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의 새라고 한다. 고구려인들의 앰블럼으로 여러 장식이나 유물에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새겨 넣었다. 왜 고구려인들이 삼족오 문양을 즐긴 것일까.

주몽의 개국설화에도 나타나지만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태양의 후손으로 자부했다. 그래서 이 새가 천손(天孫)의식을 갖고 있던 고유의 상징이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사신(四神)은 동, 서, 남, 북을 지키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삼족오가 자리 잡고 있다.

삼족오 와당 ⓒ천지일보 2019.11.27
삼족오 와당 ⓒ천지일보 2019.11.27

북한 평양시 진피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가장 아름다운 삼족오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삼족오 문양 중 가장 완벽하며 신비롭다. 중국에서 사용한 힘이 없고 졸렬한 삼족와는 비교 된다.

금관에 장식 된 삼족오는 화려한 인동문이 하늘로 올라가는 중심에 원형의 무늬를 배치하고 삼족오를 새겨 넣었다. 태양의 위에는 또 한 마리의 아름다운 봉황이 배치 돼 있다. 왕과 왕비의 금슬을 나타낸 것인가. 정연한 문양과 세공은 삼국시대 왕관 중 백미다. 이 관을 쓰고 천하를 호령하였을 고구려 제왕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흥미롭다.

(출처: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11.18
(출처: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11.18

그런데 재미있게도 고구려인들은 기와에도 삼족오를 새겼다. 왕궁의 처마에도 삼족오 와당을 덮어 천손의 자손임을 증거 한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삼족오 와당은 지안 왕궁터에서 수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크고 완벽하다. 경 19.5cm이며 삼족 무늬의 크기 14cm로 와당 내구 안에 문양을 가득 채웠다. 다리의 크기가 4cm 새의 부리도 2cm 나 된다. 두께는 2cm로 모래가 많이 섞이지 않았다. 오래 지하에서 있다 출토 된 탓인지 색깔은 회색에 가깝다.

중국 고대 백과사전격인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세 발 달린 까마귀 설화는 전한(前漢)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 된다. 사기(史記)나 회남자(淮南子)에도 삼족가 등장하고 있다. 금오(金烏) ·준오(踆烏)라고도 한다. 그러나 삼족오는 고구려에 와서 화려하게 비상하게 된 것이다.

일부학자들은 이 새가 천신과 태양을 숭배했던 홍산문화에서 시작되었으며, 치우 왕권시기를 거쳐 고조선에 이어지고 고구려에서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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