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서울대 음대 여교수의 제자 폭행 논란이 한창이다. 사건 당사자인 교수는 폭행 논란에 대해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 때문이라며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진상조사가 끝나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도제식 수업이란 게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도제식(徒弟式) 수업이라 하면 중세 유럽의 수공업자 등이 특별한 기술이나 비법을 일대일 교육을 통해 전수해 주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수업일 것이다. 폭행 논란에 휩싸인 여교수의 항변에서처럼 우리 예술계 대학들에서도 중세 유럽처럼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도제식 수업은 사실 스승과 제자가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밀도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스승의 눈 밖에 나거나 하면 애써 쌓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험성도 있다.

대한민국 예술계는 특히 아주 강력한 파벌 혹은 계파 같은 것이 존재한다. 어느 학교 어느 선생 라인이냐에 따라 진로가 크게 결정된다. 소위 명문이라는 대학에 막강한 권한과 명성을 가진 선생 밑에서 배운 이는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십중팔구 가시밭길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전에 어느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자동차로 지도교수를 출근시켜주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이라고 해야 기껏 스물 너덧 살 먹었을 때인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도교수의 출근길 발이 되어 주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 정도는 별 것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 더 한 고생도 많다고 했다. 교수의 개인 작업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수가 전시회를 하거나 무슨 행사를 하게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만 한다고 했다. 심지어 교수의 크고 작은 집안일에도 두 팔 걷고 나서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이 학생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무임금 집사나 식모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녀도 중견의 작가로 열심히 작업하며 보람찬 삶을 살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때 맺어진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평생 따라다녀 지금도 누구 선생 라인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교수가 학생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가 되다 보니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도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도 교수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경우라면 도제식 수업이 오히려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끔찍한 상황을 견뎌야만 할 것이다.

중간에 지도교수를 바꾸면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교수의 부당한 언행과 지도방식에 맞서지 못하고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학생이라면 그들에게 대학이란 예술적 재능을 키우고 인격을 고양하는 빛나는 배움의 전당이 아니라, 모멸과 수치심을 견디고 인내심이나 시험케 하는 반교육적 공간이 되는 셈이다.

폭행 의혹 논란에 휘말린 음대 교수는 TV 예능 프로에 출연하느라 정해진 수업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물론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학생 지도와 수업, 연구 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할 교수가 TV 예능 프로에 출연하느라 수업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아무튼 의혹이 제기된 만큼 조사를 철저히 해 진실을 가려야 할 것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 예능 교육에 제도적 문제점이 있는지 잘 살피고 따져 그야말로 ‘예술 같은’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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