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삼국 중 가장 문화가 발전했던 백제의 멸망은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의자왕은 신라군이 탄현을 넘고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이 기벌포에 상륙할 때까지 왕도 사비가 무너지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부여는 그리 높지 않은 부소산 남록에 형성된 도시다. 사방을 백마강이 에워싸고 있지만 동쪽 능사가 있는 동쪽이 취약하다. 이곳에 긴 나성을 쌓았지만 신라군 5만 대군을 막기에는 너무 취약했다.그래서 충신 성충은 동쪽 탄현을 지칭하며 백제군이 절대 넘지 못하도록 간언한다. 그러나 의자왕은 공연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 역사에서 생전과 사후에 ‘성왕(聖王)’이라고 불리는 분은 백제 성왕뿐이다. 성왕은 왜 생전에도 백성들로 하여금 성왕이라고 불렸을까. 성왕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줄인 말로 불교 흥업의 제왕에게 붙여주는 최고의 호칭이다.전륜성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야 왕조시대 아쇼카왕(Asoka)을 지칭한다. 비폭력으로 국토를 통일하고 가장 강력한 불교정토를 이룩한 영웅이다.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전륜성왕이 되고자 했던 왕이 많다. 신라진흥왕도 두 아들의 이름까지 전륜성왕의 아들 이름을 따랐다. 황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6세기 백제의 부흥을 꾀하기 위해 부여로 천도한 성왕(聖王)은 문화국왕이었다. 백제라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성왕은 북으로는 만주일대의 북부여 고토를 수복하고, 바다 건너 왜국을 아우르는 대 왕국을 꿈꿨다. 지금의 공주 웅진성에서 부여로 이도한 성왕은 새 수도 건설에 힘을 쏟았다. 왕궁과 인공 호수정원인 궁남지를 연결하는 대로(주작대로라고 함)를 만들고 그 통로에 정림사라는 큰 절을 지었다. 도시를 바둑판처럼 구획해 한나라 장안의 도시건설 방법을 수용했다. 이 같은 왕도건설과 경영은 정신적 지주였던 양(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죽음과 공포의 도시가 된 카블. 전쟁으로 패망한 나라가 겪는 참담한 비극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 도심을 장악한 탈레반 군사들의 만행에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비겁한 대통령은 국외로 탈출했다. 미국 등 우방국에 동조한 시민들의 액소더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카블을 탈출하고 있는 사연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탈레반이 복장 규제 과정에서 몽둥이질을 퍼붓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최근 조사를 통해 탈레반이 지난달 초 가즈니주에서 하자라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백제는 고대 삼국 가운데 어떤 나라였을까.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의 사론을 보면 결국은 망하게끔 돼 있는 나라라고 정의한다.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안이한 안보관에다 황음이 패망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백제본기 의자왕조의 마지막 기사는 거짓 역사, 즉 위사(僞史)라는 지적이 많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릴 만큼 인자하고 효성이 극진한 인물이었다. 신라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망한 역사로 꾸민 것이다.5세기 말엽 고구려 장수왕이 침공해 한성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 백제는 가장 강성했다. 한강 위례성에 왕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6세기 중반 백제 왕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성왕. 일본 긴메이(欽明) 천왕에게 불교를 전래하면서 특별히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관음에 대해 당부한 말이 일본서기에 나온다. 조서를 보내 보주관음에 대해 잊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이것이 일본에 전래된 첫 불교 유물이 아니었을까. 성왕은 왜 ‘보주관음’을 강조했던 것일까.-(전략)…이 법은 무상의 보리(菩提)에 도달 할 수 있다.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들이 여의주를 품고 필요에 따라 모두 먹은 마음대로 되는 것과 같이 이 묘법의 보물도 그렇다. 또 멀리 천축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대 사람들은 붉은색을 벽사(僻邪)용으로 썼다. 무덤을 만들면 시신 주위에 붉은 흙을 뿌렸다. 액을 막기 위한 부적도 주사(朱砂)로 그린다. 동짓날 붉은색 팥죽을 쑤어 먹는 풍속도 귀신이 붉은색을 싫어한다는 속신에서 나온 것이다. 붉은색은 고구려 유물의 특징이다. 와전(瓦塼)을 보면 와당은 대개 붉은색을 띠고 있다. 백제 와당은 유백색이거나 회색이며 신라와당도 백제 것을 닮았다. 통일신라시대 와당들은 고열로 단단하게 구어 청회색을 띤다. 그러나 고구려는 소성도(燒成度)를 약하게 해 붉은색을 냈다. 그리고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고대 신라는 당(唐)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으나 위기는 금방 닥쳐왔다. 당나라가 신라 내정까지 간섭, 통치하겠다는 야욕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제왕자인 부여 융(隆)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해 은근히 신라와 반목하게 한다. 신라인들은 분노했다. 오랜 기간 전쟁을 지휘했던 군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 선봉에 장군 김유신(金庾信)이 있었다. 이들은 명목상으로는 당을 사대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당나라 군사들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한반도는 다시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 빠진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연꽃은 청정함을 상징한다. 유학자들도 군자의 풍모라고 하여 애완했으며 시의 소재로 삼았다. 부처나 관음, 미륵은 빠짐없이 연화좌에 서거나 앉는다. 보살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연꽃 줄기를 잡고 있으면 자비의 상징인 보현(普賢)이다.왕궁이나 사찰 건축물의 막새기와(와당)는 연꽃이 제일 많은 소재로 이용됐다. 화려하게 보이려는 뜻도 있지만 왕이나 부처가 상주하는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불교전래 이전의 막새기와에는 볼품이 없는 초문(草紋)을 새겼다. 그것이 4세기 불교 전래 이후 급속도
이재준 역사연구가ㆍ칼럼니스트 전쟁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며 사랑과 행복을 짓밟는다. 어느 철학가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파괴와 살육의 단말마적 현장이라고 정의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은 필요하다는 역설도 있으나 전쟁 중인 나라와 국민들의 비극적인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다.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25시’는 2차 대전당시 강대국 틈에서 희생당한 약소국 농부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명배우 고(故) 안소니 퀸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의 마지막 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귀가한 주인공 모리츠는 사랑하는 아
이재준 역사연구가ㆍ칼럼니스트 과거의 한국은 효자국이었다. ‘효는 만행의 근본’이라는 유가의 가르침이 대대로 실천되었으며 지식인은 효의 실천을 생명처럼 여겼다. 임진전쟁 당시 유성룡 휘하에 있던 벽오(碧梧) 이시발은 난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달려온다. 임금을 모시는 일보다 모친의 안위가 더 걱정이 됐다. 벽오는 노모를 두타산 깊은 곳에 안전하게 모시고는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임금을 근위한다. 신하된 도리의 충(忠)보다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효(孝)’논리가 우선이었음을 알려준다.웅진(熊津. 지금의 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백강(白江)은 고대 사서에 나오는 강 이름으로 금강 하류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는 백강구(白江口), 일본서기에는 백촌강(白村江)이라고 기록된다. ‘백강’이 왜 외국 사서에까지 등장하는 것일까.660AD 백제는 18만 나·당연합군에 의해 수도 부여가 함락됨으로써 멸망했다. 의자왕은 황망히 웅진으로 피난 갔으나 얼마 되지 않아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궁전에서 신라왕 김춘추, 태자 법민, 그리고 김유신 장군, 당장 소정방 아래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바치는 항복의식을 거행한다. 이 굴욕의 현장을 지켜본 많
석호익 통일IT포럼 회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세계 전자책시장은 침체를 겪고 있는 종이책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자책(e-book)이란 문자나 화상 같은 정보를 전자매체에 수록해 종이책처럼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파일형태로 만든 디지털 도서를 말한다. 전자책은 IT에 익숙해진 현대의 독자로서는 훨씬 재미있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비교적 가격도 저렴하고 즉시 구매 가능하며, 종이책을 갖고 다니는 불편함을 덜어 PC나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독서가 가능하고 음원이나 동영상 등이 멀티미디어로 혼합돼 있고
박종선 (사)한국기업윤리경영 연구원장 웅진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과정에서 그룹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논란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웅진그룹 경영진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조기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신청에 앞서 계열사 차입금을 만기 전 상환하고, 대주주나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하는 등 의혹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시행된 현행 통합도산법은 과거와의 단절을 강조한 구법과 달리 법정관리를 신청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 기존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기존 경영진이 경영
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융합연구부 공학박사 한국로봇산업협회의 2011년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로봇 시장은 2009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후 2010년 약 1.8조원으로 약 75%의 연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해 세계 로봇 시장에서의 서비스 로봇 비중인 39%에 크게 뒤떨어지는 현실이다.국제로봇연맹(IFR)의 2011년 통계에 따른 세계 시장 관점에서 볼 때에도, 2010년 기준 전체 로봇 시장은 94억 달러에 그쳤고
최상현 주필 권력은 사람과 조직과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권력의 본질은 강제력이며 군림이다. 이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이 사회적 강자(强者)로서 사회적 서열의 우위를 차지한다. 사람의 천성엔 사회적인 강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그 욕망은 등불이 불나방을 꾀듯 사람을 죽자 사자 권력의 주위로 모여들게 하는 강한 유인력이 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본령은 국민에 대한 봉사다. 하지만 그 같은 권력의 표면적인 미명(美名)이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 주위에 모여들게 하고 권력을 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서기 392년 고구려 고국양왕(18대)이 왕위에 오른 8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담덕(談德)이 뒤를 이었다. 그가 바로 광개토대왕이었다. 18세에 왕위에 오른 그는 연호를 영락(永樂)으로 정하고 중국 오호 십육국의 하나인 후연(後燕)을 치고 그때부터 우리의 땅 옛 고조선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여 되돌려 놓았다. 410년 다시 동부여를 정벌하자 미구루 등 주변의 여러 소국들이 스스로 신하를 칭하며 항복해 왔다. 광개토대왕은 생애 21년 동안 64곳의 성과 1400여 마을을 점령하는 전과를 기록했다. 그가 죽고 맏아들 장수왕이
백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나라를 잃어 버렸다.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충남 서천)을 근거지로 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할 때 복신은 주류성에 있었다. 주류성은 사비성과 백강 중간의 성이었다.당나라는 백제왕이 있는 사비성을 함락시키는 것에 주력을 했기 때문에 주류성의 백제군은 무사했다. 복신은 전쟁이 불리해질 것을 알고 일본에 구원병을 요청해 놓았다. 일본에는 백제왕자 부여풍(풍장)이 머물고 있었다.부여풍은 의자왕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