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미안하지만, 캄보디아 이야기 한 번만 더 하자. 캄보디아에 들어가려면 그 쪽 공항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시엠립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 업무를 한다. 관광 목적이면 비자 발급료가 20달러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21 달러를 내야만 했다. 비자 발급료 20달러 외에 추가로 지불해야만 하는 1달러는, 알고 보니 일종의 급행료였다. 1달러를 주면 애 먹이지 않고 빨리 비자를 내 준다는 것이었다.

1달러 그까짓 것,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분 나쁘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급행료 1달러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사람들만 내는 것이다. 말이 급행료지, 사실 한국 사람들이 한 비행기로 단체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급행’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급행료를 낸다.

입국 수속 직원에게 물었다. 1달러는 왜 내야 하느냐고. 그가 말했다. “미드 나이트(Midnight).” 아하, 비행기가 한밤중에 도착했고 직원들이 그 때문에 고생하니 1달러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현지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으니 이러했다. 앙코르와트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 중에서 공항에서 지체되는 시간이 싫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현지 가이드들 중 약삭빠른 누군가가 관광객들로부터 1달러씩을 받아 “빨리 처리해 달라”며 뒷돈을 주기 시작했고, 이 눈 먼 돈에 맛을 들인 현지 공항 직원들이 한국인에게는 무조건 급행료 1달러씩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한번은 한국인 관광객 열 댓 명이 단체로 입국하면서 1달러를 내지 않고 버텨보기로 했단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공항 직원은 갖은 핑계를 대며 그들을 뱅뱅이 돌렸고 무려 3시간 뒤에서야 비자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한국인들은 변함없이 급행료를 내고 있다. 그것이 부당한 줄 알면서도, 그런가보다 하고 생돈을 빼앗기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나서, “1달러 내지 맙시다!” 하는 순간 그가 속한 무리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1달러에 벌벌 떠는 좁쌀 인간 취급을 받거나 자신 때문에 공연히 수속이 늦어진다며 원망을 듣게 되는 것이다.

1달러의 급행료를 내고서도 전혀 ‘급행’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이 최근에는 초급행료가 생겨났다고 한다. 뒷돈을 따로 챙겨 주면, 입국 수속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지 않고서도 공항 경찰의 안내에 따라 옆으로 빠져 나가면 기다리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 이 역시 한국인들이 주 고객이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현지인들 중에는 부자들이 많다고 했다. 일반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했다. 그 돈이 어디서 났을까. 앙코르 와트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한 해 30만 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1달러씩만 내도 30만 달러가 넘는다.

그렇게 의미도 보람도 없이 엉뚱하게 돈이 새는 것은, 뒷돈을 주고서라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편하게 목적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차라리 1달러씩 모금을 해서 캄보디아의 어린이를 돕는다든지 유적지를 복원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한다면 보람이라도 있을 것이다. 부당하게 나간 돈은 결국 부당하게 쓰이고 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것들, 이를테면 돈이면 다 된다는 등의, 공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남의 나라 가서 돈을 내고서 바보 소리를 듣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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