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ㆍ칼럼니스트
 

전쟁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며 사랑과 행복을 짓밟는다. 어느 철학가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파괴와 살육의 단말마적 현장이라고 정의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은 필요하다는 역설도 있으나 전쟁 중인 나라와 국민들의 비극적인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25시’는 2차 대전당시 강대국 틈에서 희생당한 약소국 농부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명배우 고(故) 안소니 퀸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의 마지막 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귀가한 주인공 모리츠는 사랑하는 아내가 점령군에게 강간당하여 낳은 아이를 안고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는 2000년 전쟁의 역사로 점철됐다. 지정학적으로 대륙에 웅거하던 이민족의 침공을 자주 받아왔고 바다 건너 일본도 한반도를 자주 침략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도 오랜 기간을 전쟁했다. 크고 작은 전쟁은 신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종식되었다. 왜 신라는 삼국을 통일의 대전역을 일으켰던 것인가.

신라의 대 백제 공벌의 동기는 무열왕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있었던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합천)전투였다. 백제군은 성을 기습 포위하고 백기를 들고 나온 김춘추의 사위와 딸의 목을 효수하여 신라로 보낸 것이다. 선혈이 낭자한 딸과 사위의 목을 받아 쥔 김춘추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했다고 한다. 김춘추는 그 이후 죽음을 무릅쓴 삼한 통합 대당외교전을 펼치게 된다.

1400년 전 나당연합군 13만명이 백제 수도 사비와 웅진을 공격하여 의자왕의 항복을 받은 것은 지금의 절기인 음력 7월 12일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백제 수도 사비성의 최후는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궁성은 물론 도심의 큰 가람과 귀족들의 대저택들은 불타고 유린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부여는 폐허가 됐다. 전쟁 중에 희생당한 수많은 전사들의 해골들이 아무데서나 굴러다니고 비바람을 맞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곳을 지나던 문무왕은 해골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했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에 들어서 원나라는 바다 건너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그때 고려에 선박과 수만명의 군사들을 요청했다. 고려 정부는 선박의 징발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으나 군사의 징발은 곤혹스러웠다.

전쟁에 나가면 고려 젊은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어서 나라 안에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1차 일본 정벌 당시 원-고려연합군은 일기도에서 태풍을 만나 10만명이 넘는 병력의 대부분이 바다에 익사하는 대참사를 입는다. 그때 고려 밀직사사 연담(蓮潭) 곽예는 감도해(感渡海)라는 시를 지어 그 참상에 오열했다.

‘(전략) 슬프다 강남의 십만 병사들/ 절대고도에서 맨몸으로 싸웠다오/ 이제 죽은 해골들 원한이 산만큼 높아/ 오랜 밤 영혼 하늘아래 울부짖네(하략)’

우리는 지난 65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한 민족이다. 최근 북한은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고 하면서 6.25당시 비극적인 사진을 몇 점 공개했다. 전쟁을 도발한 당사자로서는 아이러니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앞에 울부짖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금 세계는 시리아의 난민 대열에서 배를 타고 피난하던 3세 소년의 주검을 애도하고 있다. 유럽 각국이 뒤늦게 시리아 난민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리아 민족의 참상을 보면서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적 노력이 얼마나 긴요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의 성공적인 종교대통합운동과 평화협정운동에 세계 각국의 참여와 협력이 절실하다. 필리핀 민다나오의 기적처럼 내전과 IS의 등장으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시리아 국민들의 비극을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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