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또 때렸다는 소식이다. 여교사가 남학생 제자의 뺨을 마구 때리고 급소를 걷어차는가 하면, 대학교에선 선배라는 자들이 후배들을 집합시켜 놓고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실을 들이대며 폭력을 휘둘렀다.

충격적이었다. 여교사가 아이의 뺨을 집요하게 두들겨 패고 제 분에 못 이겨 발길질하는 모습도 그러했지만,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자들이 조직폭력배들처럼 각목을 휘둘러 후배들의 엉덩이를 내려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로 훈계를 해대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용케도 문구멍으로 카메라를 들이대 대학생이라는 자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끔찍한 장면을 잡아내고, 마침 학생이 손전화기로 교사의 구타 모습을 포착한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해자들 역시 동영상이 있었기에 꼼짝없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뒤늦게 반성을 한다며 세상에 용서를 구하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만약 동영상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그런 일이 없었다며 발뺌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자를 때린 여교사도 피해 학생 학부모에게는 ‘뺨 한 대 때렸다’고 했을 뿐이다.

안타깝다. 왜 학교에서 교사나 선배가 제자나 후배들을 두들겨 패는 것일까. 교사 혹은 선배라는 사람들은 제자나 후배들을 두들겨 패도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교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상하 서열로 매겨지는 것이 폭력의 빌미가 된다. 이를테면 교사는 학생들보다 절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서고, 선배 역시 후배들보다 지체 높은 것으로 인식하거나 인정해 온 탓에, 서열상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심지어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서열이 엄격한 계급사회였고 양반이 상민에게 함부로 매질을 하거나 벌을 주는 이른바 사형(私刑)이 예사로 이뤄졌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모든 계급을 고루 아울러 평등하게 적용되고 집행되지는 않았다. 21세기 요즘 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조선시대라면 말 할 것도 없다.

여기에다, 학교라는 곳이 일제시대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군사문화가 적용됐다. 학생들 조직도 군대식으로 이뤄지고 조회다 규율부다 하는 것들도 다 군사 문화의 잔재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넓은 터를 운동장이라고도 했지만 연병장이라고도 불렀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급자에 대한 구타가 일상화되고 자연스러운 곳이 군대이고, 학교에서도 마치 군대처럼 상급자가 하급자를 두들겨 패도되는 것으로 간주돼 온 것이다. 후배들을 반듯하게 줄지어 집합시킨 다음 되지도 않은 훈시를 늘어놓으며 머리를 땅에 박으라고 하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것은 다 군대에서 하던 대로다. 선배가 군대의 상급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학교 학생들이, 누가 부르면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하고 그것을 관등성명이라 하고, “~요”가 아닌 “~습니다”라고 끝말을 맺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그것은 군대에서 하는 짓이다.

제발 이제 그만하자. 그만 때리자. 사랑의 매가 과연 있기는 한가. 만약 제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사랑의 매라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 자식에게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 몽둥이로 후려치는 것이라면, 제 동생한테도 매일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다 거짓말이다. 사랑의 매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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