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천국이나 사후 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라고 말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는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 세계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니 “뻔한 소리를 왜 했지?” 싶으면서도, 정말 천국이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섭섭해 할 사람들 또한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유수 같으며 또한 무상하다는 마당에, 천국이나 사후 세계마저 없다고 하면 우리 삶이라는 게 더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죽어 천국에 가겠다며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호킹이라는 사람이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 대는가?”라며 못마땅해 할 것이고,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거의가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작년에 <뉴스위크>의 종교전문 기자인 리사 밀러가 <천국: 사후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 매혹>이란 책을 펴냈는데, 책의 핵심은 천국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짜라는 것이다. 빛으로 가득 찬 천국이라는 개념은 골드만 삭스보다 약간 오래 된, 아주 최근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인의 81%, 영국인의 51%가 천국을 믿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에 비해 10%나 증가한 것이다. 과학 기술과 문명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데,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
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처한 환경에 따라 잠재적인 열망을 반영하는 바람에 천국의 형태가 계속 변해 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부족하거나 갖지 못하는 것을 천국에선 마음껏 누리거나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성경과 코란을 쓴 사람들은 주로 사막에서 살았고 그래서 늘 갈증이 심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천국에는 언제나 샘물이 펑펑 솟아오르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과 호수가 있다고 믿었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은 천국이란 “처음이 나중 되고, 나중이 처음 되는 곳”이라 믿었다고 한다. 천국에선 현실과 정반대로 백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산다는 것이다. 성에 굶주린 사람들은 천국에선 수많은 여성들과 성교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이처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꿈들이 천국에선 가능할 것이라 믿었고, 그러한 믿음으로 인해 고달픈 현실을 견뎌냈던 것이다. 천국의 실제 존재 여부를 떠나 천국에 대한 믿음 자체가 고단한 삶을 이겨내게 했다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면 천국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참 나쁜 인간들도 많았다. 베드로의 리스트가 있다며 면죄부를 팔아먹은 인간들이 대표적이고, 요즘 세상에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며 겁을 주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죽으면 끝인데 천국 아니라 더 좋은 곳이 있다 하더라도, 목숨 붙어 살아있을 때가 좋다는 말이다. 백번 옳은 소리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빨리 죽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사후세계나 천국 이야기 할 것 없이, 다만 우리들이 발붙이고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내 아이들과 후손들이 대대손손 천국이 따로 없다며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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