중요한 것은 큰 석재들이 하단에 놓여 있으며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로 비스듬하게 들여쌓은 것이었다. 이 같은 방법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축성양식으로 오녀산성, 고구려 왕도였던 지안 국내성, 환도성 등에서 같은 방법이 발견되고 있다.

오녀성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성곽이다. 오녀산(五女山)의 북쪽과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험한 800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축조되어 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수도인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에 위치하였다.

오녀산성에서는 굽도리 축조공법이 확인되었다. 굽도리 축조공법이란 굽도리를 조성할 때 계단식으로 경사지게 쌓는 방법이다. 협곡에 쌓을 때와 높은 성벽을 축조할 때 많이 적용되었다. 이 축조방법의 기본은 높은 성벽을 보다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성벽의 굽도리 부분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성 돌을 약간씩 뒤로 물려 쌓는 것이다. 이 같은 전형적인 고구려 축성방법이 비봉산성에서 찾아진 것이다.

비봉산성은 테메식성으로 구축하였으며 능선의 자연 험차를 이용한 포곡식성으로 보인다. 테메식과 포곡식성의 혼합 양상은 고구려성에 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신형식 전 이대교수도 <고구려천리장성의 연구(고구려 문화의 재조명, 백산학회발행, 2005)>에서 “고구려는 대산 심곡에서 출발한 나라였으므로 나라 이름도 성을 뜻하는 구루(溝漊)에서 시작되었으며 여러 개의 산형을 묶은 포용형의 고로봉 산성들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박물관 양시은 박사도 ‘동북아역사넷’ 사이트에 쓴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구려 산성 축조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 산성은 입지한 방식에 따라 테뫼식(山頂式)산성, 포곡식(包谷式)산성, 복합식(複合式)산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테뫼식 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둘러싼 형식으로,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고, 지형 여건상 물자원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성 내부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수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남한에 위치한 고구려 보루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포곡식산성은 계곡을 포함하고 있어서 규모가 테뫼식보다 훨씬 크며 성 내부에는 물 자원이 풍부하고 공간이 넓어 장기간 주둔하면서 방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국에 위치한 대형 고구려 산성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집안의 환도산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강원고고문화연구소 비봉산 조사 자문회의 당시 전 매장문화재 분과위원장을 역임한 성지연구 최고 권위자인 심정보 전 한밭대 교수는 “비봉산성에서 백제의 양식이 남아 매우 주목된다”고 밝혔다. 테뫼식의 유구와 석축 일부에서 백제적인 것이 찾아져 초축 시기를 고구려지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란 점을 지적했다. 그는 비봉산성이 백제~고구려~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른 전 시기에 이용됐을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 역사의 ‘타임캡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봉산성처럼 전 역사 시기에 이용됐던 성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양구 비봉산성은 앞으로 보다 확대된 조사를 통해 이 같은 테뫼식과 포고식의 혼합 기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봉산에 남아있는 성벽 일부
비봉산에 남아있는 성벽 일부

성내에 출토되는 백제 고구려 기와

비봉산성 안에서는 많은 양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서문지에서는 등산로를 조성하기 위한 도로개설 과정에서 나온 와편이 산란하고 있다. 특히 오래전 중계탑을 건설하면서 유구를 파헤쳐 다수의 와편이 수습되고 있다. 수습되는 기와 가운데는 적색의 방격자문(方格子紋), 사격자문(斜格子門), 태조(太條)의 선조문(線條紋), 수지문(樹枝紋) 와편 등이 보인다. 이는 삼국시대~신라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와편이다. 방격자문과 사격자문 와편은 중국 지안 국내성이나 환도성, 오녀산성, 평양 국내성, 대성산성과 임진강변 호로고루, 한강 아차산성에서 출토되는 기와들과 매우 흡사하다. 사실 이 같은 모양의 평와는 고구려 최남단지역으로 상정되는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고사지에서 출토되는 기와와 비슷하다.

비봉산 유적에서 찾아진 평와 가운데 한 가지 주목되고 있는 것은 명문 기와이다. 거의 파손되어 전체를 알 수 없지만 방형(方形)의 구곽(口廓)에 글자의 아랫부분이 일부 남아 있다. 혹시 글자는 ‘차(此)’가 아닌지. 此는 차(次)와 동의어로 쓰였으며 모두 ‘치(ci)’로 읽는다. 윤노성-윤고치-요은홀치(차)의 ‘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더 완전한 명문와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중국 <신당서(新唐書)>의 고구려전(高句麗傳)에는 왕실과 관부 또는 불사에 기와를 사용하였다(高句麗唯王室及府佛-瓦)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 기와를 이용한 시기는 불교 이전에도 활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필자가 고구려 와전을 가장 많이 소장한 서울 박성수씨의 수장품 가운데서 찾아진 와당의 무늬를 보면 초기 것으로 보이는 이형 와당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당들은 인면문(人面紋), 과보문(夸父紋), 섬여문(蟾蜍紋), 삼족오문(三足烏紋), 반인반어문(半人半魚紋), 뇌신문(雷神紋), 엄유어문(冉遺魚紋) 등이다.

고구려 기와의 특색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적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적색은 고구려인들이 즐겨 사용한 색이다. 검게 만들어진 기와에는 주칠(朱漆)을 하여 사용했음은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한다. 붉은색은 장엄미와 함께 벽사의 의미도 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최근 들어 여러 고구려 유적에서 연화문 와당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충주 탑평리사지, 제천 장락사지와 서울 아차산성, 연천 호로고로성 등이다. 비봉산성에서도 고구려막새가 찾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향후 비봉산성 조사발굴의 기대

양구군은 이번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의 기초조사를 토대로 보다 확대된 조사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전창범 양구군수는 비봉산성에서 고구려 흔적이 찾아진 이상 단계적 발굴 및 정비계획을 마련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고구려역사문화박물관’을 추진, 시민들의 역사 체험공간으로 혹은 관광지로 가꾸겠다는 것이다.

양구는 구석기박물관과 근세사박물관, 박수근 미술관, 백자박물관, 해인문학관, 안병욱 김형석 철학관 등 볼거리가 많은 고장으로 유명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고구려 역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박물관을 설립하는 것. 아름다운 파로호 주변에 역사박물관이 생기면 박물관 타운이 조성되는 셈이다.

비봉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와편
비봉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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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2019-11-08 19:24:40
한국은 5천년간 피로 다져진 나라다. 역사르루돌아보며 미래를 되풀이 인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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