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곽거병의 부대는 언제나 정예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참 부장의 부대라 하더라도 병졸, 군마, 병기 등이 곽거병이 거느린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곽거병은 그 강력한 기병과 함께 언제나 본대보다 앞장서서 용감하게 적 깊숙이 쳐들어갔다. 게다가 그의 부대는 한 번도 곤경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고참 부장들은 언제나 불운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로 인하여 곽거병에 대한 무제의 신임은 날로 두터워지더니 마침내 대장군 위청을 능가할 기세가 되었다. 흉노의 혼야 왕은 서부 지역에서 번번이 한나라 군대에 패
지난 25일 전투경찰 마지막 기수인 3211기 183명의 합동 전역식이 경찰청 대강당에서 있었다. 1971년 9월에 창설돼 40여 년간 국내 치안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제도가 마침표를 찍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날까지 전투경찰(전경)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모두 32만 9266명에 달한다. 전경은 후방지역의 해안 경계 등이 주 임무였는데,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對)간첩업무에서 시국사건의 방어 업무까지로 확대되는 등 전경제도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전경제도는 우리 안보와 관련하여 태동됐으며, 그 계기는 바로 김신조 사건이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제갈량(諸葛亮)의 뒤를 이어 촉한의 병권을 잡은 강유는 천수군(天水郡) 기현(冀縣) 출신으로 자를 백약(伯約)이라 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를 모셨던 그는 후한 말 최고의 경학자였던 정현(鄭玄)의 학문을 좋아했다. AD 228년, 기산(祁山)으로 진출해 귀순했다. 당시 강유의 나이는 제갈량이 유비를 만났을 때와 같은 27세였다. 위군은 강유의 어머니를 인질로 확보했다. 제갈량이 죽은 후 군부의 요직을 차지한 강유는 사실상 촉한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강유는 제갈량의 전략을 답습하여 적극적인 대위군사
현 정부의 안보 무능이 정권 마지막까지도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12일은 해체된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버젓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었다. 북한은 대선으로 국가 전체가 들떠 있는 대한민국을 조롱이라도 하듯 보란 듯이 뒤통수를 때렸다. 안보분야의 허를 찌른 것이다. 현 정부의 취약한 대북 정보력과 안이한 대응 태세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는 발사 하루 전날까지도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발사대에서 분리됐다고 밝히는 등 안이한 자세로 일관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를 발사하기 이틀 전인 10일, 합동참모본부
북한군 병사가 지난 10월 2일 밤 12분 만에 우리 군의 3중 철책을 넘고, 내륙 1소초(GOP 내무반)에서 귀순하기 전 동해선 경비대 건물까지 들러 문을 두드렸던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CCTV를 통해 북한군 병사를 확인했다(8일)” “CCTV가 아니라 북한군 병사가 GOP 내무반을 두드린 뒤 신병을 확보했다(10일)” 등 우리 군의 말 바꾸기에 이어 최전방 경계 허점이 추가로 밝혀진 것이다.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증언을 토대로 본다면 해당 병사가 지난 9월 29일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0㎞ 북쪽에 위치한 자신의 부대
지난 2일 발생한 북한군 병사 귀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 병사가 귀순할 당시 우리 군의 최전방 경계가 너무나 허술하게 뚫려있었고, 심지어 군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보고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일까지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군 병사는 2일 밤 11시 19분쯤 22사단 GOP 생활관의 문을 두드렸다. 이를 알아차린 우리 측 장병 3명이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자 “북에서 왔다. 귀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생활관 CCTV로 이 병사를 발견했다는 당초의 군 발표와는 완전히 다르다. 군의 거짓
윤용호 소설가 결국 나의 주선으로 A는 그 여자를 만나보게 되었다. 이후 한 달쯤 지난 뒤였다. A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왜, 일이 잘 안 돼?” 이미 그녀와 몇 번 데이트를 가졌던 A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젠데?” 내가 다그치자 녀석은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이 몽둥이 같은 손 때문이야. 어느 날 우린 자연스레 손을 잡게 되었는데, 우악스런 내 손바닥을 만져본 그녀가 깜짝 놀라지 뭔가.” A는 그게 예전에 배구를 열심히 한 영광의 상처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여
윤용호 소설가 A는 내 친한 친구다. A는 예전에 프로배구선수였다. 지금은 은퇴하여 모 대학 배구 감독을 맡고 있지만, 현역 시절에는 파워 있는 공격수로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는 스파이크를 양손으로 모두 때려낼 수 있는 ‘스위치 센터’여서 주목을 받았다. 언젠가 나는 녀석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만져보니 손바닥이 돌처럼 딱딱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숫제 몽둥이 같잖아.” “그래야 잘 때릴 것 아니냐.” A가 웃으면서 한 대거리였다. 하긴 녀석의 말에 의하면 연습 스파이크 양이 하루 평균 500개가 넘는
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서석구 대표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학살은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다. 김대중 정부가 이 사실을 덮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석구 대표가 말하는 주장의 핵심은 북한특수군 출신으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이 광주사태 때 북한특수군이 대거 침투해 지역감정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악성 유언비어 루머를 퍼뜨리고 간첩이 첩보로 조사해둔 무기고 위치를 찾아 무기고를 급습 탈취해 북한지령에 따라 광주시민을 무차별
흔히 歷史를 말한다. 이 역사는 덧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세월에 견줘서는 안 될 것이다. 성서에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놓고 볼 때, 세상에 있어지는 모든 일이 그냥 있다가 없어지는 부질없는 것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사에 불과한 그저 ‘삶’이 아닌, 신(神, 절대자)의 계획이 이뤄지는 신의 역사임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신이 인간을 들어 신의 뜻(계획)을 이루어 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을 들어 이뤄가는 신의 뜻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을 위
백제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나라를 잃어 버렸다.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충남 서천)을 근거지로 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할 때 복신은 주류성에 있었다. 주류성은 사비성과 백강 중간의 성이었다.당나라는 백제왕이 있는 사비성을 함락시키는 것에 주력을 했기 때문에 주류성의 백제군은 무사했다. 복신은 전쟁이 불리해질 것을 알고 일본에 구원병을 요청해 놓았다. 일본에는 백제왕자 부여풍(풍장)이 머물고 있었다.부여풍은 의자왕의 4
지난 10월 1일 북한 주민 11명이 소형 어선을 이용해서 동해상을 거쳐 남측으로 와서 탈북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서 귀순해 온 주민들은 지난 9월 27일 고기잡이배를 가장해서 밤늦게 북한해안을 출항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5일간의 밤낮을 항해하여 우리 측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들이 귀순에 성공한 것은 배에 위성항법장치(GPS)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처음 가거나 잘 알지 못하는 길을 힘들이지 않고 쉽게 안내를 받아 찾아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의 주요 장치인 GPS가 이제는 북한 주민이