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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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공포의 도시가 된 카블. 전쟁으로 패망한 나라가 겪는 참담한 비극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 도심을 장악한 탈레반 군사들의 만행에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

비겁한 대통령은 국외로 탈출했다. 미국 등 우방국에 동조한 시민들의 액소더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처럼 카블을 탈출하고 있는 사연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탈레반이 복장 규제 과정에서 몽둥이질을 퍼붓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최근 조사를 통해 탈레반이 지난달 초 가즈니주에서 하자라족 민간인 9명을 살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트위터에는 탈레반의 잔혹행위를 담은 영상이 잇달아 올라왔다. 탈레반이 소총과 휴대용 로켓포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무릎 꿇린 뒤 위협하는 영상도 있었다.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하는 기독교인 여성의 머리를 총으로 쏴 살해하는 영상도 올라왔다.

IS-K 무장단체는 카블 공항에서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해 미군 등 시민 170명이 희생됐다. 바이든이 복수를 다짐하고 있어 중동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죄 없는 민초들 아닌가. 13세기(1258AD)지금의 이락크 바그다드(압바스 칼리프 조의 수도)를 침공한 몽골군은 이십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을 도륙했다. 이들이 항복하지 않고 최후 한 사람까지 싸울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화를 입었다.

고대 신라의 통일전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660AD 백제 수도 사비의 최후 날은 매우 비극적이었던 것 같다. 의자왕은 웅진(공주)으로 피신하고 사비성에 남은 군과 주민들은 항전했다. 기록을 종합해 보면 왕궁은 불탔으며 2만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상정 된다. 당나라 포로가 된 숫자는 1만여명이었다.

왕도 사비성에는 거리마다 시체가 가득했다. 나당 연합군이 물러간 뒤에도 이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사람이 없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왕도를 빠져나간 많은 귀족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주했다. 일부 잔군은 산간에 숨어 항전을 계속했다. 3년간 처절한 복국운동도 있었지만 다시 백제를 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신라 말 한반도가 다시 후삼국으로 나뉘자 천년 사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변방을 지켜야 할 성주들은 후백제 견훤이나 고려 왕건에게 귀부했다.

경애왕 시기 후백제군이 수 백리를 행군해 서라벌을 침공해도 이를 막을 장수가 없었다. 안압지에서 평화롭게 놀던 왕과 비빈들은 후백제군의 내습을 받고 유린당했다. 경애왕이 보는 앞에서 왕비가 난행을 당했다. 그리고 견훤은 경애왕에게 칼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삼국을 통일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빛나는 문화를 자랑했던 강대했던 신라의 최후였다.

고려, 조선시기 미증유의 외침으로 인한 민초들의 피해는 또 어떤가. 임진전쟁의 피해는 수 백만명에 달하고 양 호란당시 청나라에 끌려간 포로들은 50만명이 넘는다는 기록이 있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70년이 흘렀어도 아물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면 고스란히 희생되는 것은 죄 없는 국민들이다. 지금 정치권은 온통 차기 집권 레이스에만 정신이 빠져 있다. 집권여당은 황당하게도 언론을 옥죄는 법을 만들어 밀어붙이고 있다.

카블 사태를 보면서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민들은 철통같은 안보태세를 점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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