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망와(望瓦)는 건축물의 마루 끝에 올려놓는 암막새로 망새라고도 부른다. 한 건축물 지붕에 4개를 세워놓아 그 수효가 매우 적다. 절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망와가 출토되면 대어를 낚는 셈이다.고구려 망와는 건장한 전사(戰士)의 얼굴이란 느낌을 준다. 신라 용면처럼 험상궂은 얼굴도 아니다. 강건하면서도 순박하다. 고구려 왕도 지안 국내성 유적에서 출토된 여러 점의 인면문 와당을 닮고 있다.‘고구려 인면’은 대륙에서 유행한 도철문(饕餮文)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창적인 양식이다. 도철문은 은나라 이후 전국시대의 청동기,
고구려 유적, 큰 돌에 많은 구멍 파… 신성한 제단 가능성월간 역사문화잡지 글마루‧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 조사[천지일보=백은영 기자] 고양시 일산 동구 일산동에 위치한 고봉산성(206.3m) 중턱 바위 군(群)에서 고대의 성혈(星穴)과 각종 그림이 새겨진 선각화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봉산 고구려 유적 찾기에 노력해 온 월간 역사문화잡지 글마루와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이하 답사반)은 지난 13일 이은만 고양시 전 문화원장(현 문봉서원장)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들과 속칭 장수바위라고 불리는 직경 약 10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 대왕들은 무덤을 만들고 외면에 축조한 전돌에 한나라 황제들이 즐겨 쓰는 길상어를 새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다. ‘만세’는 황제의 위치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천년동안 나라의 안녕이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기원한 것이다.이번에 소개하는 이형전(異形塼)은 원형으로 건축물의 외장에 쓰인 것 같다. 굵은 열십자 음각선으로 네 개의 구곽을 만들고 가로글로 ‘천추만세 영고’라는 글자를 새겼다. 맨 아래에는 큰 글씨로 ‘사어(四魚)’라는 글씨를 팠다. 글씨는 각이 진 예서체이며 ‘
동해시에서 원삼국시대 치소 큰 토성 발견고구려 상부 지칭하는 ‘上’명 적색와편 수습연화문·卍자 와편 등 다수 찾아져고대 성터 확인시 사적공원 계획도 실직국(悉直國), 실직곡국(悉直谷國)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지금의 동해시, 삼척시에 자리 잡았던 고대 국가였다. 원삼국시대 동해변을 거점으로 성읍국가로 성장한 고대 왕국이었다.실질국의 지배자는 왕이란 칭호를 받았으며 해상을 이용해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실직국은 신라초기 영토분쟁으로 혼란을 겪다 틈새를 노린 신흥국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잃어버린 왕국으로 그 역사가 묻혀
이재준 와당 연구가고구려(高句麗)는 매년 10월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삼국지 위서(魏書) 열전 동이(東夷)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나라 동쪽에 대혈(大穴)이 있어 수혈(隧穴)이라 불렀다. 10월에 나라에서 대회가 열릴 때에 수신(隧神)을 맞아 나라의 동쪽으로 돌아와 제사하는데, 신좌(神座)에는 목수(木隧)를 두었다’한 해 추수가 끝나는 계절, 고구려인들은 축제를 열고 동쪽에 있는 큰 동굴에 가서 천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10월에 대혈이 있던 나라 동쪽에서 수신에 대한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그러면 이 기록에
이재준 와당 연구가고구려 불교 도입 이후 최초의 가람은 ‘이불란사(伊弗蘭寺)’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374(소수림왕 4)년에 아도(阿道)가 진(晉) 나라에서 왔으므로 이듬해에 초문사(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무르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상주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불교사상 첫 사찰의 이름은 바로 이불란사다.‘이불란사’라는 이름은 무슨 뜻일까. 언어학자들은 ‘이불란’이 토속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미륵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불(泥佛)은 흙으로 빚은 불, 즉 토제불로 해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 ‘역사상(力士像)’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사신총은 6세기 후반~7세기 조성된 고분이다. 사면 벽화 가운데 장사급인 반라(半裸) 역사상이 나타난다. 두 역사가 씨름을 하고 있는 그림인데 드러난 상체에 굵은 허벅지, 탄탄한 근육이 두드러지게 표현됐다.역사상은 신장상(神將像)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개는 부처나 탑 혹은 묘역에 세워져 있는 수호신이다. 인왕(仁王)은 강사(剛士)라고도 하며 상체를 벗은 모습에 근육질로 주먹을 쥐거나 방망이를 든 모습이다. 사찰의 인왕문, 명부전이나 탑의 문비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인들은 일월신(日月神)을 고분 벽화 말고도 벽돌 문양에 적용했다. 해는 양(陽)을 상징하는 남신, 달은 음(陰)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이 벽돌에도 남신은 이마에 삼족오가 들어 있는 태양을, 여신은 두꺼비가 있는 달을 이고 있다.고대사서 고구려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주몽 설화도 해와 달신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달의 여신 하백의 딸 유화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야합해 임신해 알을 낳지 않는가. 달 속에 있는 두꺼비는 여신 설화다. 산해경 회남자(淮南子)에 ‘항아(姮娥)가 아홉 신들을 쏘아 죽인 죄로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영동군 난계 박연선생 유적의 세계문화유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악기 기증 운동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지난해 이어 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풍류애(좌장 장두환)는 29일 영동군을 찾아 박세복 군수에게 중국 명문가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당나라 풍의 고 칠현금 1점을 기증했다.기증된 고 칠현금은 세로 123cm 하폭 15cm 크기로 줄은 7현이며 안면에는 세로로 양중화성(養中和性)이란 큰 글씨와 분양진장(汾陽珍藏)‘이라는 네모진 전서 인장이 음각으로 각자돼 있다. 고금의 상면에는 금니로 학, 봉황, 각종 새가 날고 모
정연한 고구려석축 방식, 적색기와 많이 산란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 수차례 조사남쪽 성벽 장관, 한눈에 봐도 고구려식 석축홍천군, 대미산성 발굴조사에 큰 관심 가져[천지일보=백은영․김성규 홍천주재 기자)]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시가지 동편에 위치한 남산 오룡산에 구축된 속칭 대미산성이 주목되는 고구려 산성 유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홍천군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고구려의 ‘벌력천현(伐力川縣)’이라고 되어 있으며 오룡산 자락에 석성의 유구가 구축돼 있다. 또 이와 연결된 삼국시대 추정의 판축 토성이 장성 형태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재준 와당 연구가사신(四神)의 하나로 현무(玄武)가 있다. 거북이와 뱀이 서로 얽혀 잡아먹을 듯 싸우고 있는 기상을 나타낸다. 왜 ‘현무’라고 한 것일까.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玄),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수기(水氣)를 맡은 태음신(太陰神)에 비유하기도 한다.고구려인들은 거북을 매우 신성시했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어머니 유화의 도움으로 도망쳐 남쪽으로 올 때 강에 다리를 놓아 도와준 것이 거북이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도 신성한 군주의 출현을 요구하는 백성의 뜻을 신들에게 전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한국역사문화연구회고문 대자는 고졸한 예서… 당나라 서법 설명당대 유행하던 예서체 협서는 행서로 써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인 역관 김석준(金奭準, 1831~1915)에게 써준 ‘배경민비첩발문(완당전집 권 6)’의 대련 한 면이 낙질로 발견됐다.서울의 한 개인이 소장한 이 유묵은 34㎝x152㎝ 크기로 중국산 홍지인 만년지(紅紙.萬年紙)에 쓰여 진 것이다. 표구도 최근의 것이 아니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가운데 예서 대자로 ‘삭풍추수최야청(朔風秋樹催夜淸)’이라고 쓰고 양 옆으로 행서체로 위에서 아래로
이재준 와당 연구가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이들의 주 신앙이었던 해와 달 신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건축물에 사용했던 벽돌에도 해달 신을 소재로 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벽돌은 지난 40회 소개된 ‘악무전(樂舞塼)’과 크기가 비슷해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짐작된다.왕도였던 지안에 있는 6세기 벽화고분인 오회분 5호묘와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해와 달뿐만 아니라 각기 해 달을 머리 위로 받쳐 든 해신(남)과 달신(여)이 그려져 있다. 이 해신과 달신은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복희, 여와 형상이다.해신은 다리가 세 개
이재준 와당연구가대륙의 왕자 고구려 음악은 어땠을까. 어떤 악기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며 살았을까. 재상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기록된 거문고는 고구려인들의 대표적인 악기로 천 수백여년 격조 높은 음악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거문고의 내력을 알려 주는 기록은 삼국사기 악지(樂志)다.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해 만든 현악기가 거문고’라는 기록이 있다. 재미있게도 안악 제3호분의 후실 벽화에서 보이는 현악기가 거문고로 보이는데 357AD 시기에 이미 거문고가 연주됐음을 알려준다.거문고는 한자로 현금(玄琴)이라고 쓴다
글, 사진 이재준 와당연구가 고대 삼국 가운데 일월신(日月神)을 가장 잘 모신 나라는 고구려다. 고분벽화나 각종 장신구에도 해와 달을 표현했지만 와당 가운데도 일월을 소재로 한 유물이 많다.중국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에 ‘시조 추모왕이 천제의 아들’이라고 각자됐지만 대사자 모두루 묘지에는 보다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시조 추모왕이 원래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하백의 외손이며 일월신의 아들이다(始祖鄒牟聖王 河伯之孫日月之子)’고구려 오회4호분(지린성 지안) 천장에는 해의 신과 달의 신이 그려져 있다. 남자신인 해 속에는 세발 달린
이재준 와당연구가하트(heart) 모양은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의 심장과 비슷해 하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요즘은 젊은 남녀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모바일에서 제일 많이 주고받는 이모티콘이 바로 하트다. 두 손가락을 마주 잡는 하트, 두 팔을 머리에 올리는 하트 등 다양한 제스처가 있다. 엄지와 검지 끝을 교차해 비트는 하트는 일상에서 주고받는 인사로 자리 잡았다.인간은 언제부터 하트를 사용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디오니소스 신의 추종자들은 그를 기리는 축제를 할 때 담쟁이덩굴을 몸에 붙이고 제사를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 와당 가운데는 유독 ‘붉은 새’라고 불리는 주작문(朱雀紋)이 많다. 주작은 주오(朱烏), 적오(赤烏)라고도 불리는데 붉은 새를 총칭하며 그 모습은 봉황과 유사하다.벽화를 비롯해 여러 금속제 유물에도 고구려인들은 이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주작은 땅을 밟고 서 있으며 금방이라도 비상을 준비하는 자세다. 역동적인 고구려인의 기상을 닮고 있다. 일부 주작문 와당 가운데는 하늘을 나는 것도 있으며, 자방을 태양으로 삼아 배에 품은 것도 있다.왜 이들은 주작을 이처럼 사랑했을까. 주작은 오방신의 하나로 남쪽을 가리킨다
이재준 와당 연구가인동(忍冬)무늬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해 온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불가에서는 청정한 연꽃과 서로 접합해 사용되어 왔다. 수막새가 연꽃이면 암막새는 인동당초무늬를 배치하는 것이 상례였다.인동무늬는 꽃 모양이 다이아몬드처럼 뾰족하다. 덩굴무늬는 당초문에 비해 굵게 굽어져 있다. 본래는 그리스에서 시작돼 인도를 거쳐 불교미술품과 함께 중국~한반도에 전래 된 것으로 생각된다.백제 가람이었던 익산 미륵사지에서 나온 인동문양 암막새를 삼국시대로 보는 견해가 있다. 작은 파편에 불과 하지만 덩굴무늬가 아름답게 살
개인이 소장, 각부 조각 정교해백제·신라 양식 건축물에 담겨 주심포건물 2층 난간 모양돈황 석굴 당대 건축물 닮아 이재준 한국역사문화연구회 고문연구 논문 내년 학술지 게재[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지금까지 발견된 옛 금속제 소형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연대로 추정되는 금동제 탑 유물이 발견됐다.본지에 단독으로 공개된 ‘9층 금동대탑’은 서울시내 개인이 수장한 것으로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전 충청북도 문화재 위원)이 2년여 연구를 거쳐 논문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연구 논문은 내년에 발간될 역사문화연구회 학술지에 게재될
이재준 와당연구가인도 신화에서 연꽃은 창조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비유는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문구다. 3세기 말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에는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는 열 가지 인연을 서술하고 있는데, 부처는 연화의 탄생에 비유되고 있다.그러므로 부처나 보살은 대개 연화좌 위에 안치해 있다. 연화좌의 ‘화’자를 ‘빛날 華(화)’자로 기록하는 것은 부처를 광명의 상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는 석등이나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