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솜털 보송한 시절, 프랑스 대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왕비가 글쎄 배고파 울부짖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는구나,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순간, 어린 내 가슴에 뜨거운 김이 확 올랐다. 그 전에는 좀체 느껴보지 못한 희한한 감정이었다. 속이 마구 울렁거리는 것도 같았고 약간 슬픈 것도 같았고 로봇 태권 브이 생각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자가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을 모함한 원균이나 콩쥐를 못살게 구는 팥쥐와 그녀의 엄마, 욕심 많은 놀부, 춘향이를 괴롭히는 변 사또와 같은 계열이거나 더 급수가 높은 악인이라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한 인간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닐 수도 있었다. 독일 작가 헬게 헤세가 쓴 <천 마디를 이긴 한마디>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앙투아네트의 냉소적이고 채신머리없고 냉혹한 인간성에 대한 갖가지 소문들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중에는 이런 소문도 있었다.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산책을 하던 왕비가 백성들이 모두 생기가 없고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왜 저러냐고 물었다. “마마, 그건 저들이 먹을 빵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신하가 대답했다.

실제로 1789년에는 기근이 들어 빵 값이 폭등하면서 곳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앙투아네트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

이 책에 따르면 이 말은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각광을 받았던 루소가 지은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루소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공주가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그런 말을 던졌다고 썼다. 루이 14세의 왕비였던 마리 테레즈(1638~1683)가 이 말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백록>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766~1770년 사이에 쓰여 졌고, 이때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가로 시집오기 전 어린 아이로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그런 냉소적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앙투아네트 밖에 없다고 믿었고, 그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책자와 연극이 줄줄이 이어졌다.

1791년 6월 루이 16세 가족은 도주를 감행했지만 바렌에서 발각되어 다시 파리로 송환됐다. 앙투아네트는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콩시에르주리 감옥에 수감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국 교수형으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몹시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한 장본인이 과연 누구였는가가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프랑스 민중들은 자신들을 비탄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지배층의 역겨운 속내의 상징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선 요즘 전세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집 없는 사람들이 못살겠다며 아우성이다. 언론에선 신이 났다. 월드컵 중계하듯 거품을 물어가며 전세난 풍경을 보도하고 있다. 전셋값이 너무 올랐으니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다고 부추기고, 마침내 주택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호들갑이다. 정말 속 보이는 짓이다. 정부에선 돈을 마구 빌려 줄 터이니 걱정 말고 전세를 살라 한다. 전세 싫으면 집을 사라는 투다.

물가는 또 어떤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으니 금리 조정으로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 나왔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다 이 지경까지 왔다. 부동산 부자인 그들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그들만의 꼼수가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집트에서도 빵 때문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큰 물결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아주 중요한 어떤 것에서 시작된다. 과연 우리들 중 누가 누구에게 “빵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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