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배우 현빈의 군 입대 소식이 화제였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가 군대에서도 가장 ‘빡세다’는 해병대에, 그것도 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동기생 중 가장 많은 나이로 입대했다 해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가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일본 등 해외에서까지 팬들이 모여들어 국경을 넘어선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에게 큰 절 한 번 하고 돌아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콧날이 시큰했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 온 남성들은 특히 그런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절대 공감하는 것이고,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 역시 애틋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혀야 했을 것이다.

그가 입대하고 나서 곧바로 2년 간 공식 연인으로 지내왔던 탤런트 송혜교 측에서 보도 자료를 내고, 현빈과는 이미 결별한 사이라고 세상에 알렸다. 둘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진작 나돌았던 만큼 큰 반향은 없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가의 속성을 감안, 공식 결별 발표 타이밍을 놓고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였다.

아무튼 최고의 인기와 명예를 잠시 내려놓고, 해병대에 자원해 들어간 현빈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해병대 지원자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폭 이후 오히려 늘었다는 소식은 “요즘 젊은 것들은 약해 빠졌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와 반대로 유쾌하지 못한 소식도 있다. MB정부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이 24.1%로 일반 국민의 10배 수준인데다, 정부 부처 고위공직자의 군 면제비율 역시 10.9%로 일반인의 4~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군대는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나 간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가 면제자 비율 1위였고, 국가정보원, 여성가족부, 문화재청이 뒤를 이었고, 병무청마저 15.9%라는 높은 면제율을 보였다. 국회, 대검찰청,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의 면제율도 높았다.

국회의원들은 더하다. 이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를 들먹이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18대 253명의 남성의원 중 41명이 군대를 가지 않아 면제율 16.2%로 일반 국민보다 7배나 높다. 한나라당이 23명으로 가장 많고 민주당 13명, 자유선진당 2명, 민주노동당 1명, 진보신당 1명, 무소속 1명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가정보원장 등 국가 고위 공무원과 자치단체장 중에서도 군대에 갔다 오지 않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아버지의 ‘힘과 빽’ 덕분에 자식들도 편하다. MB정부 초대 내각 장관급 이상 22명의 2세들 가운데 병역이행 대상자 24명 중 9명이 과체중과 질병, 미국국적, 유학 등의 이유로 군 면제를 받거나 입영연기 중이었으며, 18대 국회의원의 아들과 손자, 직계 비속의 경우 21명(10.3%)이 면제받았다. 일반인들의 면제율은 고작 2.4%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방송 프로에서 7대 재벌가의 병역이행 여부를 확인했더니, 병역 면제가 30%가 넘었다. 삼성가에선 삼성전자의 이재용 사장을 비롯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CJ 이재현 회장 등 8명이 면제를 받아 73%로 가장 높았다. SK, 한진, 롯데, 현대, GS, LG 그룹 등의 병역 면제율도 만만찮았다.

지도층이라는 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들로부터 뼛속 깊이 새겨져 내려온 일종의 유전자 같은 것이다. 군역이라는 것은 상것들이 해야 할 짓이지, 사대부가 나서는 게 아니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피난을 가고 가렴주구와 학정에 시달린 천민들은 오히려 왜군에 가세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대통령 아들, 국무총리 아들, 국회의원 아들, 재벌가의 아들들이 앞 다퉈 군역을 완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도 현빈처럼, 엣지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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