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배고픈 여우가 있었다. 마침 시냇가에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여우는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뼈를 발라낼 틈도 없이 통째 물고기를 집어 삼켰다. 물고기를 꿀꺽 삼키는 순간, 목구멍이 찌릿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가시가 걸린 것이다.

여우는 캑캑거리며 바위에 올라 뛰어내려도 보고 물을 벌컥 벌컥 마셔보기도 했지만 가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무튼 그렇게 여우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마침 황새 한 마리가 곁을 지나고 있었다. 옳다구나, 꾀 많은 여우가 황새에게 말했다. “황새님, 그 우아하고 멋진 부리로 제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좀 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새는 가자미눈을 하고선, “제가 무얼 믿고 여우님의 아가리에 제 머리를 들이 대나요?” 하고 물었다. 여우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황새님 말고는 제 목에 가시를 빼 줄 동물이 이 세상에는 없답니다”하고 말했다.

황새는 여우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져 쩍 벌린 여우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선 가시를 뽑아냈다. 황새는 선행을 베풀었다는 자부심으로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여우는 이제 살 것 같다며 표정이 환해졌다. 여우는 킁킁,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선 돌아서 제 갈 길을 가려했다. 황새는 황당했다. 화가 난 황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여우 새끼야, 목구멍에 가시를 빼 주었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아니야!”

여우가 목에 힘을 콱 주고 말했다. “야 이 황새 새대가리야, 네 머리가 통째로 내 입 속에 들어왔을 때 내가 한 입에 삼켜버릴 수도 있었어. 안 먹고 봐 주었더니, 누가 누구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솝 우화에는 여우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데 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대개 꾀가 많고 간사한 데다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쯤이야 당연하게 생각한다.

갑자기 이 이솝우화의 여우가 생각난 것은 이웃 나라의 몰염치 때문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끔찍한 자연 재해를 당한 이웃을, 우리들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했다. 하는 짓이 예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켜켜이 쌓아 온 정 때문도 아니었다.

일본 사람들은 통합하고 조화하는 화(和)를 중요하게 여기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핵심 덕목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조화를 깨뜨리는 짓을 잘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짓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번에 지진 대참사를 당하고서도 일본 사람들은 메이와쿠(迷惑),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일사분란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역시 일본이구나, 일본의 저력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니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 저희들끼리는 화(和)를 중요시하고 메이와쿠(迷惑) 정신을 강조하고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웃에 대한 화(和)와 메이와쿠 정신은 눈곱만큼도 없다.

역사적으로 이웃들에게 무수히 많은 폐를 끼치고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화(和)를 깨뜨린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미안합니다, 하고 진심으로 사과한 적 없고 우리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모든 이웃들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여인이 최근 자서전에서 어느 유명한 분을 두고선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했다. 이 여인의 입을 빌자면, 일본이야말로 ‘겉으로만 고상할 뿐(사실 겉으로도 고상하지 않다) 도덕관념은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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